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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Feb 02. 2024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잔잔한 일상]_03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몰라 속 안을 파고 또 파내도 계속 곪아들어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그날의 교실로 되돌아간다.







 중학교 2학년 때의 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않을 마음속 깊은 곳엔 못된 생각을 종종 할지언정 겉으로는 반듯한 학생이었다. 무릎에 와닿는 치마, 화장기 없는 얼굴, 넉넉한 품의 교복상의 같은 것들이 구태여 스스로를 모범생이라 칭하지 않아도 모범생이라 규정해 주었다. 사춘기의 초입에 가만히 서서 지루한 호르몬의 끝없는 계주에 참가할까, 말까를 가늠하고 있던 열다섯의 '나'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상태였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하듯 정착한 낯선 도시, 낯선 말씨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꼭대기층의 낡은 빌라, 발목 인대가 늘어나도 꾸역꾸역 마트 일을 나가던 엄마 같은 것들이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의 임종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중학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간 학교에서 교복 물려주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배들이 입었던 낡은 교복을 아주 싼 값에 되파는 캠페인이었는데 교복은 고사하고 책가방 하나 새로 사기 어려운 형편인 우리 집을 위한 행사 같았다. 다들 관심 없이 창밖만 보고 있던 캠페인 소개 시간에 언제 교복을 살 수 있는지, 어디로 가면 살 수 있는지를 꼼꼼히 메모했다. 아빠와 할머니를 대동하여 학교 양호실로 교복을 맞추러 갔다. 와이셔츠는 천 원, 동복 치마는 삼천 원, 마이는 오천 원. 교복 한 벌을 맞추려면 30-40만 원은 족히 들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횡재였다. 싼 값에 교복을 손에 넣은 그때의 나는 마냥 기뻤다. 교복도 못 입고 학교에 가면 어쩌나- 숱하게 고민하던 밤이 해결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빠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보풀이 일어난 부직포 소재의 마이를 한참 손으로 쓸어내릴 뿐이었다. 이렇게 싼 값에 교복을 샀는데 왜 속상해하지? 의문이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께 무언가를 묻기 두려웠으니까.


 각기 다른 초등학교에서 올라 와 이제 막 사복을 벗은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복]이었다. 교복 브랜드에 따라서 와이셔츠의 카라깃 모양이 다른지 몰랐다. 마이 안감의 무늬가 다른 지도. 매 교시 쉬는 시간마다 어느 브랜드의 교복인지 물어보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아이들 틈에서 아빠의 긴 한숨을 깨달아갈 뿐이었다. 슬쩍 들여다본 내 교복 안감은 [스마트]라는 브랜드였다. 물론 3년 전 안감이었다. 친구들이 어느 브랜드 교복이냐고 물을 때마다 엄마가 사 와서 모르겠다고, 브랜드 없는 곳에서 그냥 사 오신 것 같다며 마이 단추를 동여맸다. 


 주눅에서 시작한 중학교 시절은 [쭈굴함]으로 점철되었다. 함께 급식을 먹을 친구를 사귀고, 하교를 하는 친구들이 생겼지만 알게 모르게 늘 주눅 들어있었다. 화려한 안감을 입은 백조들 사이에 둥둥 떠있는 오리마냥. 초등학생 티를 벗기 위해 하나 둘, 화장품을 사 모으는 친구들 틈바구니에서도 꿋꿋하게 파우치 하나 없이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하교시간만 되면 한 톤 더 밝아지던 친구들의 피부색, 혈색이 돌던 발간 입술, 딱 맞게 줄여진 예쁜 교복들이 말도 못 하게 부러웠지만 피부색을 밝히는 화장품도, 생기 있는 입술색을 선물해 주는 틴트도 내겐 사치였다. 친구들에게는 짐짓 어른인 척, 그런 건 커서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부러움을 숨겼다. 모범생은 내가 가지고 싶은 타이틀이 아니었지만, 내 손에 쥐어진 모든 것들이 날 모범생으로 만들었다.


 무기력한 1년을 보내고, 새로 맞이한 2학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복이라는 대화주제는 사라졌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은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춘기를 자아비판과 성찰로만 보내려 했던 내게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소풍날이었다. 옆도시의 큰 대공원으로의 당일치기 여행을 앞두고 반 친구들 모두가 들떠있었다. 내게도 옅은 흥분이 감돌았다. 엄마에게 어렵사리 부탁한 덕에 전날에 새 옷도 장만했고, 친구들이 서투른 솜씨로 올려 묶어준 머리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들뜬 탓인지 평소에는 인사만 나누던 친구들과도 한 두 마디 더 장난 섞인 대화가 오갔다. 그때, 인사말 고는 한 학기 동안 2-3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친구가 교실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한 마디 했다. "ㅇㅇ아, 너는 진짜 뭘 해도 다 성공할 것 같아." 


 뜬근없는 칭찬이었다. 부정이라는 큰 바다에 큰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던 내게, 어떠한 칭찬에도 파도의 너울을 멈출 수 없던 내게 다가온 울림이었다. 그날 난 진실된 눈으로 건네는 순수한 응원의 힘을 깨달았다(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빈말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내겐 순도 100%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낯간지러운 칭찬시간은 길지 않아서 대 화화제는 금세 다른 것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 말은 꽤 오래 내 마음을 울렸다. 


 가수 아이유가 '좋은 날' , '너랑 나' 등을 작사한 김이나 작사가에게 받은 가사 중, 힘든 순간마다 미신처럼 따르게 되는 한 줄이 있다고 했다.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몰라 속 안을 파고 또 파내도 계속 곪아들어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그날의 교실로 되돌아간다. "너는 진짜 뭘 해도 다 성공할 것 같아" 그날보다 곱절의 시간을 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날 열다섯 친구의 진실된 눈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의 힘을.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게 만드는 말 한마디의 힘을. 잘 기른 삶이라는 나무의 뿌리가 흔들려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탄탄한 흙과 같은 말의 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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