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분노
요즘 나는 화가 많아진 걸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너무 오랫동안 참는 데 익숙해져서
이제는 말 한마디, 입 한 번 여는 것도 어려운 걸까.
참는 게 잘한 일이라 믿어온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화가 나도 그 감정의 모양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입을 닫는 게 평화라고 생각했는데,
그 평화 속에 가장 많이 다친 건
결국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참는 게 익숙해졌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게 부당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문득문득, 아주 사소한 일에도
속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분노가 나를 놀라게 한다.
너무 작고 하찮은 일인데,
감정이 과하게 터져 나올 때면
이게 정말 나인가, 싶다.
예전의 나는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너무 오래 눌러온 감정들이
이제야 나를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내 나라에선 상상도 못 할 일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교하고, 대조하고, 속으로 판단한다.
그게 어쩌면
아직도 ‘여기’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미련인 것이겠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결국 나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다름을 이해한다는 건
쉽게 고개 끄덕이는 일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남들에게는 쉽게 말했지만,
돌이켜보면
정작 나는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말이
내가 믿고 싶은 위로였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ㅡ
그늘 밖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눈부신 햇볕이 내리쬔다.
그곳을 향해
억지로 걸음을 내디뎌 본다.
눈이 아플 만큼 강렬한 빛에
흠칫 놀라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정수리부터 등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게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온기, 낯설지만 살아 있는 감각.
언젠가는
이 햇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