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려는 사람 존중받아야 한다
얼마 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끝났다. 드라마 이전에 소설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었는데, 원작 소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울림을 주는 드라마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류승룡 배우가 한강 둔치에서 25년간 직장인으로 살아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씬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이었다.
평소에도 사람에게 있어 직장은 무엇인가, 명예란 무엇인가란 생각을 늘 하며 살아왔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엔 그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할 수 있었다. 김 부장에게 대기업 부장이란 타이틀은 어떤 의미였을까. 상사의 팬티를 빨고, 자녀의 졸업식 한 번 참여 못 할 정도의 정성을 들여서라도 갖고 싶은 그런 트로피였을까. 아니면 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방향에 따라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달려가야만 했던 도피처에 불과했을까. 어찌 됐든 김 부장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수식어인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 모두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김 부장에게 임원 승진 or 명예퇴직이라는 2가지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라 아니라, 직급을 하향해서라도 원래 본인이 잘하던 일인 영업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과연 김 부장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처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인사팀장에게 먼저 사표를 내던졌을까? 아니면 관리자로서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 원래 잘하던 영업일에 만족하며 회사에 계속 붙어 있었을까?
이 궁금증의 해답엔 비단 김 부장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역대 최고의 ‘그냥 쉬었음’ 청년 세대가 공존하는 현 대한민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답은 결국 ‘일하려는 사람에 대한 존중’에 있다. 김 부장의 나이가 20대든, 50대든, 70대든 김 부장의 직급이 사원이든, 과장이든, 부장이든 그가 가장 빛을 발하는 업무와 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만 준다면, 김 부장과 같이 열심히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받지도, 반대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할 기회를 박탈 당하지도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의 사회가 될 수만 있다면 요즘 한창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정년 연장’은 논의조차 할 필요가 없는 문제가 된다. 애초에 나이를 떠나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능력만큼 일을 하고 그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 간다면, 정년을 만 60세로 하니, 만 65세로 하니 하는 싸움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정년을 없애고 능력과 기여에 따른 보상을 모두가 공정하게 받아 가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어찌 보면 일괄적으로 정년을 정하는 것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존 세대나 청년 세대나 양쪽 모두가 하는 일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 보상을 누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백 상무 앞에서 “나 아직 쓸모 있는 놈이라고!!” 울부짖던 김 부장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형의 세차장 한 구석에서 세차를 하며 조용히 자신의 ‘쓸모’를 다시 증명해 나간다.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곁가지들을 다 벗어던지고 본질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을 것이다.
김 부장이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쓸모를 찾아 평안을 얻은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반대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죽일 듯이 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배경 출처: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