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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자기 Nov 30. 2022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미니멀리스트 개발자

워케이션을 다녀온 사람들 | ① IT 스타트업 안드로이드 개발자 최재흥

이 아티클은 <갑자기 워케이션>의 3화입니다.  

✧ 워케이션 기본 정보

• 워케이션 시작 시기: 2019년 
• 워케이션 평균 기간: 최소 2주 이상
• 워케이션 유형: 개인
• 워케이션 지역: 포항, 부산, 제주도, 목포 
• 워케이션 장소: 도보 이동이 가능한 도심 숙소, 코워킹스페이스 근처  
• 워케이션 다녀온 횟수: 5번


INTERVIEWER’S COMMENT

워케이션 인터뷰집을 기획하게 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워케이션을 뾰족하게 정의 내리는 일이었다. 재택근무, 워케이션, 디지털노마드 등 새로운 업무형태의 단어들이 등장했지만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던 탓이었다. 그러던 중 목포에 노마드 개발자 최재흥이 찾아왔다. 그가 재직 중인 회사에는 워케이션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는 그는 워케이션을 다니며 새로운 일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인터뷰어 | 공장공장 양애진 콘텐츠 기획자






워케이션에 관해 구체적인 의견을 갖고 있잖아요. 재흥님이 생각하는 워케이션은 뭔가요? 

▶︎ 워크와 베케이션 중 워크가 앞에 오잖아요. 단어 그대로 일이 우선이고 부수적으로 휴가가 더해진 개념으로 보고 있어요. 업무 시간은 같지만, 업무 공간이 다른 거죠. 출근해서 퇴근 전까지의 시간은 사실 사무실 출근, 재택근무, 원격근무와 다를 바 없어요. 다만 출근 전과 퇴근 후의 상황과 공간이 달라질 뿐이에요. 그 차이에서 더 양질의 휴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 워케이션은 정의부터 잘못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워케이션 단어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에요. 대신 '원격근무', '장기 원격근무'라는 표현을 선호해요. 흔히 워케이션을 ‘일하면서 쉰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근무시간에 휴식한다'라고 잘못 해석될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회사 측에서는 거부감이 생기기 쉽거든요. 저 또한 만약 근무시간에 완전한 휴식을 원한다면 워케이션이 아닌 휴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워케이션은 '장기 원격근무'

그렇군요. 워케이션과 원격근무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 워케이션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다 보니, 두 단어가 잘못 사용되면서 더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워케이션과 원격근무는 엄연히 다른 업무 방식이에요. 원격 근무는 영어로 직역하면 리모트 워크(remote work)예요. 여기에 베이케이션(vacation)이라는 단어는 없어요. 반면 워케이션(workation)에는 베이케이션이 들어가 있지요. 즉, 워케이션은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휴식이 겸해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일의 비중을 평소와 같이 유지해서 여행을 가는 것은 원격근무이고, 일의 비중을 조금 낮춰서 여행을 가는 것은 워케이션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게 워케이션은 장기적 디지털노마드가 되는 전 단계인 단기성 디지털 노마드예요. 


이미 워케이션을 여러 번 다녀온 것으로 알아요. 처음에 워케이션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 워케이션이라는 단어 자체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시점인 2021년도에 처음 들었어요. 그보다는 2015년에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단어를 먼저 접했어요. 대학생 3학년 무렵에 ‘깃랩(Gitlab)이라는 회사에는 오피스가 없다’는 글을 읽게 되었어요. 회사 임직원이 전원 원격근무를 하기 때문에 오피스를 따로 두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죠. 그때부터 여행을 다니면서 원격근무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게 되었어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저 같은 개발자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회사를 다니면서도 지속적으로 원격근무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개발 프로세스를 고민해오고 있어요. 

 

© 최재흥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워케이션 제도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워케이션이 가능했나요?  

