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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형 Sep 16. 2022

I. 오산 마을의 청춘(靑春) - 2화

    중식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아내가 나의 팔을 말없이 잡아 끌었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지도를 읽고 있다. 길을 헤메일 때면 아내는 일단 그 자리에 잠깐 멈추어 서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파악한다. 그런 다음 목적지의 위치를 확인한 후 최적의 경로를 찾은 다음에야 방향을 정해 발걸음을 뗀다. 아내는 헤매이는 법이 없다.

    반면에 나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수였다. 도무지 멈추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지도 따위 확인할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편이 낫다는 기적의 논리로 무장한 채 일단 발걸음부터 떼고 본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든 잘못된 방향이든 상관없다. 직감상 목적지가 있을 것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으니까……

    결국 손 뻗으면 닿을 거리조차도 한참을 헤매어야만 했었다. 돌이켜보면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헤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번에도 아내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화요리 칭춘(醇淸): 맑고 그윽한 맛’


    하얀 벽에 걸린 메탈 재질 간판이 과연 맑고 그윽한 느낌을 주는 것만 같다. 나처럼 식당 이름을 착각했던 사람들은 단호한 느낌마저 받을지도 모르겠다.

‘중화요리 칭춘’의 간판. 맑고 그윽한 중화요리를 정말 깔끔하게 이미지화 시킨 것 같다.

    “또 어느 생각의 바다에서 유영 중 인고? 여보,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입구 문고리에 손을 얹고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화들짝 놀라 황망히 식당문을 열자 우렁찬 인사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온다. 주방은 오픈형 주방으로 주인장의 요리하는 모습을 안팎으로 볼 수 있다. 오픈형 주방은 실력과 청결에 자신 있는 가게만이 할 수 있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다. 실력과 청결에 자신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일하는 모습이 노출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만 같기도 한데 이곳의 주인장은 그런 모습까지도 맑고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나 보다. 아내와 나는 가게 맨 끝 가장자리에 앉았다. 식당안의 적당한 어두침침함 그리고 통유리창 밖으로 넘실거리는 하얀 봄빛이 어우러져 묘한 아늑함을 자아낸다.

‘중화요리 칭춘’의 내부. 봄볕과 대비대는 어두움이 한가로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자리에 앉자 청바지에 남색 셔츠와 남색 앞치마를 두른 젊은 종업원이 차와 간단한 찬거리 그리고 메뉴판을 내어주었다. 흘깃 주방을 둘러보니 가게 주인장 역시 남색 셔츠에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연신 바쁘게 팬을 흔들고 있다. 유니폼도 유니폼이지만 특별히 푹 눌러쓴 남색 중절모 때문일까 왠지 주방장 역시 젊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나의 추측은 식사가 나올때 즈음엔 확신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의 기억속에 칭춘의 주방장은 30대 초반의 젊은 분이다. 물론 근거는 없지만……


    “이 가게는 참 특이하네.”


    가게를 둘러보던 아내가 찰나의 정적을 깨며 소감을 말했다. 아내는 디자인이나 구조가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이하다는 말을 쓴다.


    “왜? 식당 분위기가 자기 취향이랑 안 맞나?”

    “아니, 그게 아니고 인테리어부터 그릇이랑 메뉴판까지 가게가 느낌이 전반적으로 특이하다고.”


‘특이하다’라는 말과는 다르게 ‘참 특이하다’ 라는 아내의 말은 칭찬의 의미인가 보다.


    “뭔가 전체적으로 방향성이라 해야 하나? 가게 사장님 개성이 있으신 것 같아.”

    “음……”


    아내의 소감을 듣고 나자 가게 문전부터 받았던 형언하기 힘들었던 이질적 느낌들이 머릿속에서 결합되어 결정적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화요리가 어떻게 맑고 투명할 수 있단 말인가?’


