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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Mar 04. 2024

3월의 또 다른 말, 입학 그리고 설렘

[잔잔한 일상]_04

아이들은 [초등학생] 타이틀에 신이 난 건지, 이제 진정한 어린이로 거듭났다는 사실에 신이 난 건지 가게 안에 붙어있는 전단지의 피자가격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건 만구천 원이야!" , "엄마! 이건 만사천 원이야!" 큭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7시 30분. 젠장 지각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작년 7월 누군가는 못 들어가 안달이라는 공무원을 면직하고 새로운 목표를 위해 1년 동안 평생교육원 수업을 듣고 있다. 오늘은 2학기 개강 첫날. 학교에서 우리 집은 편도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어서 여유 있게 도착하기 위해 6시 40분에 알람을 맞춰놓았건만 끈질긴 방학의 악령이라도 붙은 건지 알람을 들은 체 만 체 꺼버린 것이다. 그 결과, 부리나케 일어나서 대충 씻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이나 주워 입은 후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늘 정확한 시간에 오는 마을버스는 다행히 세이프. 학생들도 비슷하게 개학을 하는 건지 다양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교복핏을 보여주며 마을버스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3월 첫 주의 버스는 뭐랄까 좀 다른 느낌이다. 사실 직장인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때는 3월의 버스 공기나 5월의 버스 공기나 내게는 숨 막힘 그 자체였지만, 다시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니 낯선 교복에 품어진 앳된 얼굴의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콕콕 귀에 박혀 들어온다. 아침에 허겁지겁 뛰어오는 와중에도 아파트 정문 앞에서 함께 등교하기로 한 건지 품이 큰 교복을 입은 두 남학생이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학생을 향해 소리 지르는 광경을 보았다. 친구들을 발견하고 나처럼 뛰어온 학생은 누가 봐도 새로 산 것으로 보이는 빳빳한 나이키 가방을 어색하게 매만졌다. 새 시작을 앞두고 이발이라도 한 건지 짧똥해진 앞머리를 어색하게 매만지는 폼이 귀여워 숨 가쁘게 바쁜 와중에도 풋- 웃음이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오전 강의에 늦지 않았는데 지각할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과는 별개로 출석을 부른 직후부터 졸음이 쏟아졌다. 완연한 봄을 알리기엔 이른 3월, 교실 안은 히터 바람으로 가득했고 저마다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는 안 그래도 희미해진 정신을 어딘가 먼 곳으로 아득히 보내는 것만 같았다. 보통 새 학기 첫날은 교수님 재량껏 일찍 끝내주시기도 하던데 우리의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완강에 가깝게 2시간을 열강 하셨다. 꿈뻑꿈뻑 졸려오는 눈을 부릅뜨고 피자를 먹기 위해 근처 피자학교에 삼삼오오 앉아있는데, 몸통만 한 책가방을 맨 초등학생 두 명과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피잣집을 방문했다. 


 안 그래도 좁은 피자학교는 두 명 아이들의 목소리로 금세 채워졌다. 빈 공간이 꽤 있었음에도 아이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하나만으로 가게가 만석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모두에게 동일했는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기들도 아이들의 대화 하나하나에 슬핏 웃어 보였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타이틀에 신이 난 건지, 이제 진정한 어린이로 거듭났다는 사실에 신이 난 건지 가게 안에 붙어있는 피자전단지의 피자가격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건 만구천 원이야!" , "엄마! 이건 만사천 원이야!" 큭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엄마들은 1만 단위까지 읽을 수 있는 내 자식의 수학능력보다 당장 오늘 하루를 궁금해했다. 선생님은 어땠어? 친구는 만들었어? 아이들은 몰라!라고 대답하며 피자만 먹어댔다. 


 학생이 되어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감. 또는 학교를 들어감.이라고 정의되는 단어 입학은 흔한 말이지만 꽤나 많은 사람에게 설렘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해석되는 것 같다. 당장은 입학하는 사람이 가장 설레겠지만, 옆에서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한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나의 경우엔 남자친구까지 나의 첫 입학을 설레하였다. 오늘만 해도 버스 안 상기된 학생들의 얼굴, 피잣집을 쩌렁하게 울리던 아이들의 숫자놀이와 같은 설렘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뿐만 아니라 덩치만 한 가방을 이고 지고 씩씩하게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았을 어느 과일가게 사장님, 김밥집 사장님들도 "아 이제 봄이 오나 보다 - "와 같은 작은 설렘을 느꼈을 것이다. 


 입학을 포함한 많은 시작은 대부분의 경우 기분 좋은 설렘을 동반하는 것 같다. 내게 오랫동안 고통을 주었던 전 직장도 처음 임용되었을 때 얼마나 설레었는지 지금도 그 마음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이니, 시작이 주는 설렘을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문득, 나의 시작을 가장 많이 목도한 우리 부모님께 묻고 싶어 진다. 엄마, 아빠 내 시작은 어땠어?라고 말이다. 오늘 엄마와의 수다가 길어질 전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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