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초파리 돌보기>를 읽고

by 김비랑



온갖 곳에서 앞뒤로 굴렀음에도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되는 이원영이 있다. 원영은 과학기술원 실험동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아 초파리 돌보는 일을 게 된다. 모든 게 준비된 환경에서, 의사처럼 새하얀 가운을 입고, 대학생들 사이에 섞여 학식을 먹으며 일한다. 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영은 초파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은 병을 얻게 된다. 원인 모를 미진단 질환 탓에 온몸의 털이 빠졌고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계단 오르는 워졌고 5월에 털모자를 썼다.

원영의 딸 지유는 병의 원인이 실험동에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초파리를 데려오면서 병이 시작된 거라고, 산재가 분명하다고 말이다. 지유는 원영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실험동에 이상한 것은 없었는지, 병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없는지. 런데 원영은 실험동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 안에 자신의 책상만 없었던 것, 책상이 아닌 식기세척기를 사야 했던 것, 밀가루를 먹으면 탈이 나는데도 남편과 자식을 위해 30년 동안이나 국수를 끓인 것. 원영이 제시한 병의 원인은 그런 것이었다. 참고 견딘 마음이 쌓이고 쌓여 깊은 흔적이 되었고, 그것이 병을 만든 것 같다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두 단어는 '흔적'과 '망각'이다. 무언가를 입력하고 기억하는 장치는 뇌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이란 뇌보다는 마음과 이어져 있는 듯하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일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때 좋았던 일이 순식간에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공기의 흐름까지 생생히 떠오르는 반면, 또 어떤 기억은 당최 그런 일이 있었던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까마득하다.

다음 장에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초파리 연구 기사가 있었다. 기억 정보를 운반하는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망각은 뇌 용량의 한계에 의해 수동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망각 세포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파괴 기능이라는 것이었다.
<초파리 돌보기 中>

바이러스의 흔적은 기억을 운반하고, 기억을 능동적으로 파괴하여 망각한다.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잊고 싶은 것을 잊는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기억을 골라내고 재정립한다. 망각 세포는 나를 위한 방어기제로서 작동하며 그 원동력은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발생된다.


원영의 망각 세포는 활발히 움직여 산재가 아니냐는 지유의 의심을 단칼에 끊어낸다. 그곳은 과학기술원이고, 각양각색의 초파리가 득실댔고, 정제되지 않은 약품의 화학성분이 공기 중에 떠다녔을 텐데도 말이다.

원영의 삶에 깊게 파인 '돌봄'이라는 흔적은 병의 원인으로 의심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실험동에서의 돌봄은 다르다. 오랜 꿈이 실현된 곳에서의 돌봄은 그렇게 기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하는 지유의 걱정보다 실험동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지키고자 하는 원영의 집념이 더욱 강했다. 몇십 년 동안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자의 흔적이란 파고들 틈조차 없이 두꺼운 것이었다.


나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원영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원영은 늘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양보한다. 그러고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는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정말로 좋았던 것이 좋지 않게 되어버리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망각 세포들은 활발히 움직인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참 답답하면서도, 기억을 다시 짜 맞추기까지 하는 미련한 마음의 원인이 어디인지 알기에 차마 훈수를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 지유는 종종 시작점을 잊어버렸다. 어떤 생각이나 장면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 이유는 분명 있었다. 그 소설을 써야만 한다고 결심하게 만든,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 게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 이제 지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되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초파리 돌보기 中>
"너무 열심히 쓰지 마"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
<작가노트 : 너무 열심히 쓰지 말라던 말 中>

참으면 병 된다는 말이 있다. 좋든 나쁘든, 삶이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뭐든 참고 오래 견디면 흔적이 흉터가 된다. 원영은 그 사실을 몸소 겪어 아주 잘 알았다. '너무 열심히 쓰지 마.' 그 말은 흔적이 너무 깊게 남아 흉이 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애정 어린 조언이 아니었을까.



원영은 지유에게 엄마가 다 낫는 결말의 소설을 써달라 부탁한다. 지유는 뼈가 튼튼해지고 근육이 탄탄해졌다는 온갖 형용사 대신, 오래오래 행복하다고만 썼다. 원영은 잘 먹고 잘 자고 행복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오래오래 행복하다.'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마무리는 가장 쓰기 어려운 결말이다. 막막함과 막연함 안에 기꺼이 소중한 마음을 맡긴다. 그 두리뭉실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정말 병이 다 나았는지 따위의 의문은 어느새 뒷전이 되며, 그저 이 세상의 모든 원영이 영원 수 있길 가슴 깊이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