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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Dec 13. 2022

첫눈, 너 뭐냐?

내릴까  말까.

  1주일 전에 내렸던 첫눈 풍경이 스쳐 갔다.

  운동장에 퍼붓던 눈들이 쌓일 틈도 없이 몇 시간 만에 금세 녹아버렸다. 주차장과 화단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눈을 개구쟁이들이 한 주먹씩 쥐고 몇 번 던지고 나니 흔적도 없어졌다.

운동장에서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올려다보는 까만 눈동자들이 원망스러운 눈길로 째려보아도 더는 흩날릴 하얀 눈이 부족했나 보다. 그래도 뿌린 김에 인심 좀 쓰실 일이지, 첫눈은 그렇게 두 눈 밖으로 사라져 갔다.

  '첫눈, 너 뭐냐? 눈 값은 하고 가야지!'

  


 

  오전에 코피를 흘리며 보건실을 방문한 1학년 남학생 승호 때문에 진땀을 뺐다.

두루마리 화장지 1통을 다 쓰고 특수 거즈를 콧속에 넣은 채 30분이 넘게 지혈을 해서 간신히 코피가 멈추었다. 가정에 연락해서 이비인후과를 방문토록 설명하는데 바쁜 보호자가 올 수 없는 형편이란다. 조금씩 목 뒤로 넘어가는 코피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움직이면 또 출혈이 생길까 봐 눕히지도 못하고 교실로 보낼 수가 없어서 다시 1시간을 지켜보았다. 내 책상 맞은편에 앉아 심심해하는 승호에게 그림책을 한 권 읽으라고 내어줬다.

  "보건 선생님, 저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여기 좀 보세요."

  "무엇 때문에 그럴까?"

  "뚱뚱하고 못생겨서 놀림받는 그림책의 주인공 이름이 내 이름하고 똑같아요."

  "어머나, 하필 이름이 똑같다니 이런 우연이 있나? 그러면 ‘승호’ 대신 ‘승훈’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읽어보렴."

  돌아서서 혼자 빙그레 웃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창밖을 내다보니 반갑게도 일주일 만에 두 번째 눈이 내린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건조한 공기를 휘감고 눈이 제법 날린다.

  '오호, 드디어 눈이 쌓일만한데? 퇴근길이 조금 걱정은 되지만….'

     

  하교 시간이 되어 우산을 받쳐 든 학생들 사이로 눈 쌓인 운동장 인조 잔디 위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학생들도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든 하굣길 풍경은 겨울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음을 실감케 한다.

실과시간에 손뜨개질을 한 6학년 학생들이 목도리를 감싸준 덕에 눈을 맞으며 버티고 서있는 교정의 나무들이 즐겁게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가루 들이 햇살에 반짝거린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창밖 겨울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다.

어느새 운동장에는 크고 작은 발자국만 어지럽게 널려있다.

시간이 흐르면 발자국도 사라질 텐데 내 발자국이라도 찍어주어야겠다.


  그런데 또 눈이 멈추었다.

흰 눈이 덮인 풍경들이 잠시 머물다 갈 모양이다.

금방 멈출세라 얼른 나가 사진으로 담아본다.

하루에도 여러 번 눈앞에서 이렇게 새로운 풍경들로 바뀌어 간다.

지겨울 만하면 스스로 풍경을 바꾸어주는 자연의 선물이 눈물겹도록 고마워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성장과 노화라는 변화 속에서 외모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나이 듦을 느끼면서 지나온 젊은 청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모습도 아름답게 무르익는 변화 자체가 신께서 주신 축복은 아닐까?

  즐길 수 있을 때 마법 같은 겨울 풍경을 즐기시라.


  오늘 같은 눈 속에도 택배 기사님이 물건을 배송하고 가신다.

  "모든 산타님, 루돌프 씽씽 카 조심조심 안전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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