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조 Apr 30. 2023

나는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

불혹, 아니 새로 채우는 부록

2023년, 마흔이 되었다.

삼십 대가 지나갔다.

나는 4평 원룸에 살고 있다.

차? 없다.

올해 들어서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껏 돈을 벌어왔고, 앞으로도 살아가려면 당연히 돈은 벌어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나도 이 생각은 쉬이 잊히지 않았고,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한번, 아주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Q1) 돈은 왜 벌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부터 난관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태껏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돈은 무엇이며 왜 벌어야 하는지 같은 것 등.


다른 이들이 말한 것들을 조금 빌려와 보.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가난이나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 머리로는 알겠다. 그런데 나는 내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 없고, 소비욕이 크지도 않다.


Q2) 그럼 나에게 '돈을 번다'는 건 무엇일까?

그나마 한 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가족'. 가족이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다는 것. 돌이켜 보면 이십 대 때는 그런 삶을 살았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와 사기 피해,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동생. 소비욕과 물욕이 없는 나의 월급은 알아서 모였고, 그 돈은 고스란히 집안의 이런저런 빚을 갚는 데 쓰였다. 그땐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했다.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삼십 대 초반까지 그랬던 거 같다. 부모님께서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고 조금씩 나아진 가계 상황에 더 이상 부모님께 돈을 드리지 않게 되었다.(아, 물론 동생은 부모님 몰래 좀 더 도와주긴 했다.)


그즈음 인생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찾았다.

그걸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 병행했다.

드디어 하고 싶었던 것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수입이 적어도 괜찮았다. 즐거우니까.

돈을 번다는 마음으로 한 적이 없었다.

노동을 하는데 돈을 벌지 않는다니. 모순이 일었다.

그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돈 돈 돈'

돈을 벌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나의 노동은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었다.


Q3) '돈'에 대해 얼마나 알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돈'을 모른다.

돈에는 버는 능력, 모으는 능력, 유지하는 능력, 쓰는 능력이 있다는데 나는 그 어떤 능력도 키운 적이 없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 <화차>에서처럼 오랜 시간 만나온 연인이 있지만, 사실은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연인이 떠나가도 떠난 이유를 알 수 없고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를 수밖에 없다.

설령 내가 아무리 그 연인을 다시 보고 싶어 할지라도.


떠나간 인연은 그대로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이전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차피 다시 만난다 해도 그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테니. 

실패에서 배우고 달라지면 새로운 인연은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돈도 만나게 될 것이다.




결국, 돈은 벌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고 지키려면,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을 모른다고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배우면 되는 거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저자는 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돈이 아니다. 새로운 자신과의 만남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명확한 나만의 해답을 찾진 못했다.


조바심 내지 않으련다. 새로운 나 자신을 만나는 게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앞자리도 바뀐 마당에 굳이 조바심낼 필요가 뭐 있겠나.


마흔이 되고 좋은 점 중 하나는 가치관이 보다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흔을 불혹이라고 부르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자동 파이프라인이 아직 없으니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 알베르 카뮈 -



결국, 나도 돈은 벌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속이거나 스스로 부끄럽거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벌진 않을 것이다.




'근데 돈... 뭐부터 배워야 하는 거지?'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은 오늘을 살게 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