▶︎ 일단 회사 내에서 개발 프로세스를 원격근무가 가능한 형태로 계속해서 개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어요. 그 덕분에 2020년 코로나로 갑자기 전원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어도 업무를 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죠. 오히려 이때다 싶어 채팅 방식, 미팅 등 매뉴얼을 더 발전시켰어요. 그리고 사실 기존에 회사가 가지고 있었던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조직문화와 ‘연차 무제한' 시스템을 잘 활용했어요. 회사의 기조가 성과주의거든요. 연차를 며칠을 쓰든 정해진 업무량과 목표로 한 성과를 내면 되어요. 그렇다면 연차를 많이 쓰고 쉬면서 일을 하면 그게 워케이션이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 두 키워드를 바탕으로 회사를 설득했어요.  


회사의 기존 복지제도 틈을 노린 거네요. (웃음) 그래도 처음에 설득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 맞아요. 사실 회사에는 워케이션보다는 ‘원격근무'를 길게 해 보면서 재택/원격근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확인하고 분석해서 프로세스 개선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언제든지 사무실 출근이 필요하면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곳에 있겠다는 점도 어필했고요.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원격근무에 이슈가 없는지 실험하러 간다고 알리고, 암묵적으로는 워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새로운 일의 방식, 그 이상의 가치 


워케이션을 단기성 디지털 노마드라고 했어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이유는 뭐예요?

▶︎ 처음 디지털 노마드를 알게 되었을 때는 막연하게 서울에서 3개월, 부산에서 3개월, 목포에서 3개월, 제주에서 3개월 사는 삶을 꿈꿨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북적거리는 서울에서 1년 내내 살면서 휴가철에는 똑같은 연차를 쓰고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여행지를 가잖아요. 하지만 여행지에서 출퇴근을 하고 그곳에서 여행이 아닌 일상을 보내게 되면 오히려 보다 더 현지인의 관점에서 여행지를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여행지에서 ‘살아보는 여행’이 가능하죠.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방식이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하는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격 근무가 가능해지면 굳이 서울에 거주지를 둘 필요가 없어요. 지역으로 주거를 이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발전이 이루어지겠죠. 그렇게 되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인구도 분산될 수 있고, 당장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매일 마주하는 출퇴근의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서울의 일반 직장인이 고작 며칠 동안 베트남 여행을 다녀올 때 왕복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어마어마할 거예요.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들은 한 번 베트남에 가면 오랜 기간을 머물게 되죠. 그리고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나라인 태국으로 비행기 외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가 기존 오피스 라이프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친환경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수도권 집중화 문제 해결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신선해요. 

▶︎ 다만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모빌리티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는 이유 중 하나는 교통 인프라가 정말 잘 되어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동하기 편리하기 때문에 편의 시설, 문화 시설 등의 다양한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있다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 교통수단이 발전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30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고 가정해봐요. 그렇게 되면 서울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굳이 서울에 살 필요 없이 부산에서 살아도 되겠죠. 그 외에도 현재 수도권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 부담감 중 하나는 운전에 대한 피곤함이 크잖아요. 자율주행 시스템이 더 발전하면 수도권 인구가 보다 근교로, 그리고 지방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으리라고 봐요. 물론 그 정도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웃음)  

© 최재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그럼 워케이션을 갈 때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첫 번째는 네트워크가 원활한가 예요. 당연히 인터넷이 끊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해요. 두 번째는 업무 할 만한 공간이 있는가에요. 일할만한 카페 혹은 워킹 스페이스가 있는지, 없다면 숙소가 업무 하기 적합한 공간인지를 살펴보죠. 세 번째로 앞서 말했듯 이동이 편해야 해요. 언제든 내가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해요. 회사에서 사무실이라고 정하는 곳으로도 언제든 24시간 이내에 돌아올 수 있는 위치여야 하죠. 이 기준에 따르다 보면 아직까지는 완전 시골보다는 도시가 알맞죠. 그래서 대부분 도시의 역이나 공항 근처처럼 이동이 편한 곳으로 가게 되죠. 하지만 모빌리티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면 대중교통 개념도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모든 지역이 선택지가 될 거라 믿고 있어요.. 


사실 원격 근무를 하기 좋은 직군이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직군은 어렵지 않을까요? 

