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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간일지 4

내지 디자인과 조판 for <방송 연출 기본기>

by 정영택

다시 책을 낸다면 내지 디자인은 그냥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첫 책을 낸 후 인디자인 관련 책들을 두 권 샀었다. 그리고 영상 일을 하기 때문에 어도비 전제품을 쓸 수 있는 플랜을 매달 결제하고 있어서, 인디자인을 깔아놓기도 했다. 나는 포토샵에 일러스트레이터에 프리미어에 애프터이펙트에, 모든 걸 독학했고 잘 쓰고 있고 영상 디자인도 곧잘 내가 해온 터라, 인디자인 이놈도 그냥 배워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툴 하나 배운다고, 세련된 디자인이 나오는 건 아니잖어...'


그렇다. 영상 툴을 익혔다고 당장 방송 퀄리티를 낼 순 없는 거다. 그걸 그렇게 뼈저리게 느껴왔으면서 나는 무슨 오만을 부린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리고 또 '크몽'에서 내지 디자이너 님을 찾기 시작했다.



7. 내지 디자인


표지 디자이너 님의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남았기에,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크몽의 북디자이너 님들을 찾았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몇 분을 추렸고, 역시 그런 분들은 거래 수나 리뷰 수가 많다. 하지만 어느 한 분에게 눈길이 가지 않아서, 선뜻 의뢰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펴보니 디자인의 통일을 위해, 보통 표지 디자인과 내지 디자인을 함께 하시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표지 디자인을 의뢰했기 때문에, 먼저 내지 디자인 작업을 하시다가, 후에 표지 디자인과 결을 맞춰주실 분이 있어야 했다. 또, 이번 책은 에세이가 아닌 연출 이론 책에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인용과 예시, 간단한 표들이 들어갔다. 한글 워드 문서에 썼던 이런 것들을 본인만의 감각으로 가독성 있게 편집해 주실 분이 있어야 했다. 또, 디자인이 끝난 후, 인쇄소에 결과물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인쇄소와 디자이너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경험 많은 분이 있어야 했다. 그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실 분을 찾다 보니, 의뢰하지 못했던 거다. 그렇게 계속 선택을 망설이고 찾기를 반복하며, 며칠이 흘렀다. 비슷한 분들 가운데 마지막 선택을 하려 할 때, 드라마틱하게도 어떤 리뷰를 봤다.


제가 기업 오너라면 스카웃해서 모셔가고 싶은 인재가 여기에 계셨네요.


야... 이건 진짜 극찬인데. 개인사업을 하면서 능력자를 만나면, 정말 가슴 깊숙이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왔다. 이 디자이너 님은 당시 거래 수가 별로 없었고, 리뷰도 3개밖에 없었지만, 모든 리뷰가 진심이다. 가장 중요한 포트폴리오마저 좋다. 모든 고민이 끝났다. 표지 디자인과 내지 디자인을 함께 하시는 분이었지만, 꼭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찾았던 다른 북디자이너들을 뒤로 하고, 바로 문의를 드렸다. 일단 이 디자이너님의 링크와 첫 대화를 남긴다.


https://kmong.com/gig/493572


앗싸!


리뷰에 속도와 퀄리티가 대단하시다고 쓰여있었는데, 의뢰 3일 만에 내지 디자인 시안이 왔다. 그것도 2종으로! 걱정했던 인용구와 예시, 표들이 눈에 딱 들어온다. 원고 전체를 정독하지 않으면 저렇게 나올 수가 없는데... 시안 잡을 때 고려하여 디자인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디자인만 하신 게 아니고 내 원고를 제대로 읽어주신 첫 독자가 되셨다. 와이프도 내 글 안 읽는데...



와. 가독성...


되려 문제는 나였다. 최종 원고라고 드려놓고, 나의 불찰로 엄청난 수정을 반복했다. 나도 뭔가를 만들고 내놓는 직업이라 그런 걸 극혐하는데, <방송 연출 기본기> 이번 책을 만들며 내가 그런 놈이 됐다. 너무나 죄송했는데,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이 없으셨다.(다음번 또 책을 내게 된다면, 정말 완벽히 준비하겠습니다ㅠ) 허나 대단히 감동받은 것은 마지막이었다.


디테일... 이게 프로지.


두세 번의 내지 오타 검수를 마치고, 인쇄용 파일을 부탁했던 참이다. 그때부터 폭풍처럼 디자이너 님의 디테일이 들어왔다. 첫 책을 출간하며 이런 적이 없었다. 경험이 없었기에 출판계란 건 이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디테일한 건, '에이 뭐 됐다. 대세에 지장 없으면 되지 뭐...'란 마음에 요구하지 않았는데, 먼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책이 될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내게 의견을 묻고, 반영해 주셨다. 그래 이거지. 방송이든 출판이든, 창작이란 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지. 이 디자이너 님과 함께 하면서 내가 이 분께 의뢰를 드린 게 아니라, 같은 팀이란 게 느껴졌다. 인쇄용 파일을 넘기고 나서도, 인쇄 시 체크사항 등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연히 해드리는 일이라니ㅠ


'출판업계 오랜 경력'이라고 링크 페이지 소개문구에 쓰여 있지만, 쓰여있지 않더라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랜 경력과 많은 경험이 있으신 디자이너 님이란 걸 알게 된다. 내지 디자인, 조판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는 상세 페이지까지 의뢰드렸고, 지금 <방송 연출 기본기>의 상세 페이지는 이 분이 만드셨다. 북디자인뿐 아니라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이 가능한 진짜 프로를 만나버렸다. 앞으로 우리 출판사가 또 무슨 책을 내더라도, 이제 방황은 끝났다. 이분들과 함께라면 나 같은 '나 홀로 출판사'도 대형출판사의 베스트셀러 같은 퀄리티의 책을 만들 수 있다. 난 어쩜 왜 이리도 인복이 좋단 말인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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