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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 Mar 17. 2022

난임, 나와는 먼 이야기일 줄 알았던 일

아이를 만나는 어렵고 위대한 여정

남편과 나는 8년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지만, 사실은 가장 아름다웠던 대학생 시절의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 후 곧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우리는 하늘이 허락한 '운명'임을 확신하며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벌써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을 앞둔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아기 계획'을 물어보는 일은 무엇인가 멋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맞벌이 부부라면 혼자 벌때보다 수입이 2배가 되니 지갑이 풍성해진 느낌이기도 하고, 언제나 내 옆에 있는 짝꿍이 생겨 든든한 느낌이라서일까? '아기를 낳을거면 빨리 낳는게 좋다'는 어른들의 말들은 잠시 미뤄두고, 둘만의 자유로운 삶을 보내는게 뭔가 더 멋있고 좋아보인다고 여겨지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여기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연애시절 못해봤던 많은 즐거운 일들 (예컨대 남편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을 실컷 즐겨보겠노라 하며 결혼 후 1년간은 피임약을 복용했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피임약을 먹는다고 추후 임신이 잘 안되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피임약을 끊으면 바로 아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위안의 말씀도 해주셨다.


이맘때쯤, 시아버지는 연말이면 '내년에는 너희 부부가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주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시며, 가뜩이나 갓 결혼하여 시댁에 대한 이유없는 전투력이 한껏 상승해있는 나를 더욱 자극하셨고, 그럴수록 열심히 피임약을 정시에 복용하며 역시 나는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여성이라고 스스로 뿌듯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럴수가, 계획했던 1년이 끝나고 우리 부부의 임신이 충분히 가능한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꽤 오랜 시간동안 우리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또 친정엄마와 함께 지은 한약 역시 효과가 없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부부와 '난임'은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떤 주제넘은 확신이었을까, '내 인생에 그런 시련은 없어', '좀 늦더라도 다 자연스럽게 찾아올거야'라는 생각을 나도, 남편도 했던 것 같다. 계획적인 성격의 나는 늘 '아기가 생기면 남편에게 요컨대 '임밍아웃' 이벤트를 하는 방법'까지 꽤 구체적으로 구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에 출산/육아 전문가 회사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라면 준비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간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해주었고 병원 추천도 해주었다. 제법 유명한 병원이 우리 집 근처에 있었고, 비용도 큰 부담이 될 것 같지 않아 한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사항목 중 하나인 남성의 굴욕의자 체험을 남편에게 끝까지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아 망설였지만, 남편은 늘 내 의견을 따라주는 사람이라 흔쾌히 가자고 해주었다.


여러 검사가 끝나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이 날을 어떻게 잊을까?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의 원장님이 우리 부부 앞에 검사지를 꺼내고, 먼저 나의 결과를 보며 '모든 수치가 좋고, 난소 나이도 많이 어리고, 다낭성 소견이 있지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나의 결과를 보면 6개월 내 바로 임신이 될 수 있었을만큼 결과가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내 남편의 결과를 찾아보시다가 '남편의 수치가 많이 안좋네요.' 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뱉으셨을때, 우리는 사색이 되었다.


수치만 봐서는 자연임신이 될 수 없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권해야 하는 수치라고 말씀하시며, 준비된 그림을 통해 인공수정과 시험관, 우리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관심도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셨을 때 내 남편은 그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와이프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본인 때문에 안해도 되는 것을 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당황한 원장님이 남편을 얼마나 달래주셨는지 모른다. '걱정할 일 아니다, 너희 부부는 금방 임신이 될거다, 확신한다.' 라고 한참을 남편을 위로해주셨다. 남편의 상기된 얼굴 앞에서 차마 나의 놀란 기색까지 더할 수는 없었기에 남편 등을 두들겨주며 '걱정마, 남편! 난 더한 것도 할 수 있어!'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사실 속으로는 앞으로의 여정이 많이 두려웠다.






일련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병원을 다닌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인공수정 1, 2회차를 화학적 유산으로 마쳤고, 이제 이번 달 시험관 1차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병원에 처음 갔던 날, 병원 여기저기에 붙은 난임 관련 위로의 문구와 포스터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 그리고 친구에게 '검사 받으러 오긴 왔는데 막 시험관도 해야 되고 그러면 난 아기 갖는걸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고 쿨한 척 내뱉었던 기억이 무색하도록 이제 난임병원은 나에게 참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고 아기가 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부부는 더 간절히 아기를 소망하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병원을 다니기 전에는 아기가 없어도 살 것 같더라니, 이제는 어떤 소망보다 간절히 아기가 꼭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있다. 우리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해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수 있다.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조차 교만함에서 나왔던 생각임을 고백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자고 일어나면 과거가 되어버릴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담대하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최선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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