▶︎ 사실 저는 원격근무에 필요한 방법론과 시스템만 잘 갖추고 있다면 원격 근무가 불가능한 직군은 없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에어비앤비, 넷플릭스는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직군이 원격근무를 하고 있어요. 적어도 이 기업들에서 채용하는 포지션들은 모두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는 뜻이잖아요.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직군일수록 원격근무를 하면 장점이 생긴다고 봐요. 회의실을 찾아다닐 필요 없고, 이동 시간을 아껴서 회의를 하나 더 할 수 있고, 중간중간 실무도 바로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바텐더처럼 직접 손님을 응대해야 하거나, 현장에서 작업 도구가 많이 필요한 제조업 종사자분들은 당장에는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부분도 현장 엔지니어 외에는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어요. 서비스업도 키오스크로 대체되고 있는 것처럼요. 점차 오프라인 업무는 기계화되어 감에 따라 원격근무가 불가능한 직군도 점진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 같아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계속 강조했어요. 원격근무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프로세스가 필요할까요?

▶︎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부재와 상관없이 업무 처리가 용이해야 해요. 일단 저는 개발자이니 개발 프로세스 측면에서 말해볼게요. 개발 방법론에는 크게 워터폴(Waterfall)과 애자일(Agile) 모델이 있어요. 워터폴 모델은 흔히들 익숙한 전통적인 방법론이에요. 1년에 걸쳐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두고 기획 > 디자인 > 개발 > 테스트 > 배포 > 유지보수 순으로 일을 진행하죠. 마감 기한을 정해두고 각 직군이 맡은 일을 끝낸 후 다음 직군에게 차례로 넘기는 방식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적어요. 반면 애자일 모델은 말 그대로 ‘기민한' 프로세스예요. 두루뭉술한 목적만 정해놓고 1-2주 단위로 잦은 커뮤니케이션과 빠른 실행을 바탕으로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죠. 이 두 가지 중 저는 원격근무에는 애자일 프로세스가 조금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변화에도 강하다 보니 코로나라는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업무 지속이 용이했기도 하고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애자일 모델은 원격근무에 더 안 좋을 것 같은데요?

▶︎ 사실 직원 입장에서는 마감 기한과 맡은 역할이 정해져 있는 워터폴 모델이 원격근무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워터폴 모델에 조금 부정적인 이유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에요. 각 부서들이 정확하게 마감 날짜를 지키는 것도, 애초에 계획했던 결과 그대로 나오는 것도 100%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렇다 보니 관리자 입장에서는 불안한 거죠. 예를 들어 A라는 프로젝트를 세 달 뒤에 끝내야 하는데,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요. 그럼 프로젝트의 정확한 진행상황은 알지 못한 채 개발자가 게을러서 인지, 아직 앞 부서에서 일이 끝나지 않은 탓인지, 등등 추측만 하면서 답답하겠죠. 그래서 자꾸만 직원들이 눈에 보이기를 원해요. 역설적으로 원격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반면 애자일은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기 때문에 변화도 계속 보여서 신뢰도가 생겨요. 진행 상황도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마음이 놓여서 원격근무에 더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애자일 모델이 원격근무 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어찌 됐든 현재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입장이잖아요. 그럼 다른 팀원들은 오프라인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을 텐데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나요? 

▶︎ 매뉴얼이 그런 부분들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항상 오프라인에서 논의된 사항은 간략하게 요약해서 슬랙이나 노션에 문서화를 남겨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해요. 오프라인으로 소통해도 이를 온라인상에 기록해서 계속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오프라인 소통보다 온라인상에 기록하는 걸 더 우선하는 거네요? 

▶︎ 네. 문서화는 단순히 원격근무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본 사항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팀원 중 한 명이 휴가를 다녀왔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직접 전해 듣지 않는 한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할 거예요. 그것과 동일한 문제예요. 


결국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듣다 보니 원격근무를 잘한다는 것은 곧 회사가 일을 효율적으로 잘한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결국 원격 근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커뮤니케이션이에요.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은 어떻게 일을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최소화시켜서 실무에 집중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죠. 그래서 원격 근무 시스템을 구축할 때 주된 질문을 ‘어떻게 하면 원격 근무를 할 수 있을까’가 대신 ‘만약 내가 장기 연차 휴가를 갔다 왔을 때 어떤 이슈가 발생할까’로 설정하면 훨씬 수월하게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일반적인 회사의 문제가 내가 연차를 5일 쓰고 돌아오면 5일 치의 업무가 빠져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밀리는 개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연차를 쓰기도 부담스럽고, 휴가도 마음 편히 못 다녀오고, 차라리 휴가를 가서도 거기에서 일을 하는 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는 좋은 상황이 되는 거예요. 워케이션처럼요. 결국 연차가 진짜 연차가 되기 위해서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해요. 


