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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Nov 14. 2022

초보야, 울지 마!

나도 당신도 초보였다.

  사무실에 새로운 원두커피 기계가 들어왔다. 윙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어서 머그잔에 쪼르륵 떨어지는 커피 물소리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이야, 꼬순내 난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참기름 방앗간 지나갈 때 나는 냄새 같아요!”

  커피와 참기름은 아무래도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요?”

  동서양의 먹거리가 맛은 달라도 향기는 비슷한가 봅니다. 하하하.”


  새 커피 추출기에 신이 나서 너도나도 여러 잔의 커피를 내리다 보니 복도까지 커피 향이 진동했다. 갑자기 찌꺼기를 제거하라는 불빛이 들어와서 이리저리 살피며 매만진 끝에 다시 “윙”하는 기계음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기계를 설치하며 유튜브 동영상 사용법을 검색해봤다는 동료에게 보내는 고맙다는 작은 액션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출근길에 나눴던 딸과의 대화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의 딸은 스물다섯, 새벽 7시면 출근길에 나서야 하는 초보운전자로 갓 취업한 직장 새내기다. 직장이 집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3번 갈아타야 하고 배차간격이 길어서 2시간 정도 불편을 참아내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평소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이나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아침마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강제로 운전 연습하며 출근길에 나선다. 그러나 초보라 아직 혼자서 운전이 불안하니 퇴근길은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긴장해서 내비게이션도 쳐다볼 수 없고 오로지 앞만 보면서 끼어들기를 할 때는 벌벌 떨며 진땀을 흘린다. 어느 날은 버스에 막혀 차선 변경을 못 하는 바람에 아래위로 떠 있는 십자형 교차로를 연속해서 다섯 방향을 돌고서야 원하는 방향의 차선 변경에 성공했다. 시간이 흐르니 이제는 운전 중 약간의 대화도 가능해졌다.

      

  초보운전이라 힘들지? 직장에서도 막내에다 무슨 일이든 초보라서 힘들겠구나. 우리 사무실에 커피 추출기 설치하니 좋더라. 너희 사무실 커피 추출기는 네가 관리해야 한다며? 짜증 내지 말고 초보는 어디든 힘든 거란다!”


  “엄마깨끗한 커피 마시려면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데 막내 초보인 내가 해야죠퇴근 30분 전에 야근 팀원들 식사 메뉴 주문도 하고 커피추출기 물도 채워야 하는데 물통에 물 받아오면 팀장님도 무겁다고 들어주셔요중요한 내 업무들도 초보라 서툴다고 팀원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내년에 새 막내가 오더라도 같이 도와줘야죠.”

    

  요즘 새내기 직장인의 한 이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업무도 초보, 운전도 초보! 운전을 못 하면 민폐라고 아침마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업무용 차량으로 출장을 나갈 때도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라고 충고해줬다. 나는 딸내미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되짚어서 출근한다. 돌아오는 길은 20분밖에 안 걸리지만 25년 운전경력자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채 요리조리 피해서 잘도 달린다. 다른 운전자들이 한마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뭐야, 초보운전 맞아? 미꾸라지 같네….”

  초보운전 아래 작은 글씨로 배려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얄미워도  칩시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스님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직장 새내기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현대인들은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관계의 과잉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직장 새내기들은 마음이 무척 두려울 것입니다. 사회 자체가 공부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잘 이겨내야지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도 직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에 등이라도 토닥토닥해주고 싶어 진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남이 내려놓은 커피를 야금야금 먹기만 했었는데, 원두를 갈고 물을 올리고 걸러진 찌꺼기를 치우고 포트 병을 닦는 수고를 하신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사람을 위해 커피 추출기를 설치하도록 예산을 지원해주시고 그동안 뒤에서 말없이 점검하고 청소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신 분들 덕분에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수고로움을 새내기 초보의 마음으로 함께 나눠야 할 것 같다.


  누구에게나 초보의 시작이 있었다. 나도 당신도 초보였다. 초보자의 일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 수도 있다. 오늘만이라도 초보운전자를 위한 배려나 커피 한잔을 먹기 위해 숨은 노력을 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읽어주자. 처음으로 입학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초보 직장인 등 첫걸음을 떼어내는 두려운 용기에 작은 관심을 나누어 주면 좋겠다. 나에게도 다시금 퇴직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보 은퇴자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하자.

   초보야, 울지 마라. 당신도 금방 개구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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