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0과 1의 하늘과 땅차이
숫자는 1에서 시작하고 2, 3으로 올라갑니다. 각 숫자들의 크기는 등간입니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무경험이 숫자 '0'이라 하고 첫발을 '1'이라 했을 때, 0과 1의 간격은 다른 숫자들의 간격의 수백 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시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는 단순히 한 단계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존재의 유무 정도의 엄청난 차이 입니다.
낯섦과 도전을 회피하는 인간의 본성에 더해서 개인적인 성향도 낯섦과 도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세월의 흐름, 나이듬도 그 증상을 반전시키는 요인은 아닙니다.
그런 성향의 좋고 나쁨은 잠시 차치해 두고...
50 가까운 인생 중 사회 및 조직 생활을 25년째 하고 있는 반평생 커리어를 되돌아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중 가장 부족한 것은 네트워크이라고 자평합니다.
그래서 큰 맘 보다 더 큰 거대한 맘을 먹고 네트워크의 세계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온라인 HR 앱이 주최하는 네트워킹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 신청을 했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대 행사, 회사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지만 적정 출발 시간 10분 전까지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스타트업인 행사주관사의 분위기에 맞춰서 가봐서 영 아니면 중간에 나오면 되지 하는 일수가퇴(一手可退)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예측대로 행사장 입구부터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마치 동창회 분위기 마냥 자리를 잡고 한참 네트워킹(대화)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엔 자기들끼리 이미 오늘 이전부터 다 아는 사람들인 줄 알고 분위기를 살폈지만, 원래 알던 사람보단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정체불명의 도시락과 음료를 가지고 행사장 끄트머리의 자리도 아닌 곳에 쭈그려 앉아서 최대한 태연히 도시락 뚜껑을 열었습니다.
나중에야 눈치로 안 사실이지만, 서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명함 하나 내밀면서 안면을 트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마냥 각자의 대화에 열중합니다.
결국 이날의 첫 네트워킹 모임 참여는 중도 귀가로 막을 내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철수라기보다는 원래 계획된 철수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모임 참석자의 평균 연령만 올리고 왔느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손에는 낯선 이름만큼 낯선 디자인의 명함 몇 장만이 들려있지만, 다음에 네트워킹 모임에 가면 곧바로 명함을 내밀면서 말을 걸고 행사장 안 의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하루를 되돌아보니 '재미'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면서 오늘의 '0'의 도전은 무의미 하지 않았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가장 큰 소득은 다음에 오늘과 같은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면 이젠 난생처음이 아니고 두번째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