© 최재흥

 


정말 여러 경우의 수를 실험해보고 있네요. 재밌어요. 그럼 워케이션을 갔을 때도 달라진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나만의 노하우나 프로세스도 있나요?

▶︎ 낯섦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대개 워케이션을 상상하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 그곳에서 노는 상상을 먼저 하곤 해요. 하지만 그런 자세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처음 딱 도착하자마자 마인드가 마인드가 관광객 마인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워케이션에 처음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가 자리 잡은 숙소랑 일하는 공간을 탐색하는 거예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익숙함을 만들어서 여행지의 낯섦을 없애는 과정이죠. 아직 숙소와 근무지도 익숙하지 않은데, 관광지나 더 낯선 장소로 바로 가다 보면 재미는 있겠지만, 다시 근무지에 돌아왔을 때 여전히 낯설고 설레는 기분이 남게 돼요. 그러면 업무를 할 때도 살짝 들뜬 느낌이 있고, 업무에도 지장이 있겠죠. 그래서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가급적 너무 안 돌아다니려고 하는 편이에요. 


워케이션 출발하는 요일, 시간 등의 스케줄링을 어떻게 해요?   

▶︎ 주로 일요일에 가요. 그때가 교통비가 가장 저렴하거든요. (웃음) 일요일에 도착해서 주변을 돌아보고 공간이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좀 더 멀리도 가봐요. 그리고 평일에는 업무에만 집중해요. 워케이션을 왔다고 해도 말 그대로 출근 퇴근 개념은 완전히 동일하게 가져가는 거죠. 퇴근을 한 후에는 가급적 산책을 또 해요. 익숙해지려고요. 뭐랄까. 게임에서 미니맵 시야를 조금씩 넓히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주로 2주 기간으로 워케이션을 가는 이유가 첫 주말에는 적응하고, 주중을 한 번 겪어본 후에, 두 번째 주말에는 이동 시간 고민 없이 온전히 그 지역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업무 효율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 솔직히 업무 효율을 비교해본 적은 없어서 워케이션을 할 때 특별히 더 높은 지는 모르겠어요. 이 부분은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클 것 같은데요. 만약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거나 여행을 잘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워케이션에서의 업무 효율이 떨어질 것 같아요. 저는 회사, 카페, 집, 등 일하는 환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그래서 제게 워케이션은 일상 외 공간에서 오는 리프레싱보다는 그냥 또 다른 일상에 가까워요. 저 스스로가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크고 경험을 통해서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때문에 워케이션을 선택한 거예요. 사실 업무 효율 측면으로만 보면 굳이 워케이션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죠. 

© 최재흥


그렇군요. 국내에서 지금까지 다녀본 곳 중 가장 워케이션 하기 좋았던 지역은 어딘가요? 

▶︎ 제 기준에서 가장 워케이션 하기 좋았던 곳은 가장 업무를 하기 좋았던 곳이에요. 그래서 목포가 좋았어요. 일단 코워킹 스페이스(반짝반짝 1번지)가 있었고,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목포라는 지역 자체에 콘텐츠가 과도하게 많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뭐랄까. 완전히 관광지화 된 지역은 아니라서 여행지로서 즐길만한 콘텐츠가 적당했어요. 사실 여행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다 보면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거든요. 그럼 일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제주도, 부산, 강릉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일이 아니라 여행을 하러 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럼 여행지 특유의 들뜬 분위기 속에 나만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박탈감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심리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확실히 주변 상황이 정말 중요하겠네요. 그럼 함께 일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것도 방법이겠어요. 

▶︎ 딱 한 번 제주도 워케이션을 친구랑 가본 적 있어요. 혼자 가는 것과 친구와 가는 것의 장단점이 있어요. 혼자 갈 때는 내 컨디션에 알맞게 온전히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반면  친구와 갈 때는 주변의 데이터를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지역의 맛집 정보, 업무 환경에 대한 정보, 주변 관광지 등의 정보를 얻기가 더 수월해요. 