    중화요리라 함은 불과 기름으로 빚어내는 것으로써 기름기가 주는 근본적인 느끼함을 화력이 주는 강렬한 맛으로 덮어내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주방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팬과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자국이 있어야 할 게다. 이 모든 느낌을 잘 나타내는 것이 중국집 간판이라 생각한다. 으레 검게 칠이 된 나무 간판에 양각으로 새겨진 식당이름 위에 흰 칠이 되었으며 간판 모서리는 빨간색 천으로 장식 되어있는 그런 일반적이 중국집의 간판 말이다. 그런데 칭춘은 모든 것이 내가 갖고 있는 중국집 가게에 대한 선입견의 정반대이니 참으로 특이하다. 나는 이 중식당이 아닌 중식 퓨전요리라 내 멋대로 단정짓고는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중식당에 대한 고찰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아내는 애정 어린 미소를 띈 채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중국집 간판의 정석.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왠지 그럴 것 같네. 그런데 자기는 아직 식사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네? 일단은 먹어보고 확신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깨끗함을 추구하는 이 가게 사장님의 철학이나 개성이 가게에서 묻어 나는게 아닐까 싶어. 당신 표현을 빌리자면 사장님의 꿈을 현실에서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아내는 말 끝을 흐렸다. 게다가 아내의 어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완곡하다. 우리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무렵 나는 아내를 ‘기 쎈 누나’라 장난삼아 부르곤 했다. 아내의 외관이 강해 보이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철두철미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모습을 좋아했기에 애정을 담아 그리 불렀었다. 어디서든 누구 앞에 서든 차분하면서도 주눅들지 않는 아내의 자신감은 억지스러운 포장이 아니었고 나는 그런 아내에게 빠르게 빠져 들었다. 그런데 비유나 은유를 섞거나 돌려 말하는 법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던 사람이 언제부터 인지 나와 대화할 때면 나의 눈치를 보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단순한 의구심으로 치부해버렸었다. 아내처럼 선이 굵은 사람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가 말끝을 흐렸다. 내가 품었던 일말의 의구심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아내가 아내 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아마도 내 탓일 게다. 내가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내를 무던히 괴롭혀서 그런 것이리라. 아내는 내가 가지고 있는 ADHD(현재는 ADD)와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강박과 우울 등의 각종 증세들을 정면에서 끌어안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사랑할수록 사람들은 멀어졌다. 아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고야 말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박적으로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나자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체온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메뉴판을 덮어버렸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당신 배 많이 고프나? 아무래도 다음에 올까?”

    “어, 나는 많이 고파. 지금 먹자 여보. 기분이 다운된다고 자꾸 안 먹으면 안돼.”


    아내는 나의 얼굴만 보고도 나의 기분 변화를 알아차렸다. 아내의 센스에 감탄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내가 그간 아내에게 쌓아 올린 히스테리의 결과물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건지 헷갈렸다. 나는 또 다시 아내에게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간 수 없이도 많은 사과와 양해를 사람들에게 구했지만 이러한 행위는 도무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매번 낯설면서도 괴롭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투나 음색 그리고 제스처는 어떻게 할지 등등을 머릿속에 그리며 우물쭈물 하는 찰나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나는 다만 당신이 편해지기를 바래요. 지금은 그 생각에서 나와요. 여기 봐바, 메뉴판을 펼쳐줘서 못 봤는데 메뉴 표지가 당신 좋아하는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표지다!”

마치 영화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칭춘’ 메뉴의 표지. 메뉴를 굳이 펴서 주는 이유를 유추 해보기도 했다.

    아내는 내 두손을 잡은채로 우리가 함께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내의 온기 덕분에 차가웠던 몸이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머리속에 똬리 틀고 앉으려 했던 강박적인 죄책감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아내의 배려에 쫓기어 스멀스멀 빠져나갔다. 허기가 다시 느껴졌다.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아내 덕분에 다시 찾은 허기로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아내는 기 쎈 인상과는 다르게 마음씨가 고운 사람임을 새삼 다시금 깨달았다.


(다음화에 계속)


2022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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