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궁전 중앙에 오늘은 금화가 아니라 모래시계가 놓였다.
모래알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멈추었다가, 되감겼다가, 다시 흘렀다.
그 옆에는 검은 원반이 있었다.
불타는 별의 잔열, 식어가는 우주, 깨진 질서,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클락이 모래시계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이건 내 영역인데?”
카이사르는 담담히 말했다.
“천년왕국은 시간과 엔트로피마저 자원화할 수 있다. 그것이 초문명의 경제다.”
이엘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경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을 시장에 올리는 일이야.”
니알라토텝은 웃었다.
“드디어 돈이 금속과 종이를 넘어 우주의 법칙을 먹기 시작했군.”
그리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과 엔트로피의 화폐화는 일반적인 화폐 발행과 다르다.”
클락이 물었다.
“그냥 시간이 돈이 된다는 거 아니야?”
그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반 화폐는 가치의 표시다. 금화, 지폐, 신용, 데이터 화폐는 결국 인간 사회 안에서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약속이다. 그런데 시간과 엔트로피는 약속이 아니라 물리적 조건이다.”
그는 허공에 도식을 띄웠다.
“시간은 변화의 순서와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엔트로피는 질서가 무질서로 흐르는 방향, 에너지 사용의 비가역성, 우주적 소모를 나타낸다.
이것을 화폐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귀한 자원을 돈으로 바꾼다’가 아니라, 변화와 소모 자체를 계량하고 소유하고 교환한다는 뜻이다.”
이윤이 낮게 말했다.
“삶의 흐름과 세계의 낡아감까지 장부에 올리는 것이군.”
그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천년왕국은 자원의 최종 층위에 도달한 것이다. 토지, 곡식, 노동, 금속, 마력, 정보 다음에는 시간과 엔트로피가 남는다.”
이엘이 말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 경제는 결국 우주 법칙까지 경제 회로 안에 넣으려는 체제야.”
카이사르는 말했다.
“경제란 자원의 배분이다. 가장 근본적인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클락이 바로 말했다.
“시간은 네 창고 물건이 아니야.”
클락은 모래시계를 양손으로 감싸듯 바라보았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다뤄. 하지만 시간을 돈처럼 생각하지는 않아.”
카이사르가 물었다.
“왜지?”
클락은 보기 드물게 진지했다.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그 자체야. 케이크를 먹는 시간, 잠드는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후회하는 시간, 자라는 시간, 늙어가는 시간. 그런 걸 전부 숫자로 바꿔서 사고팔면 이상해져.”
그녀는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화폐화하면 부자는 더 많은 시간을 사고, 가난한 사람은 자기 시간을 팔게 되겠지. 그러면 수명도, 기억도, 성장도, 회복도 계급이 돼.”
이혜경이 조용히 말했다.
“현실에서도 가난한 사람은 시간을 팔아요. 노동시간, 대기시간, 이동시간, 회복할 시간까지요. 그런데 천년왕국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화폐로 만들 수 있다는 거네요.”
클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싫어. 사람의 하루가 금화보다 더 작아지는 느낌이야.”
엘리가 말했다.
“시간을 되찾는 것이 제 사명이었는데, 천년왕국은 시간을 다시 중앙은행에 넣는 셈이네요.”
카이사르는 차갑게 말했다.
“관리되지 않는 시간은 낭비된다.”
클락은 그를 노려보았다.
“낭비할 수 있어야 내 시간이야.”
카이사르는 천천히 말했다.
“감상적인 반응은 이해한다. 그러나 통치자의 관점에서 보자.”
이엘이 팔짱을 꼈다.
카이사르는 설명했다.
“모든 제국은 시간에 패배한다. 왕은 늙고, 병사는 죽고, 건물은 낡고, 기술은 잊히고, 질서는 부패한다. 시간은 모든 권력을 침식한다. 엔트로피는 모든 구조를 무너뜨린다.”
그는 검은 원반을 가리켰다.
“그런데 시간과 엔트로피를 측정하고, 저장하고, 이전하고, 교환하고, 역전하거나 지연할 수 있다면 제국은 전혀 다른 단계로 올라간다.”
