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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산 Apr 26. 2022

2. 기(氣) 살리는 대구 서문시장 칼국수

정치 문화 칼럼 


대구 서문시장은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면서 ‘시장 정치 1번지’가 되었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유력한 후보들이 보수의 본고장 대구 표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서문시장을 찾았다. 때문에 서문시장은 여‧야 후보 간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마련이었다. 서문시장이 광장 정치가 아닌 시장 정치 1번지가 된 이유다. 

 서문시장은 예부터 삼남(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상권이 몰리는 물류중심지로 민심의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곳이다. 하여 대선의 계절이 다가 오면 여‧야 후보들과 지지자들이 당내 경선 때부터 구름처럼 몰려와 저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열변을 토하며 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의 눈도장을 찍기 바빴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때면 으레 서문시장을 다시 찾아와 표심을 읽는다고 한다. 

 후보와 선대위 유세진이 시장 골목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사라질 때면 배고픈 시간이 다가오고 남아 있던 지지자들이 삼삼오오 국수 골목으로 몰려든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선 채로 칼국수 한 그릇씩 사 먹고 발길을 돌리는 것이 선거철 서문시장의 풍속도다. 홍두깨로 민 면발을 마른 멸치 외 새우로 우려낸 다시물에 넣고 끓여 애호박과 배춧잎 고명을 얹은 것이 여느 칼국수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서문시장 칼국수는 기운을 돋워주는 별미라고 했다. 

 골목길에 즐비한 국숫집마다 빚어내는 손맛도 손맛이지만 마침 허기가 진 데다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대구 서문시장 칼국수는 기(氣)를 살려준다”는 입소문이 나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지난 4월 12일에는 대통령 취임을 한 달 남짓 앞둔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에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문시장을 방문하고 칼국수를 점심 메뉴로 시장 상인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대구에 출장 온 외지 상인들이나 직장인들도 으레 소문만 듣고 서문시장을 찾아와 칼국수 한 그릇씩 사 먹고는 ”바로 이 맛이야! “라는 말을 남기며 자리를 뜬다고 했다. 요즘엔 잔치국수와 수제비도 인기품목으로 한몫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문시장의 국수 골목이 잔치국수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른국수를 다발째 풀어 삶아 찬물에 헹군 뒤 한 움큼씩 건져내 대소쿠리에 담아뒀다가 손님의 주문에 따라 말아주는 국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출향인(出鄕人)들이 고향을 찾을 때마다 서문시장에 들러 향수 어린 잔치국수 한 그릇씩 사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궁색했던 시절의 국수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6‧25 전란 당시 대구에 피란 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수도권의 7080 어르신들도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서문시장 잔치국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공간이나 6‧25 때 맛 들인 서문시장 잔치국수의 유래다. 

 6‧25 때는 집집마다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배급받아 수제비를 끓여먹거나  밀가루를 반죽해 홍두깨로 밀고 싹둑싹둑 썰어서 끓여먹는 칼국수가 주식이다시피 했다. 오늘날의 칼국수 원조다. 특히 한여름에는 시중에 파는 마른국수를 삶아 차디찬 샘물에 헹궈 말아먹는 것이 냉장고도 없던 궁핍한 시절의 별미였다. 지금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칼국수와 잔치국수지만 각 가정에서 주식으로 빚어 먹던 전통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절을 맨몸으로 견뎌낸 어르신들은 아직도 ”대구 큰 장의 국수 맛을 잊지 못한다 “고 했다. 왜 큰 장일까? ‘큰 장’이란 서문시장의 옛 이름. 내남없이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서린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유명했던 국수가 큰 장(서문시장) 초입의 삼성상회에서 나오는 ‘별표 국수’였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맛있는 국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별표 국수’를 만들어내던 삼성상회는 오늘날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삼성그룹의 모체. 고(故) 이병철 회장(1910~1987)이 창업한 회사다. 그 무렵 대구시내 중소 국수공장에서는 대부분 원료 수급이 어려워 미국산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제조했으나 삼성상회는 유독 값비싼 토종 우리 밀로 제분한 백밀가루에 천일염을 간해 국수를 뽑았다고 한다. 그래서 ‘별표 국수’는 여느 국수와는 달리 삶아서 양념도 없이 그냥 후루룩 말아먹어도 꿀맛이었다고 했다. 워낙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원조 밀가루로 만든 국수보다 훨씬 차지고 포만감과 함께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비결이 우리 토종 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이라고 했다. 국수 하나 만들어도 최고 제품만 생산해온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이 오늘날 거대기업 삼성을 일궈낸 비결이었다. 그 당시 삼성상회 앞 대로변에는 소달구지와 리어카, 자전거 등을 끌고 나온 중소상인들이 ‘별표 국수’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장사진을 쳤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한낮이면 재고가 바닥나기 일쑤였다고 했다. 서문시장 노포들도 이 국수를 사다 맛을 냈다고 했다. 전화(戰火)가 휩쓸고 간 폐허에 먹을 것이라곤 국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성업 중이던 서문시장 국수 골목은 1960년대 이후 한때 인근 달성공원에서 소일하던 어르신들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서문시장 국수 골목을 즐겨 찾던 어르신들도 이제 한 분, 두 분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고 있다. 세월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변하고 음식 맛도 변한다지만 격동의 힌 시절 애환 어린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서문시장 국수 골목은 오늘도 변함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워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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