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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Nov 15. 2024

타잔 제인, 그리고 X자형 십자가의 성인(聖人)

존 스튜어트 밀 Response Paper

좌: 타잔, 우: 제인

“19세기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문명(civilized)적인 것과 야만(primitive)적인 것을 구분할 분별력이 있었다. 그는 국제법을 문명인들 간에만 지켜질 수 있다고 여겼다.”

이 문장을 얼핏 보면 밀이 마치 민족을 차등적으로 나눠 문명국인 모국(영국)을 정당화시켜 세계를 바라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의 아픔이 있는 한국의 경우, 유구한 시간 속 식민지에 대한 언쟁과 정쟁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체화된 담론으로 누구나 한마디는 거들고 반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접근방식은 부시행정부 당시 미국의 확장적 중동 개입을 설명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무관심으로 대하던 밀은 소련의 종식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강령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유의해야만 한다.

한편, 밀은 이를 구분할 때, 사람과 민족을 결부시켜서 보지 않았다. 물론 밀은 어떤 세력에든 민족정서가 존재하는 점을 인정했지만, 이를 왜곡된 민족적 애착이나 민족성의 우월함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은 지양했다.

동시에 서로 다른 국적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에서 대의정부의 활동을 촉구하기는 애로사항이 많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밀은 민족주의를 촉발시키는 것에 알제리 식민지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에 반대했다.

좌: 존 스튜어트 밀, 우: 제임스 밀

또한, 한 개인에게 문명과 야만의 척도를 들이대 판가름하지도 않았다. 동인도회사의 사무관으로(혹은 자신의 아버지의 비서로) 재직할 때, 인도(당시 무굴제국)의 예속화 정책에 적극적이던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인도인에게 유화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시킨다. 사무관으로 처음 부임하던 때 겪은 정신적 공황을 기점으로 아버지와 상반된 생각은 만개한다. 사담이지만 영국이 인도반도를 인도제국으로 병합한 후, 밀은 요직을 제의받지만 거절한다.

영국의 문필가, 동인도회사의 행정가, 영국하원의 정치가의 페르소나 속에서도 밀은 문명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을 구분했을지라도 도덕성과 양심을 지키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밀의 기준은 어디에 천착했는가? 그의 비교 대상은 사회 내 개인의 인지적 능력 차이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개선을 가능하게 하는 각 사회의 능력이었다. 밀은 비교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혹은 대륙)라는 점을 강조했고, 동양사회와 서양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을 들어 이를 뒷받침했다.

19세기 후반기준 유럽 및 오세아니아 종교 분포도

밀은 동양 사회는 어느 순간 정체되었다고 본 반면, 유럽은 상충되는 관점, 사상, 가치, 그리고 그들 중 어느 것도 영구적으로 우세하지 않았던 집단들로 특징지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끊임없는 투쟁이 ‘유럽 문명’을 ‘진보적’으로 유지하게 하고 정체를 피하게 했다고 믿었다.

다시말해, 중요한 것은 갈등이나 적대감이 살아있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 즉 어떠한 집단, 계급, 사상, 가치도 다른 모든 것을 질식시킬 정도로 독점적으로 우세하지 않은 사회였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생리학/지리학교수가 이를 자연환경이 풍부한 유라시아와 달리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유럽이 생존을 갈구하기 위해서 뻗쳐나갔다고 이를 피력한다. 한편,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능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독교적 특징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피력하고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 그리고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고대신화는 신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이다. 즉, 집권하고 있는 주류의 소수세력들이 자신의 정당성과 입지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유도했다. 현재라는 순간이 지나가게 되면,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묻히게 된다. “고대신화”라 명명된 이유도 이러한 이유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이들과 달리 약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핍박받고, 고통받는 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다음을 기대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성경 속 인물들과 하느님을 통해 전달한다.

성 앤드류(안드레아)는 연결의 능력이 있던 성인이다. 하느님께 쓰임받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의 소명이었다.

실제로 유럽의 역사가 긴 주요 대학들의 설립배경들 중 하나는 집권 정체(政體)의 정치적 공격을 피해 후학을 양성하고자 건립되었다. 성서의 분분한 해석은 사람들이 합심해 모일 수 있도록 만들었고, (물리적으로도 전투가 일어났지만) 문해와 필력으로 다투고 장거리의 성지순례와 학문적 유람은 학문과 상업을 촉진시켰다. 자연히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반목하는 과정에서 도덕성(morality)과 양심에 대한 숙의도 다뤄졌다.

출처: 나무위키

이러한 맥락에서 문필가로서의 소양을 양성되기 위해 고된 과정을 소싯적부터 겪은 밀에게 유럽 밖의 지역은 (밀 본인이 아는 것에 비해) 빈약해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19세기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문명(civilized)적인 것과 야만(primitive)적인 것을 구분할 분별력이 있었다. 그는 국제법을 문명인들 간에만 지켜질 수 있다고 여겼다.”는 말을 다시 돌이켜봤을 때, 단순히 그가 민족을 차등적으로 배분해 문명국인 자신의 영국을 정당화시켜 세계를 바라봤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차라리 (기독교적인 컨텍스트의 존재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다원성이 존재하는지를 바라봤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그것이 밀이 성문화된 국제법 그 자체를 중요시 여긴 것이 아닌, 문명인들 간의 대화와 도덕성에 기반한 상호성을 원한 것이 아닐까..?


단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읽은 문헌>

- Varouxakis, Georgios, Liberty Abroad:.S. Mill on International Relations (Cambridge, 2013), Chs. 1, 5, 6.

- Varouxakis, Georgios, Ch. 7 The International Political Thought of John Stuart Mill in British International Thinkers from Hobbes to Namier eds. Ian Hall and Lisa Hill (New York Palgrave)

- Prager, Carl A. L. _Intervention and Empire John Stuart mill and International Relations_ Political Studies Vol. 53, Issu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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