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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Nov 24. 2024

책임감의 노예도 면천이 되나요

신분상승의 꿈

그날, 이른 아침 길을 나서며 계속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열심히 살 일인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젠 '아침'이라는 말보다 '새벽'이라는 말에 더 가까 어둑해진 기상 시간. 퉁퉁 부은 얼굴로 후다닥 미숫가루를 태워먹고 혹시나 길이 밀릴까 싶어 우당탕 정신없이 출근에 나섰던 그날, 일도 일이거니와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에 짓눌려 아침부터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책임감의 노예'. 나는 늘 스스로를 그렇게 여겼다. 어쩌면 그 노예근성으로 다행히 무탈하게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스스로의 감시와 감독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평화로운 오리의 유영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면 아래 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나는 늘 가면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책임감 가득한 발길질을 하며 살아왔다.


감사실에 오기로 한 것도 10년간 해온 업무의 카테고리가 좁다는 생각에, 공부하며 업무의 반경을 넓혀야지만 나중에 후배들에게 모자란 선배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아무도 나에게 모자란 선배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나이스한 선배이자 직장인 n년차에 걸맞은 옷을 미리 지어 입고 싶었다. 그 책임감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성장하게 했지만,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는 마치 잊은 것처럼.



그날 아침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홀로 급한 마음에 일찍 길을 나섰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생각보다 일찍 청사에 도착했다. 뿌듯하다기보다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한탄하며,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걷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들어선 순간. 나는 왜 항상 늦을까 봐, 못해낼까 봐, 버거울까 봐 스스로를 보채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기분이 허탈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러다 컵을 씻으러 들어선 화장실에서 우리 층을 청소하시는 여사님을 만났다. 나도 유난히 일찍 도착한 날이었는데, 역시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하신 여사님. 나는 별일이 없는 한, 내근하는 날엔 우리 층에서 출근이 아빠른 편에 속했고 그러다 보니 늘 그녀와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근무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오늘이 사실 노조에서 정한 쉬는 날이라고 하며, 근무일이 아니라고 다.


그런데도 왜 나오셨냐고 여쭤보니, 하루지만 출근을 안 하면 맡은 구역이 엉망이 되고 다음 날 더 힘들어지니 빨리 급한 일들만 정리하려고 나셨단다. 그러다 보니, 새벽 4시에 출근을 하셨다고. 아무도 없을 때 후딱 하고 가야지, 또 누가 다 쉬는 날 나와서 일하냐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며. 그러면서 그녀는 이것만 하고 들어갈 거라고 웃으면서 나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세상에, 여기 나보다 더 심한 책임감의 노예가 계셨다니. 아이고-하는 곡소리를 대신 내드리며, 어서 빨리 마무리하시고 들어가시라는 말 밖엔 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여사님이 이틀 정도 여름휴가를 가셨을 때에, 화장실이며 사무실 쓰레기통이 엉망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 나는 하루 이틀 휴가를 내도 아무런 티가 안 나는데 여사님이 하루 안 계시니 이렇게 티가 나게 엉망이 되는구나. 아무래도 우리 청사에서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눈에 띄게 가장 티가 나는 사람은 여사님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다 휴가에서 돌아오신 여사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하루라도 안 계시니, 진짜 곳곳이 엉망이더라고요. 이 층에서 제일 없어서는 안 될 분이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본인이 정당하게 쉴 수 있는 날마저 남들의 눈에 띄기 전에 일을 해놓고 가시려고 새벽 4시에 출근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내내 투덜대던 입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녀는 투덜대기는커녕 웃고 있었다.


, 이렇다면 이 분은 나와 같은 책임감의 노예라 할 수 없다. 책임감의 양반? 책임감의 선비 정도로 해두자. 책임감이 나를 조종해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책임감의 능동적 주체가 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니 사님은 책임감의 노예라 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런 주어진 일을 헤쳐나갈 있을까. 여기서 일의 경중과 난이도를 여사님과 견주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녀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부러웠을 뿐이니까.


어쩌면 내 힘듦의 가장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책임감'이라는 단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핑계 부담을 덜어주고,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서고 나가기까지 일어나는 일련의 행동의 이유를 가급적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보려 한다. 남들보다 늦을까 봐 일찍 길을 나선다기보다는, 그저 여유롭게 운전하는 게 좋아서- 아무도 없을 때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하는 기분이 좋아서-라고 행동의 이유를 조금 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옮겨본다. 어떤 것이 부담스럽고 싫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낫고 마음이 편하다는 말로 돌려 말하며. 책임감의 노예가 면천을 꾀하려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마음가짐이 먼저니까.




긍정이 무너지기 쉬운 환절기와 날씨.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 도착한 나는 늘 여사님이 갓 청소해 두신 가장 깨끗한 상태의 화장실을 리 층에서 제일 먼저 사용하곤 했다. 노예가 누린다고 하기엔 심히 과분한 특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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