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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r 03. 2024

남모르게 큰다는 것

변하는 것은 말이 없다

혼자 지내다 보면 혼잣말이 많아진다. 나는 화분에 말을 건네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유일하게 좁은 공간에서 나와 함께 숨 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천으로 오면서, 옛 사무실에서 키우던 화분들을 기숙사 방에 놓아두었다. 덜컹거리는 내 차 안, 좁은 종이가방의 틈바구니에 끼여 머나먼 곳으로 함께 온 아이들은 햇빛이 내리쬐던 옛 사무실에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잘 자랐었다. '무성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1년 반 정도 근무했던 옛 사무실은 유난히 볕이 좋았고 그곳에서 화분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랬던 아이들이 익숙한 곳을 떠나, 발령이 난 나와 함께 인천으로 왔다.


엄마는 나중에 시간이 될 때, 기숙사 근처에 꽃집을 찾아보고 분갈이를 해주라고 했다. 그러나 분갈이를 고민할 새가 없이 나는 새로운 곳,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혼을 빼고 바삐 출장을 쏘다녀야 했다. 이런 나의 무신경함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이곳에 있는 한 달 동안 화분들은 노랗게 잎이 뜨거나 가끔 축 쳐져 기력을 잃 했다. 일부러 볕이 잘 들게끔 출근할 때 커튼을 걷고 물도 줬건만, 이 친구들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러다 이번 어느 날. 퇴근 후, 기숙사 방의 불을 켜고 무심결에 화분을 보다 시들시들하기 그지없던 아이들에게서 새순이 돋아있음을 발견했다. 매일 본다고 봤는데, 그날 갑작스레 연약한 새 이파리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온 지 딱 한 달 만에.


"이제 너희들도 좀 적응이 됐나 보구나." 또 혼잣말을 내뱉었다.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로.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 유난히 인형을 좋아했던 나는, 내가 학교를 다녀오는 동안 인형들이 이층 침대 아래에서 남몰래 모여 시끄럽게 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재밌게 놀다가,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제자리에 가는 게 아닐까 하. 내가 학교에 갈 때나,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그러면서 혹시나 어제와 다르게 변한 게 없을까, 위치가 바뀐 건 아닐까, 어딘가 자라진 않았을까 홀로 추리해보곤 했다. 화분들도 매일 같은 모양처럼 보이는데 꽃을 피우고 새순이 자라고 하니, 이 친구들도 그러진 않을까 하고. 러다 나중에 알았다. 인형은 생명이 없으니 남몰래 크는 게 아니라 남몰래 낡아간다는 걸. 빳빳했던 털이 푸석해지고, 폭신했던 솜이 숨이 죽.



남몰래 모든 것은 변한다. 자라거나 낡는다. 자라는 것들은 아무 말없이 어느 날 갑자기 새순을 틔우고, 낡는 것들 아말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남루해진다. 서서히 느껴지기보다, 모두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느껴진다.




한때,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야 한다 주장했던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점심시간에 잠시라도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있다 나오는데, 스마트폰이 무선충전 되듯이 자기도 그렇게 충전을 해야 오후 근무가 가능하다고. 침대가 무선충전기와도 같다는 그녀의 비유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연휴 이후 오랜만에 대구로 내려와, 가족들에게 그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한 달 새 출장 다니고 새로운 업무에 긴장하느라 힘들었으니, 연휴 기간 동안 작정하고 쉬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친구의 말대로 무선충전을 했다. 그러다 문득 요양원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계신다는 외할머니의 소식이 떠올랐다. 나도 누워있고, 할머니도 누워있는데 나와 달리 할머니는 아무리 누워있어도 충전이 되지 않 걸까. 마치 방전된 것처럼. 그러니 충전기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된 건가. 그렇다면 할머니는 조용히 나아고 있는 걸까, 낡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화분을 키우는 이유는, 매일 느껴지는 변화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성장을 뽐내주는 그들의 기특함이 사랑스러워서가 아닐까. 나도 그렇게 남몰래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혼잣말은 결국 혼자인 나를 위한 말이 될 테니. 앞으로도 화분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야겠다. 그렇게 남몰래 자라매일 같은 날처럼 보이는 날들 가운데 어느 날 새순을, 꽃을 틔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봄이니까. 그리고 더 큰 곳으로 온 나처럼, 나의 화분들도 더 큰 곳에자랄 수 있도록 조만간 분갈이를 해주어야지.




연휴의 마지막 날. 대구에 온 김에,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요양원엘 다녀왔다. 누워만 있을 것 같았던 할머니휠체어를 타고 면회실까지 내려오셨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고맙고 '기특'했다. 고작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그 육신이.


지속적이진 않겠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이렇게 기특한 기척을 보내주셨으면. 낡고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이 있어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셨으면. 나의 사랑스러운 화분들처럼.


이 시간 락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다른 의미의 보이지 않는 성장, 성숙이기를 바란다. 변하는 것은 여전히 말이 없으니,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오늘도 남몰래 모두 자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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