자정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한가?”
카이사르는 답했다.
“노동 시간을 압축할 수 있다.
군수 생산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병력과 시설의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전투 중 특정 공간의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가속할 수 있다.
오래 걸리는 연구를 시간 자원으로 앞당길 수 있다.
엔트로피를 외부화하여 내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무질서와 붕괴를 화폐 단위로 계산해 제국의 유지비로 처리할 수 있다.”
그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경제라기보다 제국의 존재 유지 장치다.”
카이사르는 말했다.
“맞다. 천년왕국이 영원불멸 제국을 지향한다면, 시간과 엔트로피는 반드시 다뤄야 할 자원이다.”
이엘은 차갑게 말했다.
“문제는 그 영원이 누구의 시간을 먹고 유지되느냐야.”
이엘은 지팡이를 세웠다.
“카이사르, 네 말이 왜 위험한지 알겠어?”
카이사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엘은 계속했다.
“권력은 처음에는 땅을 장악해. 그다음 곡식, 세금, 군대, 기록, 신앙, 정보, 신체를 장악하지. 그런데 시간과 엔트로피를 장악한다는 건 그 모든 것보다 더 깊어.”
그녀는 모래시계를 가리켰다.
“시간을 장악하면 사람의 인생을 장악한다.
엔트로피를 장악하면 세계의 낡아감과 죽음, 회복과 붕괴의 방향을 장악한다.
이건 경제 권력이 아니라 존재론적 권력이야.”
대심문관이 흥미롭게 말했다.
“시간을 장악하는 권력이라. 낯설지 않군.”
엘리가 그를 노려보았다.
이엘은 말했다.
“신성 레모라 제국이 종소리와 기록으로 인간의 시간을 지배했다면, 천년왕국은 실제 물리적 시간 자체를 지배하려 해. 대심문관은 상징적 시간 독점자였고, 카이사르는 물리적 시간 독점자가 되려는 거야.”
클락이 말했다.
“둘 다 싫어.”
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간과 엔트로피의 화폐화는 천년왕국이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세계의 조건을 소유하려는 절대권력이라는 증거야.”
대심문관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카이사르의 발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엘리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대심문관은 말했다.
“인간은 시간을 자유롭게 두면 낭비한다. 방황하고, 죄를 짓고, 불안해하고, 반항한다. 시간은 영혼의 빈틈이다. 그래서 교회는 시간을 종소리와 기도와 절기로 묶었다.”
클락이 바로 말했다.
“그게 싫다니까.”
대심문관은 이어 말했다.
“천년왕국은 그것을 더 높은 수준에서 수행한다. 단순히 사람의 하루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자원으로 관리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무질서한 시간 속에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키브사가 말했다.
“아니요. 고통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간이 아닌 시간을 살게 되는 거예요.”
엘리는 회중시계를 쥐었다.
“사람은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어야 해요. 후회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을 시간을 살아야 해요. 그래야 자기 삶이 돼요.”
대심문관은 말했다.
“자기 삶이 인간을 파멸시킨다면?”
키브사는 답했다.
“그렇다고 타인의 삶으로 바꾸면 구원이 아니에요.”
엘리는 차분하지만 강하게 말했다.
“저는 누구보다 시간의 독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요.”
그녀의 뒤에 신성 레모라 제국의 종탑과 인쇄기, 회중시계가 떠올랐다.
“교회가 시간을 독점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 하루를 자기 것으로 느끼지 못했어요. 언제 기도하고, 언제 죄를 고백하고, 언제 일하고, 언제 두려워해야 하는지 교회가 정했죠. 저는 시계와 기록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했어요.”
그녀는 천년왕국의 모래시계를 보았다.
“그런데 천년왕국이 시간 자체를 화폐화한다면, 시간은 다시 사람들의 손에서 빠져나가요. 이번에는 종소리가 아니라 계산표와 화폐 단위로요.”
이혜경이 말했다.
“시간이 돈이 되면 시간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겠네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유, 회복, 사유, 애도, 사랑, 배움, 실패. 이런 시간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밀려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에요.”
