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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27. 2024

화살을 기다리며

사랑에 대하여 5 : 마무리하며

  나의 ‘사랑’ 고민은 어떻게 매듭지을 수 있을까? 형태소 활동을 하면서 전례 없이 사랑에 대한 글을 많이 쓰던 날들이 지나고, 어느새 마지막 주제를 받아 들며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생각해 보면 늘 내 글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사랑이라는 개념과 내가 생각하는 ‘사랑’ 사이의 간극을 재어보는 것에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최근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대한 글을 쓰며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영역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렇게 톺아놓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상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이 언제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 속 사랑에 대한 고민이 내 삶으로 수렴할 수 있으리라.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뜬금없지만 내 인생을 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진로를 여러 번, 그것도 크게 바꾸었다. 일곱 살부터 시작한 테니스로 엘리트 스포츠를 10년 가까이했다. 매진이라고 칭해도 좋을 만큼. 그러다 그 꿈이 사실 내 꿈이 아니었단 걸 깨달은 순간, 공부를 시작했다. 열아홉쯤에는 문학이 고팠고, 스물셋인 지금은 연극에 젊음을 불태우는 중이다.


 돌고 돌아 예술 계통까지는 왔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특히 연극을 사랑해서 연극을 하는 사람들, 문학을 애증하며 글과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나는 진득하지 못할까? 왜 나는 확신이 없지? 왜 나는 자신 있게 내 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까? 이런 고민들이 매일 같이 머릿속을 찾아왔다. 차라리 애매한 재능이든, 벼랑 끝의 위태로움이든, 모조리 무시하곤 불같은 열정으로 뛰어들만한 애정이 내게 있었다면. 그 고민이 나를 자꾸 사랑이라는 단어로 이끌었다.


 사랑하고 싶다. 눈앞에서 날아온 작살에 피하지도 못하고 꿰뚫리고 싶다. 화살이 그려진다. 에로스의 화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에 비유한 이유가 아닐까? 나를 속절없이 휘둘러주길 바란다. 무수한 밤들을 깨부수고 내게 선택을 강요해 주길 바란다. 그런 것이다. 내게 사랑은. 내가 바라는 사랑은. 아니, 내게 필요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곧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혹 틀리더라도,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최근 가장 꽂힌 노래가 생각났다. 새소년의 데뷔앨범 타이틀인 ‘여름깃’이라는 노래다.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지나간 사람 지나갈 사랑들 / 내 몸에 새겨질 삶의 타투”. 내 삶에는 어떤 흔적들이 새겨질까.


 여기까지 근 1년을 왔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수많은 고민들을 통해 그때보단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랑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사랑할 만한 것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그중 하나,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 바로 문학, 그로 말미암은 글쓰기일 것이다. 형태소와 헤어진 뒤에도 고민하며 이 길을 더 밝혀보고 싶다.



by. P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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