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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Oct 04. 2024

노력, 재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1.퀘렌시아> 류시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뒤 나는 지인의 제안으로 초기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달랑 다섯 명이 전부였고, 사무실도 그 다섯명이 딱 들어 차면 적당해 보일만큼 아담한 곳이었다. 아이템 하나로만 꾸역꾸역 2년 간 4명이서 우당탕탕 운영해오던 회사였지만, 나름 서비스는 그 초기 형태를 갖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것은 산더미였고 여전히 인력은 모자랐다. 융통이 가능한 돈도 마땅치 않았지만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 고기를 씹어댈 만큼 우격다짐으로 성장을 하던 곳이었다.

 나 또한 갈아 넣었다. 땀과 힘듦에 절은 쉰내가 진동했지만 내 미래에는 분명 이에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전념했다. 밤 10시가 지나서야 겨우 퇴근을 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마저도 모자라서 철야 업무를 할 때도 빈번했다. 주말에도 집에서 쉬는 것보다 차라리 회사에 나가 밀릴 것 같은 일을 처리하거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고객 응대 업무를 하는게 마음이 훨씬 편할정도였다.

 이 생활을 약 1년 정도 반복하다 보니 나나 회사나 꽤나 성장해있었다. 물론 갈길은 여전히 바빴지만 5명이던 구성이 15명으로 늘었고, 사무실도 좀 더 크고 쾌적한 곳으로 옮겼다. 2년째 되던 해에는 회사가 투자를 받아서 더욱 번창했다. 그 번창에 있어서 내가 기여한 비중은 무시할 수 없었다. 대충 정량적으로 계산해봐도 내 시간의 약 7할을 회사에 쏟아부었다. 양으로도, 그리고 몰입한 수준으로도 난 분명 인생의 농후함을 회사의 톤에 맞추고 있었다.

 입사한지 만 3년이 지나고부터인 듯 하다. 내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로감이 몰려오는 날이 많았고, 피로감은 무기력함으로 변하는 날이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힘껏 기뻐했을 만한 성과에도 기뻐하지 못했고, 오히려 닥처올 또 다른 업무가 시련처럼 느껴졌다. 딱 한 번 열흘간의 휴가를 냈지만 그 기간에도 나는 무기력에 절여져 집에서 잠만 자다가 다시 업무 전선으로 복귀했다.



투우장 한 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썼다.
(...)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 심자이 무너질 때,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곳에서 누구로부터도, 어떤 계산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자유 영혼의 순간을 가져한다. 그것이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 길이다.


시인이자, 명상가이자 여행자인 류시화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작가 자신이 전 세계를 돌면서 경험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책으로, 위의 내용은 책의 첫 에피소드 <퀘렌시아>의 내용이다. 투우장의 소는 자신이 투우사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투우장에서 가장 편안 안식처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곳에서 진정 자신만의 안식을 취함으로서 투우사와의 처절한 전투를 준비하고 숨을 고르는 것이다.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만 5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었지,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청난 업무량에 치이고, 무수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감정의 밑바닥을 구경해보기도 했다. 단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거쳐서 그에 따른 보상도 받아보기도 하고, 성장 자체가 내 주름이 되기도 했다. 정작 그 시간동안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 나 자신을 올바르게 돌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렵게 결심한 열흘간의 휴가동안에도 내가 택한 것은 휴식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을 키워가는 일이었다. 그것이 나의 휴식이라 나를 속이고 있었다.



 이미 내가 퇴사한지 1년은 더 지났을 즈음, 나의 퀘렌시아가 글과 책에 있음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노력을 갈아 넣었던 그 당시 나의 곁에도 분명 글과 책은 존재했다. 그 존재들이 나의 퀘렌시아임을 자각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을 내 곁에 두는 것이 그저 일상의 스쳐감으로만 받아들인 나의 미련함을 탓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겠다. 인생을 살아내고 견뎌내는 나의 전투를 잘 치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힘을 기르고 무기를 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나로서 채워갈 수 있는 안식처, 퀘렌시아를 찾아내고 더욱 잘 가꾸는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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