카이사르가 말했다.
“그 시간도 배분할 수 있다.”
엘리는 단호히 말했다.
“배분받는 순간, 그것은 온전히 자기 시간이 아니에요.”
이혜경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설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간 빈곤이에요.”
클락이 물었다.
“시간 빈곤?”
“돈이 부족한 것처럼 시간이 부족한 상태예요. 현실에서도 가난한 사람은 오래 일하고, 멀리 이동하고, 병원에 갈 시간을 못 내고, 쉬지 못하고, 자기 삶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요.”
그녀는 모래시계를 보았다.
“천년왕국에서 시간이 화폐가 되면, 가난하거나 낮은 계층의 사람은 자기 시간을 더 직접적으로 팔게 될 수 있어요. 수명 일부, 회복 시간, 성장 시간, 기억의 시간, 노화 지연권 같은 것들이 상품이 될 수도 있죠.”
후세가 말했다.
“법적으로는 최악의 착취가 될 수 있다. 동의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생존 때문에 강제된 거래일 수 있으니까.”
히나가 말했다.
“노예가 자기 몸을 팔겠다고 동의했다고 해서 자유로운 계약이 아닌 것처럼.”
이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시간 화폐는 자유계약처럼 보이지만, 가장 약한 사람에게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빼앗을 수 있어요.”
클락은 작게 말했다.
“시간을 뺏긴 사람은 뭘로 살아?”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후세는 날카롭게 말했다.
“시간과 엔트로피의 화폐화가 가능하다면, 가장 먼저 법적 질문이 생긴다.”
그는 하나씩 물었다.
“자기 시간은 양도 가능한가?
수명은 재산인가, 인격권인가?
기억의 시간은 거래 가능한가?
노화 지연권은 기본권인가, 특권인가?
전쟁 포로의 시간을 국가가 몰수할 수 있는가?
범죄자의 시간을 형벌로 징수할 수 있는가?
가난한 사람이 생존을 위해 시간을 팔면 그것은 자유계약인가 착취인가?”
사상의 궁전이 조용해졌다.
후세는 말했다.
“토지나 금전은 잃어도 사람이 남는다. 그러나 시간을 잃으면 삶의 일부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간 소유권을 일반 재산권처럼 다루면 안 된다.”
카이사르가 말했다.
“제국이 시간을 관리하면 오히려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다.”
후세는 답했다.
“공정한 배분은 가능하겠지만, 권리의 성격을 먼저 정해야 한다. 시간은 국가가 부여하는 배급품인가, 아니면 침해할 수 없는 인격의 일부인가?”
키브사가 조용히 말했다.
“사람의 시간은 그 사람의 삶이에요. 삶은 물건이 아니에요.”
자정은 냉정하게 말했다.
“만약 시간과 엔트로피가 화폐화된다면, 국가는 그것을 군사와 행정에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은 말했다.
“전쟁에서 시간은 결정적이다. 병력 이동 속도, 보급 시간, 무기 생산 시간, 회복 시간, 작전 지연, 적의 노화와 아군의 보존. 시간 자원이 있다면 모든 전략이 바뀐다.”
사령관이 이어받았다.
“적군의 보급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아군 생산라인을 가속하고, 지휘부의 판단 시간을 늘리고, 병사들의 부상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면 전쟁은 거의 불공정해진다.”
자정은 말했다.
“엔트로피 화폐도 마찬가지다. 무기와 시설의 마모를 지연시키고, 적의 장비를 급속히 노후화하고, 방어 결계를 오래 유지하고, 내부 도시의 질서를 외부 공간의 무질서로 전가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절대적 전략 자원이다.”
이엘이 말했다.
“그러면 시간과 엔트로피는 경제 화폐인 동시에 군사 화폐가 되겠네.”
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런 자원을 가진 국가는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문제다.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국가는 그것을 안보 논리로 흡수한다.”
해나래가 낮게 말했다.
“또 제물이 생기겠네.”
사령관은 전쟁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의 본질 중 하나는 시간 싸움이다.”
그는 천천히 설명했다.
