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지역 항해
어느덧 승선한 지 3년이 흘렀다. 배 위에서는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육상의 시간과 바다의 시간은 다르다. 큰 이벤트가 없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라서 그런다. 동네 한 바퀴 돌듯 동남아시아 한 항차 돌고 나면 두어 달이 훌쩍 지나간다. 제일 힘든 부분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생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가족이 그립고 육지가 그립다. 달력에 하루하루 X 표를 한다. 싱가포르에는 두어 달 만에 한번 입항했다. 링링의 집에도 방문하여 부모님한테 인사도 드렸다. 집안은 혈통부터 중국이었다. 선조는 중국 장쑤 성 항주(浙江省 杭州)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고향도 항주였다. 링링은 중국에서 이주하여 싱가포르에 정착한 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은 1985년 당시 중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다. 중국과 교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국교를 맺은 정식 민주주의 국가는 대만(Taiwan)이고 "자유중국"이라고 불렀고, 지금의 중국은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라서 "중공"이라고 불렀다. 6.25 전쟁당시 북한을 도운 중공군과 함께 교과서에 적군이라고 표기되었다. 나라도 아닌 조그만 땅덩어리로 생각했었다. 중국과 정식 국교 수립일은 1992년 8월 24일이다.
나는 뜻하지 않게 중국여인 링링을 만났다. 운명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분이고 인연이었다.
링링은 집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고 전통문화와 생활방식도 중국식으로 살고 있었다.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고 어머니는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했다. 문화와 역사를 볼 때 가까운 유교 나라인데 완전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중국에서는 의식주(衣食住) 순서가 '식의주(食衣住)'로 뒤 바뀔 정도 먹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지금생각해 보니 요리하는 중국남자는 봤어도 여자는 못 본 것 같다. 중국집의 주방용 칼이나 도마 주방용품이 큰 이유가 있었다. 남성용이다. 거기에 더해서 집안의 빨래와 청소도 남자 몫이다. 철저한 남녀평등이다. 아니 여존남비가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해 주었다. 부엌에는 남자가 가는 것이 아니라는 한국의 어르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의 능통한 중국어에 놀라셨다. 2년째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한테 천자문을 배웠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어보다 쉬웠다. 일상대화는 중국어로 완벽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1985년 2등 기관사로 진급이 되었다. 컨테이너운반선에서 원유운반선으로 발령받았다. 30만 톤 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이다. 선명은 여수 1호(가칭)다. 원유를 축구장 하나를 가뜩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대한민국하루정도 쓸 양이다.
15만 톤 이상 되는 유조선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 VLCC(Very Large Crude-Oil Carrier)"이라고 부른다. 선박의 크기는 화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운송료와 세금을 부여하는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총톤수, 순톤수, 재화중량 톤수, 배수 톤수로 나눈다. 쉽게 말하면 똑같은 1톤이라도 기체, 액체, 고체의 운송료가 같을 수 없다. LNG 가스운반선은 부피로, 철광석운반선은 무게로 톤수를 정한다. 부피도 무게도 아닌 컨테이너 운반선은 수량으로 배의 크기를 나타낸다. 2만 TEU(Twenty foot Equivalent Unit) 선박은 20피트 컨테이너 2만 개를 실을 수 있는 선박이다. 화물선이 아닌 군함, 잠수함, 여객선은 또 다른 톤수를 적용한다.
한국은 산유국이 아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석유 수출 5 위국이다. 대한민국은 원유를 운송(Shipping), 보관(Storage), 정제(Refining) 기술로 석유 생산국이 되었다.
원유란(crude-Oil)란 땅속에서 시추한 액체. 고체. 가스가 혼합된 씨커먼 흙탕물이다. 시궁창 같은 물이다. 인류는 시궁창 물이 검은 황금인 줄 최근에 알았다. 원유에서 휘발유, 디젤유, 중유, 등유, 나프타로 정제가 되고 나머지 화학성분은 고무나 아스팔트로 분리하고 정제된다. 소위, 신사의 나라들은 더 많은 욕심을 부려 전쟁을 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어 얻은 석유로 세계 1등 국가, 선진국이 되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이 더러운 흙탕물이 왜 생겼는지 아직도 과학자나 지질학자도 명확한 판단을 못하고 있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첫 번째는 공룡이나 플랑크톤의 잔해로 생긴 것, 두 번째는 금속과 탄화물이 땅속에서 화학 변화되었다는 설이 있다. 최첨단 과학으로 몇억 년 전의 중생대에서 발생한 석유의 근원이 생물인지 광물인지도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매장량도 수시로 바뀐다. 고갈된다던 석유 매장량은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만 간다. 탐사와 시추 기술이 늘어날수록 원유 생산량도 늘어가고 있다. 땅속 사정과 선진국의 음모는 아무도 모르고 믿을 수 없다.
더럽고 치사한 이 원유 80%는 하필 전쟁이 한창 중인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을 지나야 운송이 된다. 페르시아만은 원유 운송 넓은 뱃길이다. 바다의 실크로드다. 동맥과 같다. 원유수송이 막히면 대한민국은 마비가 된다. 6.25 전쟁 중 서울이 함락되었어도 남한은 살아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원유를 확보 못하면 전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원유를 운송 확보 하여야 한다. 거대한 여수 1호에는 선장 기관장을 포함 선원 24명이 승선 중에 있다. 위험수당이 포함되어 월급도 많이 올랐다.
기적을 울리며 여수를 출항하였다. 중동까지 뱃길로 12,000km이다. 2주 정도 항해를 하여야 한다. 30만 톤 원유탱크(Cargo Oil tank) 탱크는 비어있어 거대한 선박은 섬처럼 물 위에 떠 있다. 안전을 위해 평형수(Ballast Water)를 선적하여 Draft(흘수)를 최대한 낮추었다. 전쟁터로 가는 길은 마음이 무겁다. 오동도가 멀러 지고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와 링링이 보고 싶었다. 연일 뉴스에서는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스커드 미사일이 불꽃놀이 하듯 하늘을 뒤덮었다.
사진캡처: 네이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