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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Apr 18. 2022

우리 반말로 얘기해볼까?

Alcohol and the city 알콜앤더시티

나는 '반말 모드'로 모임을 운영한다. 


"그런데 왜 이런 모임을 하는거야?"


모임을 운영하면서 약 열댓번쯤 들었던 질문이라 항상 가슴에 정형화 된 대답을 품고 있지만, 마치 대단한 포부를 이야기하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평소 혼자 일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도통 없어서, 누구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술 한잔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흔한 질문에 더 흔한 답변을 달았고, 다들 끄덕거리며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 마디씩 덧붙인다. 


"반말로 얘기하니까 처음엔 어색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진다!"


바야흐로 나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시대다. 지금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은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아닌 사회에서 만난 4살쯤 어린 친구들이다. 나보다 10년을 더 살았지만 나와 똑같이 올해 창업을 결심한 분과도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 


나이, 직급, 선후배라는 구분은 더 이상 친구를 만드는데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 역시 술을 같이 마셔야 빨리 친해진다니까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술 한잔을 같이 마셔야 좀 친해지고 그렇다고. 그런데 이 '술 한잔'의 기준이 애매하다. 각자 좋아하는 술도 다르고, 주량도 다르고, 마시는 스타일도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술을 어떻게 마셔야 술 한잔을 같이 하는 것일까? 소주 한 잔을 다 함께 나누어 마시는 것은 같이 술 한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 큰 어른들은 정말 꼭 술을 함께 마셔야만 친해질 수 있는 걸까?


운영하고 있는 3개의 모임 중, 2개의 모임은 술자리 모임이다.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만나면 친해지기 조금 더 쉬운 것은 경험상 사실인데, 이유는 이 사소한 공통점이 어마어마한 대화거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술이 뭐야? 부터 시작해서 해외 여행을 가서 먹었던 와인 한 잔에 대한 추억까지 말그대로 이야기가 빈틈없이 술술 이어진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분명 다르다. 같이 술을 먹는다고 친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취한 모습을 보고 더 빨리 멀어지는 일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의 존재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개인의 상식은 모두 다 다르고, 가치관과 성향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때처럼 시간을 들여서 옆에 있는 사람을 알아가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과정을 견뎌내기에 우리는 모두 너무나 바쁜 현대인이다. 나이가 들어서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까지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뿐이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기들과 무언가 끈끈하고 돈독한 전우애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게, 즐거운 술자리를 함께 하는 것도 확실히 친해지기에 도움이 된다. 



| 반말은 해도, 나이가 다른데 이름을 부르기는 이상하잖아


반말모드의 최대 문제는 '호칭'이다. 언니, 누나, 오빠, 형, 형님, 동생, 선배, 후배등 온갖 호칭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나이가 나와 같거나 적은 사람들 뿐이다. 호칭으로 관계가 한 번 정립되고 나면, 우리는 사회의 정형화 된 해당 호칭의 페르소나에 그 사람을 가두어 놓고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이런 걸 물어보면 실례겠지? 나보다 어린데, 이런 말을 하면 꼰대같겠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시작된다. 


호칭은 마음의 경계이다. 호칭을 내려놓고 나면, 마음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진다. 그리고 경계가 사라질수록 더 많은 기회들이 찾아온다. 서스럼없이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고, 솔직하게 포장없이 대답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어느 날의 모임에서, 호칭을 자연스럽게 생략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날 제일 어린데도 불구하고 말을 걸 때 이름을 꼬박꼬박 부르는 것이 아닌가. "정현이는 요즘 취미가 뭐야?" 마치 애기한테 얘기하듯 열 살 많은 멤버에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그 날의 모든 멤버가 다 호칭을 생략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날 끝까지 서로의 나이를 알 지 못한 채 헤어졌다. 생각보다 어색스럽지 않았으며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알게 되었고,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나이를 몰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반드시 술을 같이 먹고, 반말을 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결국 하고자 한 것은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함께 하루종일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경어를 사용하면서도 절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다음 모임부터는 호칭을 없애볼까 한다. 

반말 모드에 덧붙여서 서로 이름으로 부르기. 아직 어색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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