“누가 먼저 도착하는가.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누가 보급을 끊기 전에 결전을 끝내는가.
누가 적보다 빠르게 재건하는가.
누가 병사의 피로를 먼저 회복하는가.”
그는 카이사르를 보았다.
“천년왕국이 시간 화폐를 군사적으로 운용한다면, 패배를 연기하고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 골렘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괴수급 전력의 회복 시간을 단축하고, 전략 회의 시간을 외부보다 길게 확보할 수 있다면 전쟁에서 거의 신의 위치에 선다.”
히나가 말했다.
“그런 군대를 상대로 일반 국가는 저항할 수 있나?”
사령관은 낮게 말했다.
“정면전으로는 어렵다. 시간 자원을 가진 군대는 물량과 속도, 회복력에서 압도적이다.”
이엘이 말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은 공간과 병력뿐 아니라 시간의 전장도 장악한다는 거야.”
카이사르는 담담히 말했다.
“전장은 모든 차원에서 지배되어야 한다.”
클락은 작게 말했다.
“시간까지 전쟁터로 만들지 마.”
히나는 조용히 말했다.
“시간 화폐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노예와 피정복민이 떠올라.”
사령관은 그녀를 보았다.
히나는 말했다.
“노예는 자기 시간을 소유하지 못해. 언제 일하고, 언제 자고, 언제 먹고, 언제 움직일지 주인이 정하지. 그러니까 노예제는 몸의 소유이면서 시간의 소유야.”
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는 계속했다.
“천년왕국이 시간과 엔트로피를 화폐화한다면, 피정복민의 시간을 수탈할 수 있어. ‘제국 재건을 위해 너희 지역의 시간 자원을 징수한다.’ ‘반란 지역은 노화 지연 혜택에서 제외한다.’ ‘충성도 높은 시민에게 더 긴 회복 시간을 배급한다.’ 이런 식으로.”
이혜경이 말했다.
“복지와 처벌이 시간으로 나뉘는 거네요.”
히나는 말했다.
“그건 가장 깊은 식민지배야. 땅과 세금뿐 아니라 그 민족이 회복하고 기억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갈 시간까지 빼앗는 거니까.”
트리티가 낮게 말했다.
“시간을 잃은 숲은 다시 자라지 못한다. 시간을 잃은 종족은 역사로 이어지지 못한다.”
트리티는 검은 원반을 바라보았다.
“나는 엔트로피 화폐가 더 불길하다.”
카이사르가 물었다.
“왜지?”
트리티는 말했다.
“엔트로피는 질서가 무질서로 흘러가는 방향이다. 천년왕국이 내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엔트로피를 처리하거나 외부화할 수 있다면, 묻게 된다. 그 무질서는 어디로 가는가?”
그 말에 궁전이 조용해졌다.
트리티는 계속했다.
“도시가 깨끗하려면 쓰레기장이 필요하다. 공장이 번성하려면 폐수가 어딘가로 흐른다. 천년왕국이 내부의 노화, 마모, 열, 부패, 무질서를 줄인다면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가? 아니면 다른 공간, 다른 세계, 다른 생명에게 전가되는가?”
이엘이 말했다.
“엔트로피의 식민지화.”
트리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어떤 세계는 천년왕국의 질서를 위해 더 빨리 낡고, 더 빨리 썩고, 더 빨리 죽을 수 있다. 그런 경제는 가장 우아한 환경 범죄가 된다.”
클락이 인상을 찡그렸다.
“깨끗한 방을 만들려고 다른 방에 쓰레기 다 던지는 거네.”
트리티는 말했다.
“정확하다.”
키브사는 조용히 말했다.
“엔트로피는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모든 생명은 늙고, 상하고, 무너지고, 죽어요. 그것은 슬프지만 생명의 조건이기도 해요. 천년왕국이 엔트로피를 화폐로 만들어 노화를 늦추고 붕괴를 미룰 수 있다면, 사람들은 죽음마저 경제적 문제로 보게 될 수 있어요.”
최미르가 말했다.
“부자는 덜 늙고, 가난한 사람은 더 빨리 늙는 세계?”
