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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y 30. 2022

행복은 불행의 해소에서 시작된다.

 나의 행복에는 항상 조건이 붙는다. 대학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연애를 시작하기만 한다면, 졸업만 한다면, 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된다면 등등.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나면 잠깐은 행복했다. 그 잠깐이 지나고 나면 찰나의 행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나는 또 잠시나마 다시 행복해지고자 새로운 조건을 달고 또 달았다. 끝이 없는 행복을 꿈꾸지만 애당초 그런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행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불행을 뼈저리게 체험한 직후이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면 내가 지금 따고 있는 게 빨간 고추인지 초록 고추인지 구분이 불가할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기 직전에 할머니께서 시원한 식혜와 새참을 가져다주시는데, 식혜를 한 사발 들이켜면 거기가 바로 파라다이스이다. 기진맥진하던 가족들 모두 그 잠시에 기운을 얻고 다시 뙤약볕 아래 쭈구리고 앉아 고추를 딴다. 첫 회사 생활의 고달픔에 누가 볼세라 허겁지겁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첫 혼술을 경험했다. 매일매일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만큼 두렵고 가기 싫었다. 고심 끝에 사직서를 내고 백수로서의 한 달간 나는 또 다른 파라다이스를 경험했다.





 불행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불행이 해소되었을 때 돌아오는 행복 역시 그 강도가 세다. 하지만 행복의 지속력까지 비례할까? 고된 농사일을 할 때면 정말 딱 죽기 직전이다 싶은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런 나를 구원해 주는 건 십여 분간의 짧은 휴식이다. 그늘 아래서 선선한 바람에 몸을 맡기면 간절했던 휴식에 대한 욕망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나는 다시 노동을 할 기운을 되찾는다. 퇴사 후 이불과 물아일체가 되는 경험은 2주면 지겨워졌고 두 달 차에 다다르면 이내 출퇴근 루틴이 없는 삶에 오히려 불안감이 엄습하는 불행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행복은 얄밉게도 고통을 겪지 않은 자에겐 주어지지 않으며 그 지속력 역시 제멋대로이다.





 약 2년 전,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숙제라 생각한 정규직 취업을 이룬 후 한동안은 행복의 충만함이 내 온몸과 마음에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불행 따윈 없이 행복하기만 하겠구나 오만한 기대를 한 것도 잠시, 나는 2땡년 인생 최대 번아웃을 경험했다. 나를 위한 선물로 그동안 사고 싶어도 못 사던 고가의 상품들을 턱턱 사 보아도, 불안정함에 대한 걱정 없이 주말마다 놀러 다녀 보아도, 무엇보다 퇴근하고도 이직 걱정에 쉬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던 것에서 해방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목표의식이 사라진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보고 달려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행복을 느꼈던 활동들은 계약직이라는 경계가 있기에 달콤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고대하던 안정적인 위치가 이제는 명예퇴직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니 그게 또 그거대로 지옥같이 느껴진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중 “세브란스: 단절”은 직장과 사생활의 단절을 다룬 드라마이다. 여기서 단절은 말 그대로 단절이다. 드라마 속 회사에 근무하기 위해선 단절이라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시술을 받은 직원들은 회사에 출근하는 순간 회사 밖의 기억이 모두 끊어지고 회사 내의 자아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시 퇴근하는 순간 회사 내의 기억이 모두 끊어지고 사생활의 자아만 남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회사에서 무슨 일을 겪든 간에 퇴근만 하면 그 모든 걸 잊고 사생활만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드라마에선 회사 내의 자아가 겪는 부당한 처벌이나 회사의 숨겨진 비밀에 의문을 가진 직원들이 단절을 끊어내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한창 번아웃에 빠져있던 나는 단절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하루의 1/3 동안 지속되는, 특별할 것 없는 지겨운 시간을 완전히 잊을 수 있다면 나머지 2/3의 시간이 덜 지루하고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단절을 선택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지 모르지만 그 행복 역시 오래가진 않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번아웃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지루하다 느꼈던 일상 덕분이다. 요즘의 내 가장 큰 행복은 작은 불행들이 해소되고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의 합이다. 작년부터 게으른 몸뚱어리를 일으켜 헬스를 시작했다. 퇴근 후 그냥 가지 말까. 속으로 백 번쯤 고민한 후 겨우 헬스장으로 향한다. 하기 싫다를 속으로 오십 번쯤 되뇌며 덤벨을 들었다 놨다, 달렸다 걸었다 반복하다 보면 얼굴로 열이 점점 몰린다. 그렇게 운동이 끝난 후 집으로 곧장 달려가 후다닥 옷을 벗어재끼고 잔뜩 열이 오른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면 해방감과 뿌듯함이 내 온몸을 지배한다. 나는 오늘도 게으른 나를 이겨냈다는 작은 행복. 남는 시간을 하릴없이 죽이는 게 취미이던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의식적으로 책을 꺼내들었다.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기록을 남기고자 일기장에 짤막한 감상문을 쓰게 되었는데 그게 발전하여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했다. 이제는 책 읽는 시간만큼 글 쓰는 시간도 두근두근거린다. 보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꾸준히 글을 기고하는 나 자신이 뿌듯해서 또 작은 행복 한 스푼 추가…. 그리고 가장 작은 행복들 중 가장 큰 행복은 가족들과의 시간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부모님의 친구 같은 딸이 되었고 부모님은 내게 아기 같은 엄마, 아빠가 되었다. 어디 가서 키오스크 주문을 못할까 봐 같이 가서 연습 시켜주고, 핸드폰을 살 때면 꼭 내가 따라간다. 요즘 SNS로 유명해진 관광지 주변 대형카페에 데려가면 여기 참 좋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맘이 짠해지다가도 나는 행복을 느낀다.





 작으면서도 큰 하루하루의 불행을 견디면 이런 작은 행복의 기회들이 나를 기다린다. 야망가들의 눈엔 너무나 작고 소소한 행복이라 불충분하다 생각될지 모른다. 맞다. 심지어는 나도 부족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난 미래에 성취할 조금 더 큰 행복에 대한 기대감에 기대곤 한다. 뱃살이 쏙 들어갈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맥주 한 캔의 유혹을 뿌리친다. 코시국도 수그러든 이 시점, 나는 올해의 해외여행을 고대하며 불행한 노동의 시간들을 견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자 재미없는 투자 공부를 참아내 본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모두들 화이팅! 따위의 뜬구름 잡는 희망을 전파하려는 게 아니다. 짤막한 내 인생에는 크고 작은 불행과 행복이 찾아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행복이 존재하려면 불행이 선행되어야 하고 역시 불행에 앞서 행복이 선행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행복과 불행은 엎치락뒤치락 약오르게도 우리 인생을 주물럭거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행복을 가져보려 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행복 따위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운동한 후의 샤워는 내가 만들 수 있는 행복이다. 미루고 미루던 대청소를 한 후 반짝반짝 광이 나는 맨 바닥에 먼지 걱정 없이 드러눕는 행복도,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을 끝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켜는 행복도, 해지의 유혹을 참아내고 차곡차곡 적은 돈이나마 적금을 들어 만기일을 맞이하는 행복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행복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은 모르겠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불행을 끝냄으로써 나는 이따금 행복해져보려 한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보다 멀지 않는 곳에 있고, 도처에 깔린 불행 한두 개를 내 손으로 깨부수면 작은 행복 하나쯤은 직접 거머쥘 수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앞으로 부지런히 살아보겠다는….이 짧은 다짐을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쓴 것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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