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휴일 같으면 오전 내내 이불 껍데기 속에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인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관계로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하게 무장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차를 놔둔 채 오랜만에 사그락사그락 하얀 눈 위를 밟는 소리에 취해서 추운 날씨임에도 새벽 공기의 상쾌함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눈 쌓인 도로 위를 달리며 염화칼슘을 뿌려대는 차량이 천천히 지나갔다. 하얀 쌀알을 도로에 쏟아놓듯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새벽길을 달리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시내 거리 풍경들이 두 눈에 들어왔다. 생각하며 걷는 즐거움의 묘미를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나 보다.
김밥집 유리창 너머로 밥솥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바삐 김밥을 마는 주인장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금식 상태인 뱃속이 꼬르륵 요동을 쳐댔다.
자주 애용하는 만두가게 셔터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른 아침 영업 전에 만두를 사 먹을 일이 없다 보니 그동안 내려진 셔터를 보지 못했는데 더욱 신뢰가 가는 문구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네 최고로 맛있는 만둣집이 틀림없었다.
‘믿지 않겠지만 지금은 만두 연구 중,
open : am 11 - pm 11. 일요일은 쉽니다.’
병원 근처에 다다르니 한 커피 가게의 불 밝힌 유리창의 글씨가 내 발길을 사로잡았다.
‘당신이 좋은 건 내겐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누군가가 떠올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커피 가게가 이래도 되는 거야? 이를 어쩌나! 건강검진이 끝나면 들러야 할 곳이 많아졌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에 김밥이라….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더라도 벌써 입속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들은 군대에서 취사병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른 군인들은 휴일이면 아침밥을 안 먹고더 잘 수 있지만, 취사병은 이른 새벽부터 밥을 해야 한다며 농담 섞인 푸념을 했었다. 그렇다고 아들이 취사병은 아니었다. 결국은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힘겨운 시간이리라.
돌아오는 길에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이 나부낀다. 연말 문화예술공연 홍보성 현수막이 가로등 병정들을 사열시켜 거리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