키브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계는 겉으로는 기술적으로 발전했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잔인할 수 있어요. 죽음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선한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죽음과 노화의 지연이 권력과 계급의 특권이 되면, 생명 자체가 불평등해져요.”
대심문관이 말했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갈망이다.”
키브사는 답했다.
“그 갈망을 이해해요. 하지만 불멸을 얻기 위해 타인의 시간을 먹는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흡혈이에요.”
카이사르는 조용히 말했다.
“강한 문명은 죽음에 저항한다.”
키브사는 말했다.
“죽음에 저항하는 것과 타인의 삶을 담보로 영원을 사는 것은 달라요.”
최미르는 모래시계와 검은 원반을 바라보았다.
“이 설정은 제 세계의 완전한 안전과 닮았어요.”
이엘이 그녀를 보았다.
최미르는 말했다.
“사람들은 고통을 줄이고 싶어 해요. 죽음, 노화, 실패, 상실, 낭비, 위험. 시간과 엔트로피를 화폐화하면 이런 것들을 관리할 수 있겠죠. 더 오래 살고,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고, 더 깨끗한 세계.”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그런데 너무 완전한 세계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요. 위험이 사라진 세계에서 사람은 삶의 감각을 잃을 수 있어요. 모든 시간이 최적화되고, 모든 붕괴가 관리되고, 모든 상실이 경제적으로 처리되면, 인간은 슬픔을 배울 수 있을까요?”
클락이 작게 말했다.
“실패한 케이크도 기억인데.”
최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모든 실패와 낭비와 상실을 제거하면, 삶은 안전하지만 얇아질 수 있어요.”
키브사가 말했다.
“고통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고통을 없애겠다는 명분으로 인간의 자유와 깊이까지 없애면 안 돼요.”
이건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을 화폐화할 수 있다면, 기억도 위험해진다.”
이츠카가 그를 보았다.
이건훈은 말했다.
“기억은 시간의 형태다. 어떤 사건을 오래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건에 자기 시간을 계속 쓰는 것이다. 천년왕국이 시간 자원을 관리한다면,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기억에 얼마나 시간을 배정할지도 관리하려 할 수 있다.”
엘리가 말했다.
“기록 독점과 연결되겠네요.”
이건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를 들어 전쟁 피해자에게 애도의 시간이 얼마나 허용되는가. 피정복민이 자기 역사를 기억할 시간이 있는가. 반란의 기억을 보존하는 시간이 낭비로 분류되는가. 이런 문제가 생긴다.”
이혜경이 말했다.
“피해자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경제적으로 계산될 수 있겠네요.”
“그렇다.”
이건훈은 말했다.
“그리고 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 충분히 애도했다.’ ‘이제 생산으로 돌아가라.’ ‘기억 유지 비용이 과도하다.’ 그렇게 시간 화폐는 기억의 정치와 결합된다.”
이츠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질문할 시간도 배급받게 되겠네.”
클락은 인상을 찡그렸다.
“질문은 배급받으면 안 돼.”
최아린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기꾼 관점에서 보면, 시간과 엔트로피 화폐는 최강의 금융상품이야.”
이엘이 물었다.
“어떤 의미에서?”
최아린은 웃었다.
“사람이 제일 사고 싶은 게 뭐겠어? 더 많은 시간, 덜 늙는 몸, 실패를 되돌릴 기회, 빠른 성장,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성과, 늦춰진 죽음. 시간 화폐는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직접 건드려.”
후세가 말했다.
“그래서 사기도 커질 수 있겠군.”
“당연하지.”
최아린은 말했다.
“가짜 시간 채권. 노화 지연권 투기. 엔트로피 정화권 사기. ‘지금 시간을 예치하면 나중에 더 긴 수명으로 돌려드립니다.’ 같은 금융상품. 귀족과 부자들은 시간을 사재기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 시간을 담보로 빚을 지겠지.”
이혜경이 말했다.
“미래 시간을 담보로 빚을 진다니 너무 끔찍하네요.”
최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의 채무도 결국 미래 노동을 담보로 하잖아. 천년왕국에서는 그게 문자 그대로 미래 시간 담보가 될 수 있어.”