좀 더 빠르게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니 좋은 거군요. 

▶︎ 맞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벗이 있다는 게 커요. 사실 원격근무를 하면서 가장 고민 중인 부분이 팀원 간의 유대감 증진 방법이에요. 원격근무를 하게 되면 주변에 방해 요소가 없다 보니 오히려 실무에 굉장히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려요. 동시에 이야기 나눌 사람도 사라지죠.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유대감을 쌓아가는 일이 필요해요. 그래서 화상회의 플랫폼인 게더타운에서 만나거나, 점심시간에는 화상통화를 계속 켜 두는 등의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 아직 다들 익숙하지 않다 보니 참여율이 높지 않아 쉽지는 않아요. 


© 최재흥


2019년부터 벌써 3-4년째 일의 방식을 실험해오고 있어요. 그 사이에 변화를 느꼈나요? 

▶︎ 아무래도 코로나 이후로 갑자기 확 앞당겨진 것 같아요. 모든 변화에는 트리거가 필요한데 코로나가 그 역할을 해줬죠. 마치 전쟁 같은 느낌이에요. 이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기술, 조직문화에 관한 고민 등 소수의 관심 있는 기업만 고민해왔던 문제를 갑자기 원치 않은 사람들까지 모두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일의 방식이 생겼어요. 제게는 그 모든 게 다 데이터예요. 이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해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데이터가 없을 때랑 있을 때의 차이는 정말 크거든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주변에도 원격근무, 워케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나요? 

▶︎ 기본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늘어났잖아요. 출근은 온라인상의 공간에 로그인하는 거고, 퇴근은 로그아웃하는 개념이 되었어요. 내가 위치한 오프라인 공간이 사무실인지 집인지 카페인지와 관계없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어요. 전반적인 일의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고 봐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문제라기보다는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자 과도기라고 봐요. 현재 프로세스를 결정하는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이 동기식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초중고등학생들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적응을 한 세대예요. 나중에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이 사회에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그때가 되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장에 지금 대학생들이 취업을 할 때 기대하는 기업 문화는 다를 거예요. 저희 때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였다면, 소위 Z세대들에게는 원격근무이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워케이션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하고 싶은 말 정말 많은데. 일단 워케이션이 원격근무와는 구분된 업무 문화로 여겨졌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워케이션 기간에는 주중 52시간이 아니라, 주중 40시간 워크에 집중하고 그 외의 시간은 베이케이션으로 쓴다는 식으로요. 이게 암묵적으로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로 정착이 되어야 관리 직군, 실무 직군, 워케이션을 하지 않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용이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종종 제가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이 주로 “좋겠네요" “부럽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물론 퇴근 후, 주말에 여행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정말 좋죠. 하지만 분위기나 뷰가 좋은 카페에서 일한다는 것은 오해예요. 소위 인스타그래머블 카페는 콘센트가 적고 오래 업무 하기에는 눈치가 많이 보이거든요.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업무 시간에는 실무를 하고, 회의를 하는 것은 같아요. 오히려 가끔씩 여행지에서 야근을 하다 보면 ‘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차라리 사무실에 있으면 야근식대도 받고 탕비실 간식과 음료도 먹을 수 있을 텐데'하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워케이션이나 디지털 노마드 단어를 떠올릴 때 푸른 해변과 야자수 밑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모습 대신, 평일 근무 시간대는 어딘가 일하는 사무 공간에서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좀 더 건강한 원격근무 문화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 <갑자기 워케이션>  시리즈 

코로나 이후 유연 근무를 선호하는 직장인과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일하면서 휴가도 즐기는 ‘워케이션'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워크(work)와 베케이션(vacation)이 결합하여 탄생한 혼종의 단어, 워케이션. 완전한 일도 완전한 휴가도 아닌 일의 방식은 도대체 왜 뜨고 있는 걸까? 워케이션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일의 미래일까, 잠시 반짝하고 사라질 유행일까? 뉴노멀시대에 어쩌면 이미 다가온 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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