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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9. 2023

기꺼이 사슬에 묶여 살자.

[잔잔한 일상]_02


 몇 시간의 고성 끝에 얻어낸 인고의 빨간 팽이가 처음엔 너무나 귀하다.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봐도 내 싸구려 같은 파란 팽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파란 팽이나 빨간 팽이나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는 거다.






 공식적으로 백수가 된 지 꼬박 한 달이 흘렀다. 지긋지긋했던 회사를 그만두면 매일이 즐거움으로 가득할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셰이크를 한 잔 마신 후 유산소 운동을 하는 삶. 자기 일을 우선으로 처리해 달라고 들볶아대던 사람들에게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하루를 채우는 삶. 탄탄한 루틴이 지지해 주는 삶을 단숨에 살아낼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3일 만에 무료해졌다. 친구들에게 심심하다- 한탄하면 그만둔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뭐가 심심하냐는 타박이 돌아왔다. 답답한 사무실에 갇혀 백수 친구의 카톡을 흘낏 훔쳐봤을 친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사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심.심.하.다. 


 생각해 봤다. 무엇이 나를 단 3일 만에 무료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낯설어서? 아니다. 노는 데 낯설 것이 무엇 있을까. 출근이 습관이 되어서? 아니다. 옛말에 나쁜 건 더 쉽게 배운다던데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거나 재미 만을 추구하는 시간이야 에라 모르겠다 습관들이면 그만이었다. 공들여 생각한 결과,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었다. 아무런 의무도 없는 인생을 심심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이상한 포인트 하나, 직장인으로 살며 맞이하는 긴 연휴는 왜 전혀 심심하지 않고 짧게만 느껴지는가? 그건 바로 직장이라는 [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엄마가 어린 남매에게 팽이 두 개를 쥐어준다. 빨간 팽이, 파란 팽이. 디자인도 크기도 똑같다. 물론 가격도 똑같다. 오빠 손에는 빨간 팽이가, 내 손에는 파란 팽이가 놓인다. 그 순간부터 오빠 손에 쥐어진 저 빨간 팽이가 너무 탐난다. 분명 같은 팽이인데, 묘하게 더 빛나 보인다. 빙글빙글 도는 모양도 어딘가 묘-하게 더 멋있다. 오빠에게 말한다. "내 거랑 오빠 거랑 바꾸자." 힐끗 쳐다보던 오빠는 코웃음 한 번 치며 신나게 팽이를 돌린다. 어린 나는 더 좋은 걸 가지지 못해 한참을 칭얼거리며 악다구니를 쓴다. 그 소리에 귀가 아파진 오빠는 족히 20번은 돌려서 흥미가 떨어진 팽이를 내 손에 쥐어주고 킥보드를 타러 떠난다.


 몇 시간의 고성 끝에 얻어낸 인고의 빨간 팽이가 처음엔 너무나 귀하다.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봐도 내 싸구려 같은 파란 팽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파란 팽이나 빨간 팽이나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는 거다. 왜 똑같은 팽이가 오빠 손에 쥐어져 있을 때는 그렇게 귀해보였을까? 이상한 일이다. 


 내겐 휴식이 이와 비슷하다. 나에게 있어 휴식은 오빠 손에 있던 빨간 팽이 같은 것이다.


 매일 아침 지옥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일상엔 [주말]이 너무나 귀하다. 일주일 중 단 이틀. 평일은 5일이나 있으면서 왜 주말은 단 이틀뿐인 걸까. 놓으면 날아갈까, 쥐면 바스러질까 애지중지 소중하게 주말을 대한다. 목요일 저녁부터 귀하신 토요일, 일요일 님들을 어떻게 대접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 하루는 늘어지게 누워있어 볼까? 아냐 그럼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주말님은 단 이틀뿐이라고! 그래, 그럼 이틀 다 밖에서 신나게 놀아보자. 아냐, 그럼 다가올 평일이 너무 힘들잖아! 단 이틀뿐인 주말님인데 푹- 쉬어야지! 의 딜레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행복해한다. 그렇게 귀하고도 야속한 주말이 쏜살같이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겐 평일이 없다. 그저 주말의 연속이다. 한 달 전에는 월화수목금퇼 같았던 일주일이 지금은 '토토토토일일일'인 것이다. 나를 옥죄던 평일이라는 사슬이 없어졌으니, 주말이 소중하지 않다. 하루 종일 뒹굴어도 아까울 내일이 없다. 색다른 의미의 [내일이 없는 삶]인 것이다. 이 사치스러운 평화가 내게 선물한 건 무료함이었다. 


 웃긴 일이다. 회사원이었을 때는 그리도 갈망하던 무료함이 현실이 되니 지겹다는 것이. 이제 인정해야겠다. 나는 '기꺼이 사슬에 묶여사는' 삶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무감에 몸을 일으키고, 찌푸린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더라도 그 후에 다가올 주말을 기다리는 일상이 내겐 즐거움이라는 걸. 백수는 성향이 맞지 않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답답한 하루하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면 무거운 사슬 뒤에 따라올 평화를 기억하자.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래 우리 기꺼이 사슬에 묶여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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