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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부자작가 Jan 14. 2024

아는 사람만 아는 그 국민학교

그 시절 내 참새방앗간

80년대 세대의 내 추억을 더듬어본다.


초등학교, 그 시절 국민학교 문방구에는 -지금은 작아진- 퇴계이황 지폐 한 장이면 부자가 따로 없다. 


논두렁밭두렁, 호박꿀맛나, (먹는) 테이프, 쌀대롱, 아폴로, 어묵포... 골라잡는 재미도 있었다. 한라산 담배 심부름하고 받은 300원에 빅파이 한 개를 50원 주고 사 먹고 남은 돈 250원. 동네슈퍼와 달리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 살 수 있는 게 10가지가 넘었으니 길 가다 동전을 주우면 콧노래가 나오는 날이다. 


잽싸게 살 것을 사면 문방구에서 나가야 한다. 문방구 앞은 짓궂은 남자애들 천지다. 방구탄을 터트리고 놀리거나 콩알탄을 던지고, 어묵포 비닐에 공기를 넣어 빵빵하게 만들어 발로 밟아 큰 소리로 놀라게 하기 일쑤다. (학교 수돗가에선 운 나쁘면 안 먹은 서주우유가 터질 수 있다.) 


문방구에 자주 갔던 이유는 따로 있다. 신상 때문이다. 색칠공부, 종이인형, 책받침, 공책, 연필. 신상이 차고 넘친다. 특히 색칠공부. 얼굴의 반만 한 눈 초롱초롱, 공주 의상에 가득한 프릴까지. 그만한 사치품이 없다. 한 권, 두 권 사 모은 것이 수십 권이었다. 색칠하긴 아까워서 눈으로 보기만 하다 중학생 어른이 되는 기념으로 사촌 동생에게 넘겼다. 목이 부러질까 아까워서 뜯지도 못한 종이인형과 구구단이 있던 책받침은 덤이다.


먹는 것보다 사 모으는 내게도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 세 곳 있었다. 첫 번째는 분식점이다. 문방구 옆 분식점은 초록색에 흰색 얼룩무늬가 있는 접시에 비닐을 씌워 빨간 떡볶이를 덜어줬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접시에 비닐 씌워 뜨거운 음식을 주면 환경호르몬이니 뭐니 하며 난리겠지만, 초록접시에 모락모락 연기 나는 어묵국물 안에 오뎅꼬치와 숟가락이 담겨 나오면 보기만 해도 뜨뜻해진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한 건 핫도그였다. 엄지 손가락만 한 싸구려 햄 한 조각을 넣고 밀가루 반죽으로 부풀린 핫도그를 양념치킨 소스를 듬뿍 발라줬다. 내 주먹보다 큰 핫도그를 단돈 100원에.

양념치킨은 처갓집이 유명한 시절, 치킨을 사 먹지 않고도 빨갛고 맵지 않게 달큼한 소스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때도 맵찌리였던) 그러니 방앗간일 수밖에.


두 번째는 띠기, 뽑기로도 불리는 달고나다. 날이 쌀쌀해지면 학교 옆 공터에 연탄불이 놓인다. 은은한 연탄불 옆엔 물 담긴 깡통이 놓여있는데 달고나용 국자를 고를 수 있었다. 매서운 눈길로 비교적 깨끗한 국자를 고른 뒤엔 50원을 낼지 100원을 낼지 고민해야 한다. 50원짜리는 하얀 조각을 받을 수 있다. -뒤늦게 알았지만 포도당 블록이다- 하얀 조각은 저렴하긴 한데 녹이는데 오래 걸린다. 100원은 설탕 한 수저 반으로 갈라진 젓가락 하나를 받을 수 있다. 한 톨도 흘리지 않게 연탄불 앞으로 옮기면 집중해야 한다. 내가 고른 연탄통의 연탄불이 뜨거우면 설탕이 금세 까맣게 되고 너무 온도가 낮으면 설탕이 녹는데 시간이 걸린다. 가장자리부터  설탕이 녹는데, 그 시간이 제일 견디기 힘들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서 얼른 만들어 먹고 싶어 진다. 급한 마음에 가운데 있는 설탕을 젓가락으로 슬슬 밀어내서 녹인다. 설탕이 모두 투명하게 되면 지금부터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연탄통 옆에 철사로 고정된 깡통에서 젓가락으로 소다를 콕 찍는다. 그리고 재빨리 투명하게 바뀐 설탕시럽에 넣어서 엄청 빠는 속도로 저어준다. 하얀색 가루가 닿자마자 연갈색으로 변하면서 부풀기 시작한다. -이때 국자가 너무 뜨겁다면 연갈색 띠기는 금세 찐한 갈색으로 된다.- 젓가락으로 푹 찍어 호호 불어 먹는 띠기 맛은 말이 필요 없다. 국자에 눌어붙은 띠기 연탄불에 다시 살살 녹여 소다를 살짝 더 넣으면 다시 부풀어 오른다. 국자를 박박 긁어먹고 나야 입안도 뱃속도 달달해지며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은 호떡집이다. 허리를 졸라매 정리해 둔 선풍기처럼 여름내 그 자리를 지키던 이동식 점포다. 날이 썰렁해지면 슬그머니 펼쳐진 점포 안에서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흐른다. 기름 묻힌 손으로 반죽을 떼어 설탕소를 채운다. 뜨거운 철판에 톡 떨어뜨리면 지글지글 기름소리가 난다. 호떡누르개로 뒤집는다. 가운데만 동그란 갈색이다. 꾹 누르면 누르개 모양 가장자리로 넓혀지는데 그 순간이 제일 참기 힘들다. 기름에 익는 소리와 반죽 익는 냄새에 꼬르륵 소리가 커진다. 얼른 집어먹고 싶은데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앞뒤로 노릇노릇해지면 호떡을 반으로 접는다. 사각형으로 자른 종이 두 장에 싸주면 맘이 급하다. 호호 불었는데 뜨거운 설탕물은 입천장을 홀랑 까지게 한다.


어느 겨울, 호떡아줌마가 호떡대신 다른 걸 굽고 있었다. 주황빛 귤이었다. "신 귤은 이렇게 구워 먹으면 맛있어" 검은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귤,   뒤집개로 뒤집었을 때 까만 자국, 김이 나는 귤을 입에 넣을 때의 낯섦.(호언장담보다 달지 않았고 뜨거워 물컹했던) 인상 써지게 신 귤을 먹을 때면 아줌마가 구워줬던 그 귤 한 조각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 가본 국민학교는 왜 이리 작은 건지. 내가 큰 건가, 학교가 작아진 건가 알 수 없다.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수돗가, 운동장 계단, 문구점, 띠기 파는 공터였던 곳. 기억을 덮어 바라봐도 이젠 낯선 풍경이었다.

 

아이의 세상은 커진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자라야만 하는 때가 온다. 어른의 눈은 아이가 볼 수 없는 것까지 생각하게 한다. 둘리를 구박하던 고길동 아저씨의 선함, 돌아누운 등에 새겨진 삶의 고단함. 날 데려다주고 뒤돌아가는 작아진 아빠의 뒷모습.

우리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이였던 세상을 더듬거리며 찾는다. 낯선 매일에 힘이 들 때면 좋았던 기억을 꺼내 기댄다. 그래야 또 오늘을 살아갈 테니까. 지금이 새로운 추억이 될 때까지 묵묵하게 하루를 쌓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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