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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Apr 20. 2022

퇴근하고 모르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는 이유

외로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그녀는 모임 시작 시간보다 30분이나 전에 와서는 문 앞에서 물었다. 아직 배달시킨 음식도 도착하지 않았고, 의자랑 테이블 세팅을 하기도 전이었다. 혼자 천천히 준비해서 짠-하고 대접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미 문 앞에 도착한 사람을 시간 맞춰 다시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 흔쾌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아직 준비중인데, 괜찮으면 도와주실래요?"


그 날은 내가 처음으로 모임을 열었던 저녁이다. 4명이 모이기로 했기 때문에 단 둘이 있게 되기라고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다행히 그녀는 매우 살가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마치 와봤던 것처럼 내 서랍장 속의 그릇을 척척척 잘도 세팅한다. 접시를 세팅하면서 우리는 공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이 인천이라고 했다. 회사도 인천이라고 한다. 모임에 오려고 약 한시간 반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강남역까지 와서, 또 10분 정도를 걸어서 왔다고 한다. 그 날은 외근 일정이 계획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고. 


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까지 와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걸까? 나는 궁금해졌다.






|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모임에 나오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다. 약간 과장해 80% 이상은 같은 이유를든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고, 친구들이랑은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가볍게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모임을 찾는다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동료와 함께 보낸다. 아침부터 해가 지는 순간까지 같은 사람들과 일주일 중 5일을 같이 일한다. 퇴근하면? 여기서부터는 각자 다른 이야기겠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언제부턴가 나의 세계는 같은 얼굴들로만 채워진다. 


그러다 문득, 외로워진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끔 만나서 노는 친구들도 있고, 매시간 울려대는 단톡방도 있는데,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의 이유는 일상의 단조로움 때문이다. 같은 곳으로 출근해서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 퇴근 후에 우리는 3-4시간 정도의 자유를 갑작스럽게 부여받게 된다. 그러면 고민이 시작된다. 이제 뭘 해야하지? 그리고 궁금증이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 뭐하고 지낼까?


해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모임에 하나둘씩 모인다. 형태는 다양하다. 모여서 같은 취미를 즐기기도 하고, 술을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한다. 요즘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모임이 인기가 많다. 짧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제 느꼈던 외로움은 잠시 사라진다. 엄청나게 잘맞는 영혼의 단짝을 만났다거나 평소에 안하던 놀라운 일들을 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반복적인 일상의 테두리에서 살짝 한발 내딛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한다. 




| 근데 너무 사람 많은 모임은 또 불편해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사무실이 크지 않기도 하고, 본인도 소규모 모임을 선호하는 편이라 주로 4~6인 사이에서 인원을 모아 진행한다. 단순히 자기소개를 하고 하하호호 술잔을 기울이며 즐기는 가벼운 술자리가 아닌, 한명한명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다함께 들어줄 수 있는 소그룹만의 분위기가 즐겁다. 


친목 모임의 경우 대부분 10명 이상 혹은 20명 이상까지도 모임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도 결국 한 테이블에 앉게 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같은 모임에 나왔는데도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헤어지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모임의 적정 인원은 몇 명일까? 


경험상 5명이 모였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질문이 질문이 되어 돌아오고, 웃음과 진지한 대화 사이의 그 어디쯤 머무르는 시간. 4명이 모이면 꼭 한 명이 전체적인 대화를 압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6명의 경우 가장 조용한 한 명은 이야기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으면서 대화의 만족도가 높았던 날들은 모두 5명이 모였을 때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인데,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원 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날의 대화의 밀도이다. 성격 심리학에서 구분하고 있는 Big 5(외향성, 친화성, 성실성, 신경질성, 개방성)중 개방성에 관한 것이다. 모인 사람들의 개방성이 높을 수록 그 날의 대화는 더욱 즐거워진다. 모임에 참여해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는 내면의 잣대 대신에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여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다. 사람은 입체적이고, 짧은 시간의 단면으로 한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것은 모임에 나오는 이유를 무색하게 하고 나를 더 조그만 세계 안에 가두어버린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도 외로움을 느낀다면, 이러한 이유일 가능성도 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분명 리스크가 존재한다. 

나와 상식이 정반대일 수도 있고, 단순히 성격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아니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모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올 확률과 비슷하다. 


다음 모임에서 어쩌면 너무 닮아가고 싶은 멋진 사람을 만날 수도, 심심할 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생길 수도, 취미가 나랑 비슷해서 혼자 하기 힘들었던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길 수도, 아니면 눈물 쏙 빠지도록 웃으면서 즐거운 술자리를 가질 수도 있다.


모든 건 가능성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 조금의 가능성이 생기는 그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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