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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3. 2024

31년 만의 대학 졸업

50대 엄마의 학사 여정

무려 31년이 걸렸다. 엄마는 31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어느 날 밤, 할아버지는 잠들지 못하고 계셨다. 우리 집에서 오랜만에 주무시고 가는 날이었다. 텔레비전을 나란히 앉아서 봤다.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에 가서 월남전에 참여하면서 먹었던 음식들. 산에서 닭을 어떻게 잡았고 털을 뽑아서 간 하나 없이 먹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 아이들이 생기면서 담배를 끊은 이야기. 큰누나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음식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 술도 마찬가지다.’ 하신 이야기를 듣고 술을 입에도 안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의 자녀들 이야기.


할아버지가 기억하시는 엄마는 공부도 잘했고, 참 착했으며, 학교에서 반장도 곧잘 하던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대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일과 결혼으로 대학을 다 마치지 못했다. 엄마는 줄곧 말했다. 옛날 교과서가 지금처럼 한국어나 영어로 됐다면 공부를 더 재밌게 했을 거라고. 한자로 가득 찬 교과서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한문 사전까지 뒤적이며 살펴보느라 바빴다고. 그래도 공부가 재밌었다고.


작년에 엄마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20대 엄마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50대 엄마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처음엔 아이패드를 드렸다. PDF 파일로 된 교재를 다운 받아서 폴더에 보기 좋게 정리했다. 펜슬 사용법도 알려드렸다. 한 한 달인가. 엄마는 아이패드를 잘 사용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좀 넘자 엄마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pdf 파일을 교재로 제본하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그 길로 학원가에 셀프 제본소에 가서 교재를 만들어드렸다. 볼펜과 형광펜으로 교재를 열심히 보고, 옥스포드 노트에 본인이 한 번 더 배운 내용을 정리하면서 공부하셨다.


엄만 몸이 두 개였다.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했다. 집에 와서 조금 쉬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가족들이 하나둘 집에 오고 각자 쉬기 시작하면 엄마는 그제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보통 밤 10-11시가 넘을 때다. 종료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는 날이 꽤 많았다. 모두가 조용하게 있는 그 시간이 가장 집중하기 좋다나. 그 시간이면 졸릴 법도 한데 엄마는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에 공부했다. 시험기간에 공부 시간은 더 늘어났다. 주말 낮, 퇴근한 뒤 늦은 오후를 가리지 않았다. 일하고 잠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공부했다.


생각해보니 세 개였다. 일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엄마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와 아빠에게 “잘 다녀와” 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꼭두새벽에 배고파 일어나는 딸이 아침이라도 제대로 못 먹을까 먹을 게 없으면 부랴부랴 일어나서 아침까지 차려주시곤 했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딸과 전혀 다른 시간대로 살아가는 아들을 위해서는 밤에 저녁을 차려주시기까지 했다. 밥뿐이랴. 내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엄마가 했을 청소, 빨래 등 여러 집안일도 빼놓을 수 없다. 자취하면서 깨달았다. 집이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건 눈에 띄지 않도록 반복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본가에 살면서 아침에 눈 떠서 출근하고 야밤에 늦게 퇴근하는 딸은 그 노력을 볼 리가 만무하다.


온 가족은 엄마의 공부를 지지했다. 4년 중 2년에 그친 20대 엄마의 공부가 50대에 당도해서 2년을 채울 수 있다고 응원했다. 아빠는 엄마의 출퇴근과 집안일을 도왔다. 나와 동생은 온라인 학업의 적응을 도왔다. 이 모든 지원과 별개로 공부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일하고 가정을 돌보는 그녀에게 “엄마, 이제 50대라고 해서, 이미 다 성인이 되고 나이가 늘어간다고 해서 배우지 않으면 안돼. 엄마는 오래 살 거야.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은 걸 조금씩 해봐.” 라고 말하며 공부 열의를 돋구었다. 하지만 그녀의 최근 학업 여정에 나는 무슨 도움이 되었나.


엄마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지금 석사 공부를 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경제학의 맛을 봤다. 인서울 인문계 학부를 졸업하고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코스를 밟고 있는 내게 경제학은 정말 고난이도였다. 수치로 명료하게 정리되는 결론을 보자면 가끔은 저 학문의 온도가 너무 낮다고 생각했다. 마치 AI 같은 쇠맛이 느껴졌다. 엄마는 20대인 나도 이해하지 못해 허덕이는 학문을 50대에 해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엄마는 카톡방에 유튜브 링크를 올렸다. 엄마 학교의 졸업식 라이브 송출 영상이었다. 사당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하늘을 보며 ‘비가 지겹게 오네. 세상이 물에 잠기려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받은 그 링크는 괜히 울컥하게 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엄마에게 지금 비 같았을까. 일하고 집안일까지 마쳤는데 아직도 쏟아지는 할 일이 남아있는 나날이었을까. 아니면 비 온 뒤 뜨는 무지개처럼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 아름다운 나날이었을까. 집에 오니 엄마의 졸업장을 출력해둔 걸 뿌듯하게 자랑하셨다.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집에 와서 찬란한 무지개를 봤다.


“느지막이 공부하랴 일하랴 정신 없었을텐데 꿋꿋하게 이겨내고 졸업까지 하게 된 걸 진자 축하해요!!!!!!! 엄만 내 주변 최고령 학사 전공자야. 뭐든 해내는 사람 멋져!” 라고 보냈다. 엄마 성적이 낮든 높든 그건 상관 없다. 엄마가 전공을 살려서 나중에 뭐가 되든! 같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같은 삶을 살아가는 가족으로서, 앞선 세대를 먼저 살아간 사람으로서 엄마는 훌륭한 레퍼런스다. 어느 워크숍에서 “당신의 레퍼런스(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엄마를 적고 그녀의 가치관과 인성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적었다.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외부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노력을 해내고 이뤄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적고 싶다.


엄마, 회사 다니고 대학원 다니고 개인 프로젝트 하는 딸 보면서 ‘좀 천천히 살아도 돼’ 라고 말했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빨리 눈물을 삼켰는지 몰라. 나도 엄마한테 그 말을 해줄 걸 그랬다 싶어서. 나중에 내 자식한테 꼭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의 두루 살피는 지혜가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오래 남을 수 있길 바라거든.


엄마 최근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잖아? 다들 한 강의만 듣고 끝낼 때, 시작한 날부터 줄곧 여러 강의가 모인 한 챕터를 끝내버리기를 이어가는 엄마를 보고 어쩌면 천천히 살지 못하는 유전자를 나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 그 유전자와 별개로 공부를 해낸 것처럼 이제 아들 딸 공부랑 일 다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엄마가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해가면 좋겠어.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항상 응원하고 자랑스럽고 존경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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