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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30년을 부부로 산다는 것

2+2=30

by 보라

1. 엄마가 “이만 가보겠습니다!”하고 퇴근하면, 동료들이 묻는단다. 뭐 그리 바삐 나가냐고. 밖에 누구 있냐고. 그럼 엄마는 아빠가 데리러 왔다고 한다. 동료들이 묻는단다. 어차피 매일 보는데 일찍 가서 뭐 하냐고. 엄마는 “카페 가죠 뭐!” 그러고 나온단다. 한 동료가 그랬단다.


아직 부부네.
우린 카페를 언제 갔는지도 모르겠어.



2. 저번 주 화담숲에 둘이 놀러 가셔서 사진과 영상을 엄청 보내왔다. 나랑 동생이 다 크고 나니 이곳저곳 맘껏 놀러 다니시는 그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클 걸 그랬나.


그렇다고 엄마아빠가 마냥 달달한 건 아니다. 여보자기 하는 부부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 엄마아빠는 여전히 서로를 ##엄마, ##아빠로 부르는 30년차 부부다. 달큰한 사탕이 아니라 오래 고아낸 맑은 곰탕국 같다.


3. 알쓸신잡에서 “사랑”에 대한 대화​가 나온 적 있었다. 연인에게는 예측불가능성이, 부부에게는 예측가능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고, 그 말은 유달리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 엄마아빠가 생각나서였나. 가끔 아빠가 ”그거 어떻게 됐어?“라고 갑자기 물을 때, 아빠랑 30년 가까이 산 딸인 나는 ”그게 뭐야?“라고 되묻는다. 나보다 2-3년 더 오래 아빠랑 살고 있는 엄마는 척하면 척 안다. 그리고 아빠 대신 그게 뭔지 바로 설명해준다. 오래 함께 산 부부는 곰탕국만큼이나 서로에게 투명하다.


4. 30년차인 우리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 전에, 60년차 부부로 사는 한 선배를 만났다. 결혼한 지 60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을 계획하고 계신 80대 후반의 남편이었다. 아내가 5살 연상이라고 하시며 어떻게 그녀와 만나 결혼했는지를 살며시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던 남편이었다. 그 분과 헤어질 때 그 분이 주신 명함에는 부부 사진이 있었다. 회혼식을 그리는 부부는 비슷한 그림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데 괜시리 우리 엄마아빠 생각이 났다. 30년 뒤 우리 엄마아빠도 이만치 예쁠 것 같아서.


5. 약 30년 전 초가을, 한 동네 살았지만 서로를 전혀 몰랐던 부부가 올림픽 공원에서 결혼했다.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다. 30주년 기념 리마인드 웨딩 이야기를 꺼내니, 엄마가 “야, 내 두 번째 결혼식은 됐고 너꺼나 잘해,”라고 한다. 엄마, 어떻게 내 나이에 결혼을 했어? 애는 또 어떻게 낳고? 난 아직 마냥 어린아이 같다.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엄마아빠가 다독여준다.


너랑 네 동생 없었으면 이만큼 못 왔지.
30년은 둘의 시간에 또 둘이 더해져서 쌓인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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