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옹기종기 Feb 24. 2024

적당히 일하는 공무원이고 싶다

과로의 악한 영향력

 지원청으로 발령난 지 약 두 달이 되었다.


 일이 없어 괴로워 했던 지난 날이 무색하게 현재의 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에 매일 같이 허덕이고 있다.


 아직 일이 익숙지 않아 버겁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같은 일을 2년 가까이 한 사람들도 여전히 기한에 쫓겨 허덕이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맡은 이 일 자체가 한 사람이 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근무 시간에 풀로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물론,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평일에 다 끝내지 못한 일을 겨우겨우 쳐내는 중이다.


 이미 몇 년 전 구청 시절에 겪어본 상황의 반복이지만 오랜만에 겪어보니 여전히 이런 눈코뜰새 없이 바쁜 상황이 당황스럽고, 생경하고,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직장에서 1인분 이상의 과한 업무를 하는 시기가 되면, 평범한 일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이 일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원래 출퇴근 하는 지하철 안에서 부동산과 관련된 재테크 책을 읽거나, 블로그와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을 쓰며 나름 길 위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덕분에 교행으로 일한 지난 2년동안 전에는 전혀 몰랐던 재테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블로그와 브런치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모임에 참여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달리기와 등산을 하고, 사랑하는 와이프와 부모님과의 시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행정실에서의 업무 부담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퇴근 시간조차 다른 직장인들보다 1시간 30분이나 빠른 네시 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달라졌다.


 일단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완전한 언감생심이다. 이미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머릿 속은 하루 종일 온통 업무 관련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업무, 곧 생존과 관련된 텍스트 이외의 텍스트를 머릿 속에 집어 넣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굳이 여유가 생긴다면 업무와 관련된 매뉴얼이나 법령을 보아야 하고, 대부분의 출퇴근 시간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는 등, 평소 바쁘게 돌아가기만 하는 머리를 잠시 쉬어주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운동도 마찬 가지다. 매일같이 밤 10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와 잠 잘 시간조차도 쉬이 확보되지 않는데, 굳이 옷을 갈아 입고 헬스장에 가서 30분~1시간씩 운동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과연 보통 사람의 의지와 신체적 능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반복되는 야근과 스트레스로 인해 무조건 집에 오면 겨우겨우 씻고 나서 침대에 쓰러질 뿐이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것이지만, 공무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삶의 밸런스'라는 생각이 든다.


 근무 시간 중에 끝낼 수 있는 양의 적당한 업무를 근무하는 동안 보람차게 딱 끝내고, 적당한 성취감을 가진 채 가정으로 돌아와 남아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과 나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


 아무리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아도, 아무리 빠른 승진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 상황처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원치도 않는 직장일에 오롯이 다 쏟아붓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고 건강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하루종일 일이 없어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퇴근 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업무에 치여 괴로워 하고 있다.


 모두가 근무 시간 중에 집중해서 끝낼 수 있는 적당한 양의 일을 하고, 모두가 적당한 성취감을 얻고, 모두가 적당한 평가를 받으며 즐겁게 공무원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저 나는 조직에서 내 급수와 급여와 경력에 맞는 1인분을 해나가며 적당히 일하는, 다만 내가 맡은 일만큼은 완벽하게 처리하는, 그런 공무원이고 싶을 뿐인데 조직은 결코 나같은 사람들을 1인분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당장 다음주까지 해야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이번 주말에 다 끝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적당히 일하는' 공무원이고 싶다. 왜 그게 나에겐 그토록 어렵기만 한 것일까.


 참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오피스>

매거진의 이전글 공무원에겐 없는 개념, 노력에 대한 보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