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 아들이 내년에 결혼하잖아. 근데 그러더라.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고 나는 와서 앉아있기만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물론 다 똑똑하니 알아서 잘 하겠지. 근데 왠지 모르게 섭섭하다고 하더라고." 친한 언니를 보고 온 엄마가 말했다. 결혼 적령기인 딸과 대화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분명 어떤 암시가 있지 않겠는가? 엄마에게 웃으며 물었다. 여기서 핵심은 '웃으며'이다. 진지하게 물으면 곧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엄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거 같은데?ㅋㅋㅋ"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을 거라는 방어막은 강력하다. 하지만 엄마의 레벨은 나보다 한 수 높다. 엄마는 강력하게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것 또한 강한 긍정은 부정이라는 공격이었다.
2. 더 정곡을 찌르는 건 아빠다. 올해 가본 결혼식 중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는 신부는 진짜 한 손가락을 접을까 말까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빠의 로망이었을지 모르는 그 장면은 재생되지 못할 것 같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작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연애를 막 시작할 때 그녀가 말했다. "난 아빠만큼 나를 이 세상에서 사랑해줄 남자가 없을 거 같아서 한동안 연애가 안 됐거든. 누가 내가 침 흘리고 자고 있어도 예뻐해주겠어." 맞네, 우리 아빠도 내가 온갖 짜증을 부리는 불효녀 그 자체인데도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품어준다. 그녀의 말과 아빠의 행동이 겹치면 괜시리 고민하게 된다. 아빠에게 결혼식장에 손 잡고 들어가는 건 정말 로망일까? 언제부터 로망이었을까? 얼마나 간절한 로망일까?
3. 엄마랑 아빠는 어른들이 맺은 부부였다. 누구랑 언제 어디서 결혼하느냐부터 시작해서 결혼 이후 삶은 어떻게 꾸리느냐까지 엄마와 아빠가 정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그 둘이 부모가 되어도 결혼에서 결정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엄마만 그런 게 아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 친구도, 내 친구의 부모님도 다 그렇다.
4. 내 친구들은 이제 하나둘씩 아기 캥거루에서 자취생이 되어간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 입에 풀칠도 내가 하고, 내 집도 내가 구하고, 내 삶도 내가 꾸린다. 우리 엄마아빠도 내가 처음 자취할 때 그랬고, 친구들 부모님도 집을 처음 나갈 때 말씀하신다. "그래 일단 나가서 살아봐. 한 2-3년 살고 다시 들어와." 이 말을 듣는 순간에는 어떻게든! 내가 내 힘으로 잘 살아본다는 청개구리적 마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엄마아빠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졌는지(어떻게 비셨나 물어봐야지), 나는 정말 1-2년만에 본가에서 다시 살게 됐다. 자취할 때와 그다지 다를 바 없이 집에서는 잠만 자는 삶이라 엄마아빠와 제대로 얘기 나눌 시간도 없는데도 엄마아빠는 그저 품 안에, 눈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가보다. 요즘에 바뀐 대사는 "너가 이렇게 살아도 얼마나 살겠어. 결혼하면 나가살면서 진짜 너가 다 해야 되니까 지금이라도 집에서 잠만 자고 먹기만 해. 누려."
5. 호사로운 캥거루로 사는 요즘, 회사에서 일하며 워라밸 주제로 인터뷰를 하러 다닌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인터뷰라기보다는 일하고 사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대화에 가깝다. 그 덕에 웃픈 사연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단연코 뒤통수가 얼얼했던 인터뷰가 있다.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지만 주말 혹은 연차를 내고 부모님을 뵈러 가는 분의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자취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야 되는데, 집에 가면 너무 편안하다고. 학창 시절 크고 작은 순간마다 나를 잘 이끌어주신 부모님과 지금도 잘 지낸다고. 그 분이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내 입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이상했다. 한편, 그 분은 유일하게 '혼자가 아닌, 결혼으로 생긴 식구가 아닌, 엄마아빠와 가정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 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까? 나는?
6. 약속 없는 주말, 우리 엄마아빠의 일상을 본다. 정확히는 듣는다. 나는 내 방에서 주중에 다 마치지 못한 일을 하거나 자료들을 보느라 그들과 같은 '방'에 않다. 어느 순간 웃음소리가, 어느 순간 대화소리가, 어느 순간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여러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진다. 그런 와중에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문을 살짝 열고 엄마나 아빠가 물어본다. "과일 먹을래? 좀 쉬었다가 하지." 새삼 나는 고3 때 잠깐 예민했는 줄 알았는데, 조심스러운 노크와 주저하는 대사를 듣자니 나는 항상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딸이었나 보다 싶다. 이제야 안다. 과일 먹을래?에 대한 답은 항상 "네, 안 그래도 이제 좀 쉬려고요."라는 것을. 그리고 방에서 나와 거실로 갈 시간이라는 것을. 어쩌면 엄마가 친한 언니 얘기를 빌려 하고 싶었던 얘기도 내가 느낀 그 말이 맞았을지도, 어쩌면 아빠가 결혼식 얘기를 들으며 그린 이미지는 내 마음에 걸린 그 장면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표지 이미지는 나노 바바나 프로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