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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May 09. 2022

모임 이후, 우리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만남과 관계의 함수

"언니, 우리 다음주에 또 만나자. 우리 잘 맞는 것 같아"


모임이 끝나고 남아서 뒷정리를 도와주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게 데이트 신청인건지, 다음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말인건지 약간 헷갈려서 웃으며 그러자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누나, 저번에 모임 왔던 사람들끼리 다음주에 우리 또 놀자"


개인 카톡이 왔다. 한 한달쯤 전 모임에 왔던 친구 같은데, 사실 이 친구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렸다. 그리고 이미 하고 있는 모임 외에 따로 모임을 열어달라는 부탁은 다소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모임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집에 잘 도착했는지, 오늘 즐거웠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사실 궁금하긴 하다. 처음엔 단체 오픈카톡방을 만들어서 사진도 보내고 그 날 모임의 에너지를 카톡방에서 이어가려고 해보았는데, 며칠 이상 유지된 적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쿨하게 이별한다. 


그래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는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의 관계가 모임 이후에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한 번의 만남이 지속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만났다고, 꼭 친구가 되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누가 볼까 싶어 간결하게 작성한 자기소개인데, 모임에 참가하시는 분들 중 종종 부끄럽게도 소개말이 좋아서 왔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즐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들이다. 물어보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곧 그들과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냥 그 날의 무드를 함께 즐기게 되는 사람들일 뿐 관계의 지속에 연연하지는 않는다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되니까. 


내심 저들의 쿨한 면모가 부러워졌다. 나는 잠이 안오는 밤이면 전에 흘러갔던 인연이 떠오르고,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궁금해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연락해보면 되는데, 또 그럴 깜냥은 못되기에 그냥 가슴 한켠만 뒤적거릴 뿐이다. 


그 날 하루 얘기가 잘 통했다고 해서 그와 내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관계의 지속은 여러 상황들에 기인하고, 감정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고 있냐는 문자 한 통에 관계는 시작된다. 스쳐지나가는 줄 알았던 인연이 의지의 개입으로 관계가 되는 순간. 결국 운명, 시절인연이라고 여겼던 것들조차 상호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의 시작은, 결국 누군가의 의지이다.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있다는게 부러워요.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호스트 꿈나무 분들이 많이 방문한다. 본인도 진행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매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부럽다고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새로운 이야기나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운 이야기는 단연코 없다. 매 주 나는 새로 오신분들의 취미를 물어보고, 관심사를 물어보고, 주말에 뭐했는지 물어보는게 다다. 그들은 직장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최근에 시작한 운동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다른 모임에 참여했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매주 거의 동일하다.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 특별한 일을 하느라 이런 사교 모임에 참여할 시간이 없는가보다. 


그래서 나는 한 번 오셨던 분들이 다시 오시는 날이면 두 배로 긴장한다. 처음에는 너무 반가웠다. 모임 이후의 근황도 궁금했고, 그 때 얘기했던 여행은 잘 다녀오셨는지, 소개팅은 잘 했는지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겨서 마냥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아, 이 메뉴 저번에 그 분이 드셨던 건데. 이 옷을 그날 입었던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메뉴를 낸다고 지겨워하면 어쩌지?


그 분은 그 후에도 세 번을 더 나오셨다. 모이는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모임 분위기가 다르다고, 그래서 재밌다고 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 아는 내용도 처음 듣는 척 했다. 한 달에 세 번이나 술을 같이 마셨으면 꽤 친해졌을 법도 한데, 우리는 아직도 개인적인 연락도 하지 않으며 약간의 정보 이외에 서로 아는 것은 없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얉은 곳 같은 자리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밀도가 조금은 높아져야 한다. 어느정도 이해관계가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에너지의 교류에 가까운 것이다.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긍정 에너지가 필요할 때 나는 그 사람이 떠오를 것이고,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웃고 싶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털어놓고 싶을 때 그 사람을 찾게 된다. 이처럼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찾게 되고 관계는 지속된다. 





매 주 보내던 좋은 시간을 아쉬워하던 나는 결국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모임에 참가하신 분들 중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초대해서 인연의 끈을 이어가볼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도 초대하지 못했다. 연락이 올 사람은 오겠지, 내가 너무 질척거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걱정을 잠시 뒤로 하고, 내일 오시는 분들은 초대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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