카이사르는 말했다.
“그런 사적 투기는 통제하면 된다.”
최아린은 웃었다.
“통제하는 자가 가장 큰 금융기관이 되겠지.”
니알라토텝은 즐겁게 말했다.
“아름답군. 금화와 곡식, 세금과 노예를 지나 드디어 운명 자체가 화폐가 되었다.”
클락이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알라토텝은 계속했다.
“시간은 운명의 재료다. 엔트로피는 모든 운명이 낡아가는 방향이다. 이것을 화폐화한다는 것은 천년왕국이 단순히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회계장부를 쓰겠다는 뜻이다.”
타미엘이 말했다.
“운명의 회계장부라.”
니알라토텝은 창조주의 초상을 떠올리듯 말했다.
“창조주는 늘 묻는다.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 누가 시간을 빼앗기는가. 누가 이름을 잃는가. 그런데 천년왕국 설정은 그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이제 비용은 돈이 아니라 수명이고, 이자는 노화이며, 채무불이행은 존재의 붕괴다.”
이엘이 말했다.
“너무 잔인한데, 창조주의 문제의식과 잘 맞는군.”
니알라토텝은 웃었다.
“그렇다. 이것은 창조주의 권력관과 경제관의 최종 형태다. 권력은 마침내 사람의 시간과 세계의 낡아감을 소유하려 든다.”
타미엘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시간 화폐의 위험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봐야 한다.”
키브사가 그를 바라보았다.
타미엘은 말했다.
“사람은 왜 자기 시간을 팔고 싶어질까?”
이혜경이 고개를 숙였다.
타미엘은 계속했다.
“가난해서. 죄책감 때문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얻기 위해. 병든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누군가는 진심으로 자기 시간을 팔고 싶어질 수 있다.”
후세가 말했다.
“그래서 자유계약처럼 보일 것이다.”
타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래서 더 어렵다. 시간을 거래하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사람이 자기 삶의 일부를 팔고 싶어지는지 봐야 한다. 그 절박함을 해결하지 않으면 금지된 시장은 암시장으로 들어간다.”
이엘이 말했다.
“즉 시간 화폐의 윤리는 단순 금지가 아니라, 시간 빈곤을 없애는 문제와 연결돼야 한다.”
키브사가 말했다.
“사람이 자기 시간을 팔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계가 먼저예요.”
클락이 작게 말했다.
“자기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세계.”
해나래는 낮게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익숙해.”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태천은 하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제물로 바치려 했어. 천년왕국이 시간과 엔트로피를 화폐화한다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시간을 제물로 삼겠지.”
마왕 해나래가 어둡게 웃었다.
“예쁜 말로 포장하겠지. 시간세, 회복 부담금, 질서 유지 비용, 엔트로피 정화 기여.”
해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할 거야. ‘제국이 오래가려면 필요하다.’ ‘모두를 위해 조금씩 시간을 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누가 더 많이 낼까? 약자겠지.”
자정은 침묵했다.
해나래는 말했다.
“시간을 화폐로 만들면 제물 질서는 더 정교해져. 피를 흘리지 않고도 사람을 바칠 수 있으니까.”
키브사가 슬프게 말했다.
“그 말이 무섭게 정확해요.”
이엘은 원탁 위에 정리된 도표를 띄웠다.
천년왕국은 이미 금화, 자동화, 무한동력, 익스체인지 박스, 초지능 계획경제를 가진다.
여기서 시간과 엔트로피까지 화폐화하면 자원화의 끝에 도달한다.
토지, 노동, 에너지, 정보 다음에 삶의 지속과 세계의 비가역성을 경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반 경제에서 돈은 물건을 산다.
천년왕국의 시간 화폐는 다음을 살 수 있다.
연구 시간 단축
생산 시간 압축
병사 회복 가속
노화 지연
시설 마모 지연
전투 중 시간 왜곡
긴급 재건
기억 보존 또는 망각 처리
엔트로피 정화 또는 외부화
즉 시간 화폐는 단순 구매력이 아니라 현실 조정력이다.
