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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ply Jul 01. 2022

세상에는 정답이 없을 뿐,
답은 존재한다.

-한 명의 대학생이 바라보는 '세상의 정답'

 요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로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고 우선시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꼰대, 어쩔티비 등 여러 신조어들이 위와 같은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다양성을 존중하다 보니,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지금, 정말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세상이 정한 길을 벗어나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부터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헌법에는 기본권과 관련된 조항들이 적혀있다.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잘 보이는 조항이다. 동시에 행복 추구권, 일조권 등과 같은 권리들도 국민들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적혀있다. 또한, 당연히 헌법에는 적히지 못하지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규범으로서 인정받는 사항들도 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법으로 지정된 내용과 규범으로 인정된 내용을 모두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이고 선한 행동이라고 인지되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규범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규범을 지킬 때마다 공통된 행위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변질된 규범'으로써 다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전한 직업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규범으로부터 '의사, 검사, 판사나 공무원이 되는 것만이 좋은 인생을 가져다준다'와 같은 고정관념을 만들었고, 별다른 특기가 없다면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는 규범은 '공부를 못하거나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변질된 규범을 형성했다. 


 변질된 규범은 사람들의 행동을 막거나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행위나 생각을 부정적으로 취급했다. 사회 구성원들은 변화를 원했고, 좀 더 공정하고 개인의 권리가 우선시 되는 사회를 꿈꿨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사회가 정한 틀을 벗어나는 행위는 대단하고 용기 있는 일이 되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결국 지금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바꾸는 것을 중요시하는 세대가 사회 이슈를 이끌어가면서 해결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규범들 중에서 고쳐져야 할 점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나 공무원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회가 되었고, 공부를 못하거나 하지 않아도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사회가 되어갔다. 고정관념, 즉 변질된 규범에 대항하여 다양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우려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저 사람은 지금 꼰대 짓을 하고있는건가, 조언을 하고 있는건가


<청춘페스티벌에서 유병재의 강연중..(본문의 내용과는 관련 없음)>

 꼰대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지가 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기도 하며, 이제는 장난으로 꼰대라는 단어를 사용 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용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규범을 무시하지 않고 규범에 일치되는 방향으로 가면 이를 고지식하다거나 꼰대라고 표현해버린다. 물론 실제로 위와같이 행동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꼰대일지도 모른다. 틀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에 얽매이면서 틀에 갇혀 살길 권한다면 고지식하고 꼰대스러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올곧은 충고를 하는 사람을 두고, 그 충고의 방향이 규범이라는 틀과 일치한다면서, 꼰대라고 표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규범을 이탈하면 생기는 불이익을 알려주고 충고해주는 것이 정말 꼰대스럽고 고지식한 것인가? 그 말이 걱정 섞인 충고인지,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니 하지 말라고 하는 고지식한 잔소리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구분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 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에 몰입한 나머지 본래의 틀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물론 하나의 이야깃거리로써 꼰대가 등장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말이 실제 생각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세상이 정한 길을 굳이 벗어날 필요는 없다


 물론 세상에 정답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는데 하나의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정답이 없으니 원하는 길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이지 '답'은 있다. 세상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기 때문이다. 모범답안이 있고 채점 기준이 있으며 답안에 들어가야 하는 키워드가 있다. 무작정 아무 답이나 써 내려가면 안 된다.


 왜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추구했고, '충고'와 '조언'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겠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이뤄서 실패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고와 조언이 있지 않았겠는가. 공동체를 유지하며 생긴 문제를 인식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권리나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분명 개개인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개인', '다양성'에 너무 강박을 가지고 추구하려 하진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답은 없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언하는 동시에 이를 좋은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세상에 '답'은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안고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현재 사회가 가는 방향과 다르다고 해서 무서워하거나 회피할 필요는 전혀 없어보인다. 우리에게는 모범답안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그 모범답안을 거부하고 다른 답을 택하는 것도 좋지만, 항상 창의적으로 새로운 답을 찾기만을 사회는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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