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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27. 2023

28. 희천에서 압록강으로

  


차는 계속 산길만 달렸다. 산, 산……. 울창한 산만 바라보며 우현령을 넘어 우측으로 북향을 했다. 바로 가면 운산군 온정리로 간다고 한다. 초산군으로 들어서면서 눈이 약간 날린다. 벌써 그런 계절이 된 걸 보니 10월인가, 11월인가. 날짜 가는 줄 모르고 달려왔다.

이 길로 따라가면 압록강이 보이고 바로 그 전이 초산이라고 들었다. 얼마나 왔을까. 한없는 북진에 지루함까지 느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꽤 넓은 땅이었다. 밤늦게 초산을 앞두고 고장(古場)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하여 숙영하기로 했다. 전방의 선발대는 이미 초산에 진입하여 압록강에 도달했다는 신나는 소식과 함께 압록강 물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곳이 압록강 후방 7연대 본부가 앉는 자리라고 한다. 7연대 병력이 이미 이곳에 모였다. 이제 우리는 통일을 했고 얼마 있으면 압록강도 볼 수 있다며 고향에도 갈 꿈을 키웠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하다.

나는 숙소가 약방이어서 필요한 약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쓸만한 약은 하나도 없고 약방에는 인민공화국 돈이 많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는 돈이 아닌가. 인근을 살피고 온 대원들이 결과 보고를 했다. 이 동네에 주민은 하나도 없고 동네 뒤 어떤 집에 갔더니 노인 한 사람이 있어 국군이 왔다는 것과 이제 남북이 통일됐다고 알려줘도 무표정하게 대하더라는 것이었다. 또 인근 산에는 토종 벌통이 많아 꿀이 있으면 달라고 하니까 한 말 짜리 석유 깡통에 꿀을 주면서 천원을 달라고 하더란다. 남한의 돈을 주니까 이곳에서는 못 쓴다고 해서 인민공화국 돈을 주고 사 왔다며 웃는다.

주민들은 모두 어디 갔냐고 물으니 모두 초산 쪽으로 피난 갔다고 한다. 조그마한 이 마을에 국군이 모여드니 활기가 넘쳐 흐르고 길가는 군인들 사이에 축하의 인사가 화기애애하다. 이때 고향의 친구를 만났다. 안말 사는 임택수와 임정수였다. 둘은 사촌지간이었는데 택수는 미군 고문관의 연락병이었고 정수는 7연대 모 부대의 병사였다. 졸병인 그들에게 보급받은 운동화와 옷가지를 줬더니 고맙다며 후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휴전이 된 후에 알게 되었지만, 택수는 그 후 행방불명이 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정수는 인민군에게 붙잡혀 천신만고 끝에 탈출, 혼자 산에서 피신하다 남한에 돌아왔지만 발에 동상이 나서 발끝을 절단하는 불행을 겪었다.

연대 본부는 고장 인민학교에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3일 정도 자유스럽게 시간을 보내며 들뜬 기분으로 다음 작전 지시(최대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3시경 7연대 전 장교는 연대 본부에 즉시 집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웬일일까 의아해하면서 좋은 소식이겠거니 하고 모여들었다. 마침 그때 미군 수송기 2대가 저공으로 선회하더니 많은 낙하산을 투하하고 한 번 선회한 후 남쪽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환호성을 올렸다. 이제야 축하의 선물이라고.

낙하산은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 색깔로 하늘에 꽃을 피웠다. 그 꽃은 서서히 부락 근처에 떨어졌다. 사병들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연대 본부에서 장교들은 가지 말고 운동장에 집합하라는 소리가 요란하다.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는데 전혀 다른 충격적인 지시가 연대장 입에서 나왔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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