시간과 엔트로피는 전쟁의 핵심 자원이다.
천년왕국은 이를 통해 생산, 보급, 회복, 장비 유지, 작전 속도를 모두 통제할 수 있다.
상대국은 병력과 무기로 싸우지만, 천년왕국은 전장의 시간 조건과 마모 조건까지 다룬다.
이것은 일반 군사력보다 더 깊은 비대칭 우위다.
돈이 많은 사람이 좋은 집을 사는 수준이 아니다.
시간 화폐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부유층·상위계급은 더 오래 살고, 덜 늙고, 더 빨리 배우고, 더 쉽게 회복한다.
하위계급은 자기 시간을 팔고, 더 빨리 소모되고, 미래를 담보로 잡힐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생명 길이와 노화 속도, 기억과 회복의 불평등으로 바뀐다.
천년왕국 내부의 질서와 불멸을 유지하기 위해 엔트로피를 다른 지역이나 세계로 전가한다면, 그것은 가장 거대한 형태의 환경오염이다.
쓰레기와 폐수를 외부화하듯, 무질서와 붕괴를 외부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천년왕국의 질서는 다른 세계의 빠른 죽음 위에 세워질 수 있다.
시간을 재산으로 보면 팔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인격권으로 보면 함부로 양도하거나 몰수할 수 없다.
천년왕국의 윤리적 분기점은 여기 있다.
시간을 국가와 시장이 소유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시간은 개인의 삶 자체이므로 거래 불가능한 영역인가?
시간과 엔트로피를 공정하게 사용하면 질병, 노화, 붕괴, 기근, 전쟁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가 독점하면 제국은 타인의 시간과 세계의 붕괴를 먹고 영원해지는 체제가 된다.
그때 천년왕국은 불멸 제국이 아니라 시간을 빨아먹는 흡혈 제국이 된다.
클락이 말했다.
“나는 시간 화폐 싫어. 사람 시간이 돈 되는 거 싫어.”
카이사르는 말했다.
“그 힘을 두려워하기보다 관리해야 한다.”
이엘이 말했다.
“관리라는 말이 바로 위험해. 누가 관리하는가가 핵심이야.”
후세가 말했다.
“시간은 단순 재산권이 아니라 인격권으로 봐야 한다.”
이혜경이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자기 시간을 팔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먼저예요.”
히나가 말했다.
“피정복민과 약자의 시간이 제물로 바쳐질 위험을 봐야 해.”
트리티가 말했다.
“엔트로피를 외부화한다면 다른 세계가 쓰레기장이 된다.”
엘리가 말했다.
“시간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해요. 중앙 장부에 갇히면 안 돼요.”
키브사가 말했다.
“죽음과 노화를 줄이는 힘은 선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타인의 삶을 담보로 영원을 사면 안 돼요.”
니알라토텝은 웃으며 말했다.
“결국 천년왕국은 금화를 넘어 운명을 발행하려는 것이군.”
클락은 모래시계를 꼭 붙들고 말했다.
“그래도 내 시간은 내 거야.”
이 말에 사상의 궁전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날의 결론은 이렇게 남았다.
천년왕국의 시간과 엔트로피 화폐화는 경제 설정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권력 설정이다.
그것은 단순한 고급 화폐가 아니다.
시간을 돈으로 만들고,
노화와 회복과 연구와 전쟁과 기억을 거래 가능하게 만들며,
세계의 무질서와 붕괴마저 회계 장부에 올리는 체제다.
장점은 압도적이다.
질병과 노화와 마모를 줄이고, 생산과 연구를 앞당기며, 전쟁과 재난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은 더 깊다.
가난한 자는 자기 시간을 팔고,
강한 자는 타인의 시간을 사며,
제국은 내부 질서를 위해 외부 세계에 엔트로피를 떠넘길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천년왕국이 금화를 지배할 때는 경제 제국이다.
생산을 지배할 때는 초문명이다.
하지만 시간과 엔트로피를 화폐화하는 순간,
천년왕국은 삶의 지속과 세계의 죽음마저 장부에 올리는 존재론적 제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