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대의 역마살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감사실 생활이 어느덧 1년을 향해가고 있다. 가장 북쪽으로는 파주에서부터, 가장 남쪽으로는 제주에 이르기까지 아직 1년이 조금 모자란 시간이지만 나의 족적은 전국 팔도에 남아있다. 지난주엔 처음으로 장기간 서울에서의 출장이었는데, 소도시에서의 허전함과는 달리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는 화려한 도시에서의 출장도 꽤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어딜 가나 기다려야 하는 식당과 출장비로 감당이 되지 않는 물가. 그리고 숙소에서 출장지를 오가는 동안 심각한 교통체증을 경험하면서, 무엇이든 다 있다 생각하는 곳에 '여유'라는 가장 간절한 한 가지가 없다는 것이 심히 안타까웠다.
운동화 하나 살 겨를이 없이(사실 없지는 않았지만, 쉬는 날엔 쉬어줘야 했기에 쇼핑도 귀찮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여름의 끝물, 본가에 내려간 김에 책꽂이에 보관하고 있던 상품권으로 새 운동화를 하나 장만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신던 운동화를 세탁했는데, 전국 팔도의 흙을 온몸으로 맞아낸 녀석을 보니 빨래를 하는 내내 운동화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빨아둔 운동화를 널어두고 나는 다시 새로 산 운동화와 함께 출장지로 떠났고, 그 사이 내가 빨아 말려 둔 낡은 운동화를 본 엄마는 여태까지 딸의 걸음걸음들이 안쓰러웠던 듯했다.
평소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물건을 쟁여두지 않는 편이다. 편의에 따라 딱 하나씩만. 화장품도 아무리 세일을 한다 해도 최대 2개까지. 유통기한까지 다 쓸 자신도 없는데, 쟁여두어 무엇하리. 신발도 늘 그랬다. 신던 구두가 편하고, 신던 운동화가 편했기 때문에 굳이 여분의 것을 사두지 않았다. 요즘엔 주문만 하면 내일 도착하는 세상인데. 더군다나 지금은 기숙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 떠날지도 모를 일정에 대비해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물건은 수명을 다할 때쯤, 기존의 것에서 부족한 점을 만회할 수 있는 것으로 새것을 장만하고, 헌 것은 보내주곤 했다.('온고지신'이라고 하였나.)
얼마 전, 친한 후배들과 분기마다 한 번씩 있는 등산이 예정돼 있었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약속이 꽉 차 있었던 탓에 그럴싸한 등산화를 장만할 여유는 없었고 그나마 빨아둔 운동화가 트레킹화에 가까워서, 나는 이번 등산을 그 녀석과의 마지막 여정이라 생각하며 운동화를 신고 산으로 향했다. 무사히 등산을 끝내긴 했지만, 역시나 하산을 하면서 미끄럼 방지효과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고 더더욱 젖은 낙엽을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4시간이 넘는 산행을 끝으로 기숙사로 돌아온 운동화는 방앞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기다렸다.
새 운동화도 샀겠다-평소 같으면 낡은 것을 제때 버리고 비웠을 텐데, 왠지 그 운동화만큼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기숙사 방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안팎 할 것 없이 남루하기 그지없는데, 올 한 해 내 흔적을 모두 알고 있는 녀석을 쉽게 내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게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야, 방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며 나는 그 녀석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버리기 직전, 쓸데없이 운동화 끈은 남겨둬야겠다 싶어 방앞에 앉아 조용히 운동화 끈을 풀었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 산행까지 다녀와서 그런지 정말 녀석은 낡을 대로 낡아있었다. 그렇게 끈을 풀면서,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고마워, 미안해."라고.
수명을 다한 물건을 보내면서 이렇게 애도의 마음을 느끼기란. 내 무게도 무게거니와 무언가 이 녀석이 내 삶의 무게까지 버텨준 듯한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론 이 기분이 지나온 나의 흔적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낡은 운동화를 놓아주며, 나는 나의 발걸음들을 애도했다. 그리고 운동화 끈은 깨끗이 빨아 벽걸이 달력의 앞에걸어두고자주 보면서, 내 흔적의 유품으로보관하고 기념하기로 했다. 낡고 해진 그 운동화야말로과거, 그리고 지금 내 삶의가장 핍진한 증거였기에.
흔적의 명복을 빌고나는 다시 다음 출장지로 향한다. 몸무게도 무게겠지만 삶의 무게에도 덜 짓눌리면이 친구도 좀 덜 힘드려나. 그러나 소모품은 시간에 따라 해지는 것이 맞을 테니, 눈에 보이는 물건이 소모되는 덕분에 나는 덜 소모되는 것이 아닐까 바라본다. 앞으로 또 얼마 동안 얼마만큼의 반경에 내 흔적을 남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덜 소모되기 위해서 발걸음을 가벼이 하려 한다. 오랜 증거에 대한 애도를 끝으로, 흔적에 대한 흔적은 여기에 남겨둔 채 다시금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