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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May 21. 2024

열이 났다.

나의 가장 어린 남자친구(4살)가 열이 났다.

콧물도 기침도 안 나고, 목도 안 아프고 기분도 좋은데, 이마와 목이며 등까지 온몸이 따끈하다 못해 뜨거웠다. 정확히 체온을 재어보아야겠다 싶어 체온계를 꺼냈다. 결과는 39.6도!


약상자를 열어 해열제를 먹일까 하다가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상황을 전달했다. 엄마는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고,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갈 거니까 기다려보기로 했다. 약 먹을 각오를 하고 있던 어린 친구는 엄마를 평소보다 빨리 볼 수 있다는 소식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열은 내릴 기미가 없다.


나는 쉼 없이 종알거리는 남자친구에게 너는 잠시 침대에 누워 엄마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너의 머리와 목과 팔다리를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데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좋아!" 하는 쿨한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작은 타월수건에 얼음 한 덩이 넣어서 침대방으로 갔다.


머리와 볼과 귀와 목 그리고 팔과 다리를 찬기운 가득한 수건으로 닦아주다가 타월 속 왕구슬 만한 얼음의 한 면이 납작해진 것이 느껴졌다. 타월을 펼쳐 보여주었다.

"얼음이 반달이 되었네??!! 00이 이마랑 볼이랑 팔다리가 만든 작품이네~~!"

"작품이 뭔데?"

"00 이 이마가 뜨거워서 동그란 얼음을 녹여 이렇게 만든 거라고~ 만든 걸 작품이라고 해."

"으흠, 그렇구나!"


여전히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지만 벌겋던 볼이 좀 하얘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타월 안의 얼음이 도토리 만해 졌을 때 "삐삐삐삐, 철커덕, 드르륵!!" 엄마가 왔다.


나의 퇴근은 한 시간 이상 빨라졌고,  나이 어린 내 친구는 여전히 쌩쌩한 채, 쌩쌩이를 타고 놀이터에 가듯 나와 엄마와 셋이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가는 길과 내 집으로 가는 길은 같은 방향이었음.)


내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수족구, 독감, 코로나 다 아니고... 코, 목, 귀도 특별한 건 없어서 약만 우선 처방받아왔어요. 잘 쉬시고 낼 봬요!"


맞다! 그래, 아무 이유 없이 열이 날 때도 있었지! 나에게도, 나의 세 아기들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지! 이유를 몰랐어도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졌던 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이유 없이 열도 나고, 이유 없이 슬플 때도 ,이유 없이 너무나 행복할 때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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