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리 아랫동 윤신네집 뒷마당과 새가구똥 필열네집 사이에 넓은 밭이 있었다. 군부대처럼 철조망이 굳게 처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였다. 간판도 없었다.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것은 군인들이 아닌 작은 묘목들이였다. 묘목 농장이였다. 군산에 있는 (주)한국합판 산내 출장소라고 하였다. 지금의 변산송림아파트와 농협하나로마트 뒷편이다.
변산의 무성한 나무들은 일제강점기때 무차별 벌목과 6.25전쟁때 불타고 전쟁이 끝나면서 주민들이 땔감나무를 채취하면서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박정희 정권때 새마을사업과 동시에 산림복구 녹화사업이 진행이 되었다. 식목일을 공휴일로 정하여 전국적으로 나무심는날로 정했다. 그러나 90%가 산인 산내면은 복구가 쉽지가 않았다. 군산에있는 제법 큰 합판회사는 많은 나무가 필요하였다. 원목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였다. 정부나 기업차원에서 국내 나무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나무를 재배할수있는 기술, 인력, 자본, 토지가 필요하였다. 일원으로 산림청과 합판회사가 손을 잡았다. 국유림과 공유림을 합판회사에 분양하여 필요한 나무를 키워 공급하는 국가정책을 세웠다. 묘목은 지서리 산내출장소에서 직접 키우고 재배를 하였다. 비교적 빨리 자라서 상품으로 이용할수 나무들이였다. 포플러,은사시나무,낙옆송,편백나무, 오동나무등 수십만 그루 재배에 성공하였다. 묘목들은 도청,유유동,은호리,운산리,대항리,지남리,중계,묵정리 변산 각지역으로 배달이되어 심기 시작하였다. 은사시나무계통은 종이,성냥,합판. 낙옆송은 전봇대와 철로 버팀목, 편백이나 오동나무는 건축과 가구로 팔려나갔다. 변산에 연탄이 들어오면서 더이상 땔감나무가 필요없게 되었고 변산에서 나뭇꾼이 사라졌다. 숲이 울창하여 나무를 하러 다녔다녔던 오솔길도 정글로 바뀌어 길이 없어 졌다. 그 길은 고라니나 멧돼지가 다니는 길이 되어버렸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동물이 쥐와 참새가 아니라 야생동물로 바뀌었다. 한해 농사를 송두리체 날릴수 있다. 농부들의 골칫거리였다. 숲이 우거진 단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