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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Apr 27. 2022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연하 vs 연상

"나는 티키타카가 잘 되는 사람이 좋아."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가 갑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술모임에선 으레 그렇다. 주로 의식의 흐름대로 화제가 훅훅 바뀌기 마련이다. 마침 다른 사람이 지난주에 했던 본인의 소개팅 후기를 풀고있던 참이라,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이상형'으로 넘어갔다. 크리스 프랫!을 외친 나와는 달리, 다들 연애 상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들을 나름 진지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외모는 안 봐. 외모보다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지. 20대에는 외모만 보고 만났는데, 30대가 되니까 관심사나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좋더라."


남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몸짓을 보냈고, 나는 심드렁하게 그게 제일 어려운데, 라고 말을 덧붙였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니, 속으로 저 친구는 연애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남자들이 외모를 안 본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문득 며칠 전에 친구에게 왔던 카톡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21살이랑 40살 둘 중 한 명이랑 연애해야 한다면 누구랑 할거야?"


반응은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다. 나이와 연애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우리는 둘 중 더 잘생긴 사람을 고르자는 결론을 냈다. 


연애 상대의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일까?





| 나는 무조건 연상. 나이가 많아도 괜찮아. 


여자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유형으로, 이들은 연상만 선호한다. 남동생이 있는 경우가 왠지 많은데, 연하는 동생 같아서 챙겨줘야할 것 같다고. 의지할 수 있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확률적으로 연상일 경우가 조금 더 높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나도 연상 페티시를 가지고 있었다.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 K장녀로 살아오면서, '오빠'들이 나를 챙겨주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리고 왠지 나보다 어른이니까, 고민이나 내 미숙한 생각들을 다 받아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듬직한 사람이 잠깐잠깐 애교있는 모습을 보이면,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특히 20대 초반에는 몇 년 사이에 수많은 경험을 하고, 삶이 여러모로 변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 보면 어린 나이인 24살, 25살쯤만 되어도 나보다 훨씬 어른처럼 느껴졌다. 


작년 어느 날,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만난적이 없으니까 거진 15년만에 얼굴을 보게 된 거다. 남녀로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고, 동종 업계 사람이어서 일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가슴 한 켠 예전 추억 속의 작은 설렘을 안고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왠 아저씨가 서있었다. 나랑 두 살 차이나는 오빠였는데,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곳곳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뱃살이 푸짐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저녁은 즐거웠지만, 그 날 이후로 나의 연상 페티시는 싹 사라졌다. 




| 남자는 무조건 어린 여자지. 어린데 성숙한 사람도 많아. 


연하 신봉자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나이가 어리다고 사람이 어리지는 않다는 것. 숫자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얼마 전에 한 프로젝트에서 몇 개월간 함께 일했던 친구도 나보다 두 살이 어렸는데 사회생활 경험이 나보다 오래되서 그런지 엄청난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전혀 동생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그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어린 여성을 선호하냐는 질문을 하면 많은 남자들이 '그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성숙한 스타일이 좋다면 나이가 많은 연상을 좋아하면 되는 일 아닌가? 왜 어린데 성숙한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젊음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할때면 마치 나는 그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흡혈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옆에 있으면 나도 그들처럼 아직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은 사소한 일에도 즐겁게 함께 웃고 작은 고통에도 함께 울어준다. 


나도 그랬을텐데, 버린 적이 없는데 어디로 사라진건지.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나는 왠만한 일들은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30대 특유의 차분함과 침착함을 얻은 대신 꺄르르함과 작별했다.  


연하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런 에너지에 끌리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들의 미성숙함과 불안정함을 받아 줄 수 있는 침착함이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나이 차이가 있는 커플이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 




| 난 친구 같은 연애가 좋아. 동갑끼리는 공감대가 엄청나거든. 


친구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되는 커플을 종종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다. 나에게 사랑과 우정은 전혀 다른 감정이고, 심지어 같은 나이면 저 사람의 세계는 나와 매우 흡사하다. 새롭거나 궁금한 점이 상대적으로 적을 텐데, 친구가 어떤 이유로 언제 갑자기 남자로 느껴지는 걸까?


저번 모임에서 서로의 연애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분이 본인은 여태까지의 연애 상대가 모두 다 친구였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였는데 어느 날 둘이서 술을 먹다 갑자기 뽀뽀하고 싶어졌다고. 뽀뽀는 못참지, 라고 대답하며 이어서 물었다. 그러면 사귄 이후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거야? 그녀는 호칭만 바뀌었을 뿐, 나누는 대화는 예전 친구일 때와 비슷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이런 부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티키타카가 가능하고, 2002년 월드컵을 같은 해에 봤고, 불수능도 함께 치뤘으며,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하다보니 서로의 삶에 깊은 이해와 공감대가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동갑이랑 연애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동반자같은 느낌이랄까, 사회에서도 동갑이랑은 이유없는 유대감이 있지 않나. 초면에도 '동갑 이에요'라는 말 한마디면 우리는 경계 가드를 한단계 내려놓는 한국인이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숫자만큼의 취향을 함께 접하게 된다. 연애 상대의 나이에 대해서도 각자의 선호도가 다 다른데, 얘기를 들어보면 이전의 연애들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전에 만났던 연하 여자친구를 기준으로 '연하 여성과의 연애'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연상 페티시가 있던 나는 연하의 남자친구와 8년 째 연애중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애를 하게 될 거라고도, 그것도 연하랑 만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해보지도 못한 일이다. 사람 일이, 특히 감정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결국은 진리의 사바사, 느낌오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이상형을 크게 퉁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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