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 May 25. 2024

꽃집 은하

운동신경 없어?

우리 동네에 마당이 아주 넓은 집들이 두 세 곳 있었다. 잔디가 깔려 있는 마당에 진돗개가 묶여서 짖어대고 구석에는 나무들이 가득한 집들이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꽃집이라고 부르는 집이 있었는데 진짜 꽃을 파는 집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넓은 마당에 꽃이 많아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동네에 달걀 도매업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우리 언니들과 내가 그 집을 닭집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정말 생각 없이 부르는 별명 같은 이름이었다.

그 꽃집에는 아주 점잖게 늙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여름이면 하얀 모시옷을 입고 긴 호스를 들고 잔디와 꽃나무에 물을 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시절 큰 집에는 큰 개들이 대문 옆에 묶여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서 경고를 날리라는 목적이었다. 그 꽃집에도 큰 개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아니었던 것 같고 진돗개 두 마리와 작은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싸 놓는 똥을 깔끔히 치우기란 쉽지 않았는지 개똥냄새가 상당했는데 그 집 할아버지가 마당에 뿌린 물에 젖은 흙냄새와 개똥냄새가 희한하게 조화로웠다.






꽃집 할아버지가 누구와 살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쁜 손녀가 있었다. 나와 나이가 같은 그 여자애는 정말 하얗고 여리여리한 아이였는데 그 시절 6~7살 무렵의 나는 정말 까맣던 아이라서 그렇게 하얗고 백옥 같은 아이가 엄청나게 부러웠고 좋았다.


은하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말도 별로 없고 주장이 강하지도 않아서 조용조용 나랑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녀의 여동생만 빼면 언제나 은하가 오기를 기다렸다. 고집불통의 막무가내 곱슬머리 여동생은 우리 집 장독 뚜껑을 열겠다고 힘을 주고, 그걸 막는 내 손을 물어뜯으며 소리를 지르고,,, 내 주변에는 그렇게 악을 쓰는 애들이 없었기에 그저 손은 아프고 당혹스러움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모자람 없이 공주처럼 예뻐 보이는 은하에게 그런 망나니 같은 동생이 있다니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동생이 있다면 몰래 버리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은하가 불쌍하기도 했다. 아참,, 나에겐 나를 시녀 부리듯 부리는 언니가 있었구나,,,






어떤 하루, 은하와 그 동생, 나 그리고 작은 언니 이렇게 네 명이서 우리 집에서 놀게 된 날이 있었다. 사부작사부작 재미있게 놀던 중, 작은 언니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책상 위에서 뛰어내리기 놀이.


나랑 은하는 7살, 작은 언니는 10살 정도 되었었는데, 7살인 우리는  우리의 키보다 조금 작은 책상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면, 작은 언니는 한창 뛰어내리는 것에 재미 들려 있던 나이였고. 꼬맹이 앙마 녀석은 당연히 무서워서 못하겠다며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우리 셋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로 했다. 셋이서 손을 잡았다. 언니가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나는 아니다. 당연히 언니도 아니다. 은하다!! 다리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다음 장면은, 엄마랑 같이 쌕쌕 음료수를 사들고 은하의 할아버지집에 가서 다리에 길게 깁스를 하고 있는 은하를 병문안했던 일이다. 거기서 내가 들었던 건, 책상 위에서의 진실이었다. 그 위에서 작은 언니가 자신을 밀었다는 은하의 말. 아이고,, 우리 언니 한 건 했구먼,, 우리 언니가 진짜,, 일부러,, 밀지는 않았,,,겠지?


집으로 돌아와서 작은 언니에게 은하 다친 얘기를 하니, 언니는 절대 밀지 않았다. 은하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라며 발뺌을 했고 결국 엄마와 우리가 내린 결론은, 좁은 책상 위에서 다 같이 손잡고 뛰어내리면서 언니가 의도치 않게 밀었거나 당겼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엔 조심하자였다. 덧붙여서, 하얀 타이즈에 스커트만 입고 다니는, 절대 뛰는 일이 없던, 조용하고 얌전하고 예쁜 은하는 운동신경은 없는 아이였던 걸로.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은하를 본적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가 이사를 가셨을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우리 동네에 올 일이 없어졌을 수도 있고, 학교에 다니면서 바빠졌을지도,,, 아무튼, 어린 시절 내게 가끔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미지의 내 친구 하얀 은하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를 기억하고는 있으려나,, 할아버지 동네에 살던 까만 여자애?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선한 외할머니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