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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May 01. 2022

나는 참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오지랖에 관하여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월세가 얼마야?"


반말 모드를 켜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처음 던진 질문이다. 무려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내 이름보다 사무실의 월세가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조금은 실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에 얼마정도 벌어?"


사무실 공간을 안쓰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여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나니, 훅 들어온 질문이다. 멋쩍게 웃으면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고 월세 정도만 충당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질문들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머리를 힘껏 굴려 화제를 얼른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아니었고 그냥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아 보였다. 말끝에 실례일 수도 있는데,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속으로 이런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이 이상한건지 궁금했다. 사실 뭐 사무실 월세가 1급 기밀정보도 아니고 부동산 어플만 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공간대여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사업의 수익률이 궁금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참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걸까?




| 내가 언니니까 말하는건데, 


나이와 호칭은 이래서 문제다. 더 오래 살았다고 다른사람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종종 위아래(?)가 없다는 코멘트를 듣는 편인데, 나이가 많던 적던 격식없는 성격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는 것을 워낙 싫어하고 무관심한 편이어서 그냥 가벼운 일상 대화 정도만 거는 편인데, 스몰톡엔 나이가 상관 없으니까 편하게 대화를 거는 것이다.  


예전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분과 술을 한 잔 하다가 그 분이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랑 친해지고 싶은데, 뭔가 선이 그어져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얘기는 매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워낙 속마음 얘기를 잘 안하다보니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다.


순간 너무 놀랐다. 일단 예전부터 종종 듣던 말이라 그렇기도 했고, 나는 그녀를 꽤 친한 친구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카톡했고, 일주일에 두 세번 이상을 만났고, 그 중 하루 정도는 맥주 한 잔을 함께했다. 심지어 남자친구보다도 더 자주 연락하는 사이였다. 그 후로 나름대로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녀는 이후로도 계속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함께 하던 일이 끝나게 되면서 우리의 관계는 사라졌다. 


예전에 친구들과 다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고 있던 그도 껴 있었는데, 우리는 개인 일정을 빙자해 몇 시간 동안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저녁에는 각자 씻고 다 같이 술을 마시러 모였는데, 그가 같은 옷을 또 입었길래 옷을 하나만 들고 온 거냐며 농을 걸었다. 그는 웃으면서 낮에 같이 다닐 때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너는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라고 장난으로 되받았다. 나는 정말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냥 가만히나 있을 걸 그랬다. 관심이 부족했던 나와 섬세했던 그는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어떤 오지랖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조금은 무례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리스크를 떠안은 채 던지는 일종의 애정표현인 것이다. 적당한 수위와 알맞은 표현, 오지랖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 언니는 옷을 대학생처럼 입고다니는 것 같아 


물론, 먼저 오늘 내 옷이 어떤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본 적 없다.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되던 회사에서 근무하던 어느 겨울, 외부와 미팅이 잡혀있지 않은 날이면 나는 후드티만 주구장창 입고다녔다고 한다. 스타일이 나와 정반대인, 꽃과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를 즐겨입던 그녀가 어느 날 내게 갑자기 말한 것이다. 


옷과 패션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냥 눈에 보이는 어제 입지 않은 옷 중에 아무거나 집어입고 나오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그 날 입었던 옷은 내가 10년 전 대학생 때 샀던 후드티가 맞는게 아닌가. 와 어떻게 알았어? 라고 웃으면서 대답하고 나는 집에와서 30대 직장인 여성 의류 쇼핑몰을 검색해서 블라우스와 슬랙스를 잔뜩 구매했다.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는 날이면 오늘따라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진하게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볼에 블러셔까지 바른 날이면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러 가냐는 질문을 받는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까 무언가 변화가 생기면 알아차릴 수 밖에 없고 그것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이 뭐 나쁜 것은 아닌데, 이러다보니 출근할 때 적당한 복장이 뭔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대학생이 입는 옷이 정해져 있는 거야? 라고 남자친구가 말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나보다도 더 담백한, 오지랖이 0에 수렴하는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30대 여성 직장인이 입어야 하는 옷은 어디 법규에 정해져 있는 것일까? 나이에 맞는 복장이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면, 우리 서로 각자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멈추면 어떨까. 기준이라는 것이 각자 다 다르고, 그 사람이 어떤 복장을 입던 어떤 행동을 하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나의 평가를 뺀다면 오지랖에서 관심만 남을 것이다. 언니는 후드티를 좋아하는구나, 요 정도? 




| 이름이나 나이도, 밝히기 싫으면 말 안해도 돼  


다시 모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인원이 다 모이고 나면 모든 소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자기 소개인데, 이 순서야말로 모임 호스트의 성향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참여했던 행사나 모임의 경우 자유롭게 개인이 알아서 하게 두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이 경우 보통 첫번째 사람이 말했던 내용 위주로 전체가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분위기가 된다), 무엇을 말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지역이나 직업등 어느정도 가이드라인을 주는 경우도 있고, 간단한 게임을 이용해 아이스브레이킹과 함께 재미있게 진행하는 경우도 봤다. 


나의 경우 모임 소개에도 미리 써놓았는데, 이름이나 나이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보통은 이름, 직업, 지역 정도는 말하는 편이고, 가끔 정말로 나는 OOO이야 끝! 이라고 이름만 말하시는 분들도 있다.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그냥 각자의 최근의 관심사 혹은 경험담 위주의 토크가 주로 흘러간다. 놀랍게도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면, 오지랖을 부릴 건덕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서로 너무 아무것도 모르면 할 얘기가 없지 않을까, 고민을 했던 부분이긴 한데 정말 무색하게도 할 얘기는 항상 넘쳐난다. 그리고 술과 함께라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사소한 이야기에도 우리들은 모두 깔깔 웃어댄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가장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오지랖이 빠진 자리가, 웃음과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물론 모르는 사이에도, 오지랖과 참견은 간혹 등장한다. 


들어오자마자 내 사무실의 월세를 물어보던 그는, 결국 본인이 어플을 켜서 이 오피스텔의 현재 시세까지 알아내고 나서야 궁금증이 해소된 듯 보였다. 나는 그런게 왜 궁금한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는 그 가격에 대해 비싸다거나 싸다거나 본인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참견의 범위는 여기까지였다. 그 어떤 것이든, 궁금하면 물어볼 수 있다. 나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한 본인 생각이나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그것은 '무례함'으로 다가온다. 본인의 잣대는 살포시 접어둔 채, 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주는 사려깊은 오지랖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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