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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Oct 01. 2024

대도시의 사랑법

평점과 평, 그리고 부연설명과 잡설들

평점: 6/10

평: 이지A + 해피투게더(춘광사설) + 데미안 + 500일의 썸머 + 타의에 의한 성택(性擇) = 대도시의 사랑법?


(스포일러 있습니다.)

근래 국내영화 중에서 엄청 인상적이었다. (영화관에서 본 직후에 쓰기에 대략적으로 몇 분 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20분이 나오기 직전까지는.

담고 싶고 전달하고 싶은 게 많은 건 알겠지만. 영화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서결을 맺어야 한다. 그러기에는 <대도시의 사랑법>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다.

개인적으로는 (정확히 몇 분이라 말할 수 없지만 체감상) 마지막 20분 정도는 굳이 넣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2시간의 러닝타임 속에서 20살의 남자주인공 '흥수'(노상현)과 여자주인공 '재희'(김고은)은 33살의 나이(30대 초반)로 엔딩을 맞이하기 때문이고, (체감상) 90분 시점에서 29살인 이들은 20분 동안 5살을 먹게 된다.

"대도시"의 이야기이니까. 무수한 청춘들이 모이니까. 그러니 2030이 공감할 모든 이야기 속에 이들을 담아야 하니까. 이런 마음으로 연출한 게 아닐까도 생각 든다.

그런 면에서 90분은 매우 즐겁게 봤다. 각 주인공이 거치게 되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볼 때마다 지나간 과거가 생각나기도 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반추하기도 하고 파안대소하며 봤다.

Miss A - <Bad Girl, Good Girl>

또한, Miss A의 <Bad Girl, Good Girl>로 2011년을 시작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카카오톡과 (지금 기준으로) 약간 투박한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그리고 교내에서 술 마시는 축제 모습을 보니 2010년대 중반의 서울 대학가 어딘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고증을 따지면 끝도 없지만, 2010년대 중반 어딘가를 세팅한 채 2011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는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데칼코마니 같은 연출(옷, 배경색 등)로 재희와 흥수 사이를 세심히 그려내는 연출가의 배려심이 느껴졌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남성에게는 매력을, 여성에게는 시기질투를 받는 재희와,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내는 것에 스트레스받던 (혹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 던지던) 흥수의 연합은 재밌었다. 낙인찍힌 두 주인공 간의 이해와 공감을 통한 유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들 사이를 '피'를 통해 서로 맺어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재희는 클럽에서 의도치 않은 성관계로 첫 경험에서 임신하게 되고, 흥수는 재희와 동거하는 와중 재희의 남자친구(이하 변호사)에게 들켜 주먹다짐으로 코를 맛보게 된다.

(사담이지만 클럽에서 의도치 않은 성관계를 겪은 이후, 여주인공이 첫 경험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서 여고생을 지나치고, 신발을 벗을 때 빨간 운동화를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감탄하면서 봤다)

너다운 것이 약점이 될 수는 없어

두 번째 피를 맛보게 전, 막간의 러닝타임에서 둘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남들과 다른 것을 바라본다는 이유로 괄시받던 자신을 드러내 서로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둘은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설명한 카인의 표식처럼, 독창적이고 추진력 있는 이들을 괄시하는 다수들에 대항하듯 손목에 타투를 하고 서로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투합한다. 우린 가족과도 같다는 이름 아래에서.

나아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재희에게 남자친구(이하 변호사)가 생기면서, 재희에 대한 흥수의 마음과 우리의 관계가 우정인지, 아니면 이성에 대한 호감인지 애매모호한 표현과 관계를 거치면서 이들의 감정은 더 격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둘의 동거에 분개한 변호사가 흥수를 때리면서 영화상 두 번째 피를 맛보게 된다.

여기서 이미 둘의 관계는 서결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와 재희는 헤어졌다. 그러면 이제 흥수도 성장해서 자신의 생각(혹은 성정체성의 견해)를 밝히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러닝타임이 제한된 영화에서는 서결이 더 단단해졌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마지막 20분 동안 도리어 흥수에게 "얘는 게이야"라고 계속 연출하는 건 그에게 새로운 낙인을 찍는 것만 같아 보였고, 이는 굳이 들어갈 부분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은 러닝타임 동안 흥수가 자신이 게이임을 남에게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희에게 마음이 끌려서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고 싶은데 외부적인 상황(변호사의 개입과 재개입, 엄마의 기도에 따른 반작용, 경찰서에서의 소명 등)으로 인해 못하게 되는 것인지 부족한 러닝타임 속에서 남자 주인공 내면의 사고과정은 수박 겉핥기로 지나쳐간다.

이윽고 경찰서에서의 소명은 어느새 경찰관이 재판장 역을, 취객이 배심원의 역을 맡아, 변호사와 남녀주인공에게 판정의 승패소를 결정해 준다. 그리고 이 계기는 경찰관이 남자주인공의 소명을 들음으로써 만취객의 박수와 함께 (마지못해) 인정해주고 인정받는다. (이 장면이 과연 들어갔어야만 했을까?)

자의 반 타의 반 흥수는 자신이 게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물론 인생이 원래 그러하기에 이를 녹여냈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나아가 영화의 시작에서 결말을 미리 엿보여준 점에서 그 끝으로 가야만 하기에 불가항력적이라면 별 수 없다고 것이다.

다만, 끝끝내 영화는 여자주인공이 결혼하고 신혼여행길에서 흥수에게 전화해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영화는 엔딩크레디트를 넘어, 쿠키에서마저 "흥수는 게이다" 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남자주인공은 제4의 벽을 넘어 설정을 "당한다". (다시 그가 게이라는 점을 재확인을 굳이 시켜줘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김고은은 (2010년대 중반에) 치인트의 미스캐스팅이 아니냐는 초반의 구설수에 대해 증명이라도 하듯 2024년에 칼을 갈고 나온 것만 같았다. 영화 초반에 약간의 노란색 물들인 머리를 보며 홍설에 대한 그녀만의 인사를 하는 듯했고(아닐 수도 있지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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