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홈스쿨링 이야기
버스에 올라탄다.
목적지는 카페다.
매주 화요일은 말 많은 선생님을 떠날 수 있는 날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갔다면 제일 기다렸을 금요일 종례시간과도 같은 날이었다.
예쁜 사촌언니와 잘생긴 사촌오빠가 있는 카페는 나의 또 다른 학교였다.
커피 향기와 오븐에서 갓 나온 빵내음이 나를 반겨준다.
아부지의 지루한 2차 방정식 설명 대신 커피머신의 은은한 진동 소리가 들려온다.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가 피처링이라도 하는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름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언니가 레시피 책을 꺼내 펼친다.
이건 정말이지, 아부지가 수학 책을 꺼내 펼칠 때는 전혀 느껴본 적 없는 대단한 행복이었다.
"오늘은 뭘 만들어 볼까?"
“산책 갈까?”라는 말에 폴짝 뛰는 강아지들이 이런 마음일까.
언니의 이 한마디는 나에게 “산책 갈까?”였다.
잠시 반려동물들의 마음을 공감해본다.
브라우니, 마들렌, 포춘쿠키, 크로크 무슈, 모닝빵...
언니와 함께 처음 들어보는 빵들을 만드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그보다 더 재밌었던 건 언니의 연애 이야기, 언니의 요즘 고민을 듣는 것이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수업 대신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한입 가득 넣으면 그 이야기가 더 달콤해졌다.
그때 언니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열네 살 아이가 동생처럼만 느껴지는데,
띠동갑인 나를 친구처럼 대해준 그때의 언니에게 문득 고마워진다.
사촌언니가 내게 좋은 친구이자 선배 같은 존재였다면,
사촌오빠는 내게 짝사랑 같은 존재였다.
나를 쏙 빼닮은 선생님 한 명만 보다가 쌍꺼풀이 진하고 멋진 오빠를 보는 것은 열네 살 소녀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런 오빠가 따뜻한 라떼를 만들어 줄 때만큼 설렜던 적도 없었다.
전교생 1명뿐인 학교에서도 로맨스는 있는 법이다.
행복만 있었던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교롭게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하교 시간과 자주 맞물렸다.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 친구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은 내가 뒤이어 탄다.
한쪽은 책가방을 멘 채로.
다른 한쪽은 브라우니를 한 손 가득 든 채로.
‘멀쩡히’ 학교에 갔다면 친구가 됐을 수도 있는 저 친구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내가 동갑내기 친구라는 걸 알까?
만약 지금 학교에 있었다면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MP3에 유선 이어폰을 꽂고 버스 창문에 기대 상상해본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무릎 위 브라우니 봉지에서 올라오는 향기가 달콤한 잠을 선사한다. 꿈같은 날들이었다.
나와 같은 날들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사촌언니오빠와
최고의 커리큘럼을 짜 준 말 많은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