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Aug 13. 2023

내가 너무 귀여운 탓이다.

[잔잔한 일상]_1



                            "뭐 어때, 너무 예뻐서 세상이 패널티 준거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4개월 전부터 피부에 하나 둘 여드름이 꽃피기 시작하더니 7월 무렵 만개했다. 호르몬이 날뛰던 고등학생 시절 이미 양볼을 꽃밭으로 수없이 내어준 터라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건만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날 때부터 위가 약해서 여드름을 치료하는 독한 피부과 약은 일주일도 먹지 못했다. 그저 꽃들이 자연히 시들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여드름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 꽤나 속앓이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루성피부염인지, 알레르기성 피부염인지 얼굴에 불긋불긋 각질이 올라오며 부르트기 시작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피부과를 재방문해서 연고와 알약 몇 개를 타왔다. 


 어려서부터 외모에 있어서만큼은 늘 쿨-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사춘기시절, 친구들은 작은 뾰루지에도 온갖 호들갑을 떨어가며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나는 얼굴에 올라오는 트러블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 아니야?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외모에 관심 없는' 덤덤한 친구의 포지션을 꿰찼다. 사실은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 포지션은 성인이 된 지금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단 한 사람, 나의 오랜 벗이자 연인 뭉을 제외하곤.


 하루는 도저히 뿌리 뽑히지 않는 피부 문제에 속이 상해서 뭉에게 볼멘소리를 하였다. 얼굴이 엉망진창이라고. 그러자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주던 뭉은 "뭐 어때, 너무 예뻐서 세상이 패널티 준거야"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낯간지러운 말이 듣기 좋으면서도 민망해서 웃어넘겼지만 그 한마디가 마음에 내려앉았다. 


 예전에 꽤나 유행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게 다 내가 귀여워서 그래!" 흔히 세상이 나를 억까 (억지로 까다의 준말로, 개인의 실력으로 해결한 도리가 없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모습을 말한다)할 때, 몸 안에 화를 쌓아두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때 쓰는 말. 뭉의 너스레도 이런 류의 말이었다. 속상하고,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마음 안에 차곡히 쌓을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수 있게 해주는 말.


  세상을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꽤 많다. 맛있는 식사를 기대하며 힘들게 걸어간 식당이 공사 중이거나, 힘든 하루 끝에 몸을 실은 버스가 사실은 잘못 탄 버스라거나. 뭐라 말할 수 없는 화남이 명치끝을 두드릴 때. 그럴 때 화를 마음 안에 가둘 필요도, 누를 필요도 없다. 작은 물길을 내어주면 되는 것이다. 유유히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물론 내 피부는 여전히 울긋불긋한 상태이다. 밀가루와 유제품을 덜어내고 있어서 새로운 꽃이 피지는 않지만 꽃이 지나간 자리에 많은 흔적들이 남았다. 하지만, 전처럼 속상한 상태로 내버려 두진 않는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세상이 패널티를 준거야!"라고 마음에 물길을 내주면 되니까.


 좀처럼 마음 따라 되지 않는 일엔 생각해 본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세상이 패널티를 준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