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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May 26. 2022

모임에서 이성을 만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

자만추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모임이라도 난 자만추가 좋아."


그는 단호했다. 우리는 모임에서 이성을 만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성간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 모임들의 경우 주로 남녀 성비를 맞추어서 진행되는데, 그런 것들은 너무 인위적으로 만남을 유인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싫다고 한다. 


"나는 완전 인만추. 성비 맞춰서 불러주면 너무 감사하지."


또 다른 그는 활짝 웃었다. 모임을 진행한 지 3개월 차, 나는 그동안 모아뒀던 다른 사람들의 '이상형 데이터'를 활용해 매칭 목적의 모임을 따로 열어볼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만약 그런 모임을 연다면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던 중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이었다.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매칭 모임은 생각에서 끝나버렸다. 아쉬웠다. 저번에 왔던 그녀와 이번에 온 그가 내 머릿속에서는 매우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모임에는 다들 이성을 만나려고 오는 걸까? 




| 모임에서 이성 만날 생각 하지 마. 


얼마 전에 친구에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모임을 여는 것을 알고, 혹시 모임에 괜찮은 이성이 오는지 궁금해했다. 일단 나의 경우에는 모임을 진행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사실 그들에게 관심이 적다. 나의 주 관심사는 모임에 온 사람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이야기에 모두 잘 참여하고 있는지, 누가 불쾌하게 하지는 않는지, 너무 춥지는 덥지는 않은지, 공백이 흐르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반쯤 참여는 하고 있지만 사실 내용을 다 세세히 들으면서 그들이 누군지 알아가기까지는 어렵다. 이런 설명을 부가적으로 하고, 나는 이어서 말했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이 이성을 만나려고 나온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 내용도 그렇고, 시선도 그렇고. 근데 특정 목적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매력이 잘 안 보여."


사실이 그렇다. 특히 남자들이 티가 더욱 많이 나는 편인데, 전체 대화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노골적으로 특정 여자분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쏠려있다거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채기 싫어도 챌 수밖에 없고, 그때부터는 미묘하게 다른 남자분들이 그녀를 '저 남자가 호감 가진 여성'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닌 '이성' 간의 대화가 시작되고, 소개팅에서 할 법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등장하며, 졸지에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곁다리 신세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다른 남자분들은 더 이상 그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남자가 아니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남자들끼리는 암묵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알아갈 기회를 잃어버린다. 


정말 '폴인럽'이라서 그런 경우라면 또 다르지만, 경험상 저런 타입의 분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모임에서도 다른 여성분에게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어느 날의 모임에 참여했던 그녀에게 1주일 뒤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모임에서 만난 그와 만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깜짝 놀랐다. 모임에서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녀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하루 재미있게 잘 놀고 끝난 줄 알았는데, 집에 가는 길에 다 같이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고. 


모임에 이성을 만나려는 목적으로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티를 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나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람은 무관심이 관심으로 변할 때, 궁금증이 약간은 생기게 된다. 나한테 관심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에 몇 마디라도 나누게 되고, 얘기를 하다 보면 잘 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 나는 사실 올해 결혼 준비 중이야. 


그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고, 올해 결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이런 소셜 모임에 처음 나왔다고. 나는 일단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결혼 준비가 힘들지는 않은지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 있는데 이런 모임에 나와도 돼?" 옆자리의 그가 물었다. 무례하다고 생각해 그가 대답하기 전에 바로 말꼬리를 물었다. 여자친구 있으면 새로운 사람 만나면 안 되는 거야? 여기 그런 모임 아닌데, 하고 대답하니 여기는 아니지, 하면서 옆에서 다들 거들어준다. 그는 이미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당연했다. 여자친구 있는데 여자를 만나러 온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들 그에게 여자친구에 관한 질문만을 했다. 나는 그가 올해 새로 시작하게 된 사업 이야기가 궁금했고, 저번 주에 다녀온 여행 후기가 궁금했는데, 그는 그냥 가끔 웃을 뿐 입을 닫아버렸다. 결국 그는 세 시간을 채우지 않고 서둘러 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렸다. 


그가 나간 후에도 그는 여자친구가 있으면 이런 모임에는 왜 나오냐며 궁시렁거렸다. 뱉고 싶은 말들이 맴돌았지만, 호스트가 더 날을 세우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다른 화제로 재빨리 돌려버렸다. 


다른 모임은 잘 모르겠다. 이성 친구가 있으면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은 참여하면 안 되는 불문율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일찍 도착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데이트하느라 이런 모임에 참여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녀는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면서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불문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고, 술을 좋아한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모임을 열고 있다. 그들의 연애 상태는 사실 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축하할 뿐 그 이상으로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마음으로 열고는 있지만, 모임은 주로 이성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은 사실 부정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성 목적의 모임과 그렇지 않은 모임은 더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연애 상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일 수 없고, 남녀가 모인다고 이성 간의 텐션이 꼭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관심사를 공유하며 느슨하게 교류하는 모임이 되면 좋겠다. 





호스트로 3개월을 지내다 보니, 모임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확률은 10%도 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규모 모임이라면 또 다를 것 같기도 한데, 소규모 모임의 경우 일단 모이는 사람이 6명 정도뿐이다.  

서울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모임에 오는 사람이 총 6명인데, 그중 이성은 2-3명쯤이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란 계산해보지 않아도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이성을 정말 모임에서 찾아보고자 한다면, 일단 모임을 많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일주일에 3명의 이성을 만난다고 가정하면, 매주 모임에 나갈 경우 한 달에 약 12-15명 정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음에 드는 사람 한두 명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도 나를 마음에 들어야 손뼉이라도 칠 수 있지 않겠는가.

대략 뭐 10명 중 한 명 정도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총 5개월간 75명의 이성을 만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5개월 간 매주 모임에 나간다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이성을 찾아보겠다고 한다면 꼭 목적한바 결실을 보길 바랄 뿐이다. 

호스트의 입장에서는 그냥 즐거운 시간과 새로운 이야기들을 즐기러 오는 분들이 오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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