[밟아도 밟히지마 ep.04]
나는 털털한 편이다. 누구와도 잘 지내는 원만한 성격이다.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겐 집요한 구석이 있다. 일과 관련해서는 완벽주의자이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노력의 가치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을 싫어하며 실력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까칠하다고 볼 수 있는 면모이다.
오랜만에 동아리 동기들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치킨집이었고 몇 명은 취기가 올라 분위기가 더 시끌벅적했다. 그중 한 친구가 나의 실력을 장난 삼아 이야기하며 뉴스를 제일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을, 나는 항상 갖고 다니던 뉴스 원고를 가방에서 꺼내어 매몰차게 그 친구에게 들이밀었다.
“그럼, 너 한 번 해봐!”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웃자고 한 소리였고 그전까지 즐거운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조명도 어둡고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호프집에서 뉴스 원고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나의 소심한 발악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무언가가 지나치게 간절하여 주변을 여유롭게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상대의 말이 나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고 친구의 가벼운 농담이 나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하기도 한다.
간절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동시에 갖는 경지는 내게는 오르지 못할 산과 같다. 진정으로 원하지만, 타인에게는 그런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소위 쿨한 멋진 사람이 나도 한 번쯤은 되어보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해서 타인의 간절함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함부로 무시하지 말아야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사람에게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아는 척을 조심해야지.’
‘누군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간절함을 이야기했을 때 실수로라도 웃음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을 살펴야지.’
뜨거운 심장에서 태어난 꿈은 가끔 자존심에 들어가 살기도 하는데, 상대의 꿈을 건드리는 것은 그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여유롭되, 상대에겐 조금 더 조심하며 살아가야지. 나는 매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