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자세
나는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고, 삶에 회의감이 들 때,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노라 다짐하며 서점을 찾아 두껍고 비싼 자기계발서 두어 권을 산 적이 있었다. 권위가 높고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학자들이 쓴 책들이었다. 그들이 살아오며 느낀 경험칙, 또는 그들이 무수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로 도출해 낸 지식이, 책 제목과 각 챕터마다 강렬한 명령조로 정렬되어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했다. 모두 첫 챕터까지는 읽었으나 그 후로는 읽지 않았다. 지금은 내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있거나, 중고 서점에 싸게 팔아버린 책들. 자기계발서는 그 호불호가 순문학만큼이나 상당하다. 자기계발서 부류의 책들이 다른 장르들에 비해서 종합 베스트셀러 칸에 매달 더 많이 꽂혀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보다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마니아층이 뚜렷하다고 봐야 하겠다.
그 매니아 층이 왜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지는 그 이유가 매우 명확하다. 첫째, 명령조 자체가 불편해서. 둘째, 지침들이 너무나 일반적이라서 자신에게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셋째, 결국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파는 장사꾼들의 마케팅 수단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본능. 적어도 한 번쯤은 자기계발서를 경험하고(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 사람들의 이유일 것이리라.
나 또한 비슷한 이유로 자기계발서를 싫어했다. 이런 내 의견을 어느 자리에서나 가감 없이 얘기했고, 자기 계발서를 읽는 다른 사람의 취향은 존중하되 그들이 읽은 책을 내가 읽어볼 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점에 갔다가 책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에 무심코 골랐던, 데릭 시버스의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데릭은 자신이 음악가에서부터 세계적 기업의 설립자로 성장하기까지 경험한 삶의 경험칙 66가지를 이 책에 눌러 담았다.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는 내가 자기 계발서에 관심을 가진다는 꽤 역설적인 행동에 위화감이 들었으나, 기존의 책과는 달리 매우 얇고 각 챕터마다 다섯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곧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회의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책을 약 7할 정도 읽을 때까지도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57번째 경험칙을 읽고 58번째로 접어든 순간, '은유적인 글 읽기'에 대해 그가 경험한 바를 한 줄씩 읽어 나가면서 회색빛이 감돌던 머릿속이 본격적으로 밝은 빛에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챕터 끄트머리에서 데릭 시버스가 던진 하나의 질문,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교훈에 집중하게 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상당히 간결한 하나의 의문문.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도 복잡하고 장황한 활자들이 멋들어진 답변을 위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아니, 변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야 정확하겠다. 나는 변명할 수 없었다. 그가 던진 질문에 나는 결국 내 선입견 쌓인 과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명령으로 들리는 문장들이 고까웠던 과거, 될 놈만 되는 세상에서 되는 놈이 쓴 글에서 느끼는 본능적 반감에 집중한 과거를.
읽던 구간을 덮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다. 각 챕터마다의 규칙과 행동 양식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린다. 나는 그와 유사한 경험은 없었는지,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매 챕터를 종결짓는 그의 질문들을 읽는다. 그의 물음에 나만의 경험칙과 행동 양식을 정돈해 보거나, 행동 양식으로 정해놓지 않았던 순간의 깨달음을 선사한 나만의 경험을 다시 곱씹고 정리하기에 이른다. 그가 정리한 66가지의 행동령, 그리고 그가 나에게 내던진 66가지의 묵직한 질문들. 어느새 나는 그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답을 메모장에 정리해 두고 있다.
자기계발서가 되었건, 비문학, 소설, 시, 또는 지나가다 보이는 문구들이 되었건, 나의 감각에 와 닿는 모든 것들에는 각자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결코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을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선택하겠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선입견에 쌓여 있던 것은 아닐까? 삶을 은유로 받아들인다는 일이 꽤나 고되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책을 읽든, 영상을 보든, 향을 맡든, 남의 얘기를 듣든, 내 것으로 만들 은유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삶을 향유하고 나만의 것들을 충만하게 쌓아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더욱 짙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명령조가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진다면, 그 강력하고 때로는 단호하기까지 한 문장을 의문문으로 바꿔보자. 그리고 그 물음에 자신만의 답을 내어보기 위한 사유를 해보자. 고깝게만 받아들이던 글 안에서 비로소 나만의 본질을 도출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 오늘의 책 :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 저자 : 데릭 시버스 (Derek Sivers)
- 출판사 : 현대지성
- 이미지 출처 : 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