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어. "아뇨 형은 인생 뭐 있게 살아왔어요"

by 대현

삼수 때부터 알던 동생을 만났다. 거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나에겐 다른 이들의 학창 시절 친구만큼이나 애틋한 존재라고 해도 무방한 녀석이다. 우리는 각자 걷는 길이 달랐지만 자신의 가시권 안에서 서로의 여정을 응원했다. 그렇게 응원의 시간이 쌓이고 쌓인 지금, 녀석과 나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 녀석은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로서 무난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나는 이리저리 적을 옮겨가며 나름의 의미를 탐색하는, 안정감과는 괴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서로가 목적으로 하는 삶의 방향에는 꽤 큰 각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또 신기하게도 취향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술자리를 즐겨하는 등 교집합이 꽤 컸다. 스무 살 초기에 쌓아온, 어찌 보면 가족보다도 더 끈끈한 기숙학원에서의 1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서로를 가장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였을 것이다.


나는 서울 그 녀석은 충청도. 가깝다고 말하기도, 멀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결코 쉬이 만날 수는 없는 그런 거리. 아니 지리적 거리는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른이 되면 각자의 길을 길들이는 것만도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처음 만들어 놓은 짙은 농도의 유대가 서서히 옅어지는 건 어쩌면 순리일지도. 그럼에도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많게는 그 이상도 보는 사이니, 아마도 삶의 관성을 부단히 이겨내는 사이라고 대견하게 바라봐야 할 일이다.


그 녀석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기 약 1시간 전에 전화해서는 오늘 볼 수 없냐며, 마치 한 동네에 같이 사는 것 마냥 급하게 만남을 물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 둘이기에 가능한 급진적 전개일지 모른다. 오늘 하기로 마음먹었던 느슨한 계획을 수정하고 그 녀석을 만날 준비를 하는 걸 보면 사뭇 내가 얼마나 그를 애정하는지 스스로 따뜻해진다.


그 녀석과의 만남은 사실 뻔하다. 스무 살 초반의 삶을 더듬으며 그 안에서 맛있는 안주거리를 뒤적거리다가 숱한 잔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 있고 가야 할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이날은 그동안의 만남과 유사한 기시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치기 어린 시절의 얘기를 하도 많이 지저귄 탓일까. 항상 그 녀석의 입에서부터 시작되곤 하던 추억 대신에 요즘 사는 얘기가 안주가 되었다. 사회인 배구에서의 활약상 이야기, 재수 씨와 자녀 준비 계획, 최근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 내 취업과 결혼 이야기, 우리는 15년 만에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보다 현재와 미래를 현상하는데 재미를 두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우리도 겨우겨우 어른이 되어 간다는 의미일까.


허름한 시장에서 순댓국 한 숟갈에 수육 한 점, 그리고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와작와작 안주를 음미하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 좋다. 인생 진짜 뭐 없어. 그렇지?"


의례 하는 말. 어딜 가나 먹을 수 있는 음식 앞에서, 어딜 가나 살 수 있는 소주를 들이키며, 날씨 좋은 여름날 수박 한 입 배 어물며 평상에 누워서, 단 돈 몇 푼으로 행복해할 때, 일상을 마냥 받아들일 때 행복해서 나오는 한 마디. '인생 뭐 없다.'


"형, 형은 인생 뭐 있게 살고 있는 거야. 나야말로 정말 인생 뭐 없이 사는 거고."


뜬금없는 녀석의 철학적 피드백에 나는 순간 흠칫했다.


"난 대학 졸업하고 바로 교사로 취직하고 주욱 매년을 똑같이 보내고 있어. 남들 하는 결혼 하고, 직장도 사실 힘들지도 않아. 퇴근하면 운동하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게 부담되지도 않지. 내가 하는 일에 감동을 느끼긴 해도 그 이상의 욕심이나 성취감은 딱히 없어. 오히려 내가 방과 후 하는 운동과 동호회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정도가 다야."


"근데 형을 보면 인생 꽤 뭐 있게 사는 거 같아. 남들 다 하는 걸 하지 않지. 난 형이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결혼도 빨리 하고, 직장도 안정적으로 다니고, 욕심 없이 무난하게 살거라 생각했어. 근데 형을 돌이켜보면 정말 뭐 있게 산 거 같아. 항상 도전하지. 남들이 쉬이 하지 않는 것들도 해보고 말이야."


"그런 모습 보면 되게 멋있어. 물론 난 그렇게 할 여력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형이 도전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껴져."


그동안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그 녀석과의 술자리. 소주 맛이 새삼 독했다. 인생 뭐 없다는 생각이 나에게는 사치이려나. 난 여태껏 그 녀석의 말대로 인생을 별거 있게 살아온 걸까. 그 녀석과 헤어지고 나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연거푸 그 말을 들이켜봐도 또렷하게 답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가 도달한 한 가지 사항. 사람, 세상 그리고 삶은 상대적 관점에서 그 시야가 공유된다는 것. 원래도 고수해 오던 내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느끼는 만큼만 자기 삶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상대적인 경험을 통해서 시작된다. 제 아무리 모든 생물이 독립적인 개체로부터 삶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결국엔 현재 독립적인 시야를 구축해 왔다 할지라도, 그 과정은 사회라는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시공간에서 이뤄진다. 즉, 네트워킹으로서 경험한 산물로서의 결괏값이 지금의 우리다.



그 녀석은 자신의 삶을 구축해오며 자신의 시야 속에서 내 삶을 꾸준히 의식해 왔을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을 그 녀석에게 말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겉으로 보이는 내 행동은 그 녀석에게 있어 상대적 시야를 생성해 왔고 그 시야가 나라는 삶을 인식시키는 동시에, 그 녀석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상대적 고찰을 생성해 왔을 것이다.


그 녀석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삶이 안정적이고 정적이라 받아들여 왔다. 그 인지가 비단 절대적으로 자신의 삶만을 탐구해 온 값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뤄져 왔을 것이다. 동료들, 친구들, 부모님, 연인, 그리고 나. 그리고 여러 상대값을 검토해 봤을 때 분명 나의 삶은 그 녀석의 삶에 비해서 매우 역동적이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에게 있어서 나는 별 거 있게 살아온 인생이다. 하루의 일부를 교사라는 직함으로 살고 그 외의 시간을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고 어쩌다 보니 직업으로서의 삶보다 취향으로서의 삶을 더욱 만연하게 채워가는데 몰입하는 자신을 마주하다가, 정처 없이 도전하고 방랑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기까지 하는 나의 삶을 바라본다면 상대적 관점은 어느새 고착화되어 나에 대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에 반해 내 시야는 그 녀석이 아니라, 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부단히 알을 깨어 나오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제나 그들의 활동적인 모습을 따라가기에 바빴고, 왜 난 그들의 앞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하며 부러움 섞인 질투와 좌절의 안개를 마주한다. 결국 난 이 도심에서 꽤 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확고히 한 것이, 사는 거 별거 없다는 생각을 만든 것은 아닐까.


순대국 한 숫갈과 소주 한 잔 들이키며 느낀 감흥을 이리도 구차하게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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