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승호 Jul 05. 2023

그린워싱, 빨대와 메타버스

빅테크 워싱 주의

이상한 빨대

카프리썬 빨대 하나도 못 꽂고 망가뜨리는 아이를 보며, 에휴 언제 스스로 하려나 생각을 하며 '이리 줘봐'라고 뺏어서 꽂아봤다. '잉, 뭐지?' 빨대가 휘어지며 뾰족한 끝이 뭉개졌다. 워낙 망가졌기 때문에 두 번째 시도를 할 엄두도 나지 않고 포기해야 했다.

[출처 : 조선일보]


대기업의 수많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뚫고 어떻게 하면 이런 빨대가 제작되어 출시될 수 있었을까?


[출처 : 농심 유튜브]

심지어 종이빨대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애니메이션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까지 했다.


회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추정을 한번 해봤다.


일단 ESG 화두가 위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우리도 빨대를 바꾸자라는 이야기가 나왔겠고, 종이빨대를 만드는 팀, 바뀐 빨대가 부착될 물량을 생산하는 팀, 이 내용을 알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팀은 다 달랐을 것이다. 제작비 상승이슈 때문에 원가관리를 해야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빨대의 성능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실무자는 의견을 밝혔겠지만, 그 단가로 반드시 맞추라고 위에서는 이야기했을 것이고, 실제로 샘플이 나왔을 때는 예상보다 퍼포먼스가 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출시해서는 안된다고 실무자가 리더에게 보고했겠지만, 이미 KPI에 특정날짜에 종이빨대 출시가 목표로 잡혀있고, 기존 빨대 재고량도 없는 상황이고 생산물량을 유통시킬 팀에서는 빨리 새빨대를 붙인 제품을 내놓으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세상에 문제없는 프로젝트는 없다며 사소한 이슈는 그냥 가도 된다고 리더는 판단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팀은 당연히 멋진 종이빨대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예정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바뀐 빨대가 나오고 담당자들이 테스트를 해봤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부분만 봤을 것이다. 이전보다는 좀 불편해졌네 하지만 이 정도는 고객들이 이해해주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하며 넘어갔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든 팀도 빨대가 영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다들 그냥 올리라고 하고 내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니 그냥 영상을 올렸을 것이다.


방관자효과

이런 문제는 비단 농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의사결정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특정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도 안된다. 사람이 많은 조직일수록 책임감이 분산되는 방관자 효과가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린워싱이 도처에 널려있다. 고객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고, 종이빨대를 버리고 플라스틱 빨대를 다시 찾게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탄소배출은 오히려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빨대는 종이지만, 패키지는 여전히 플라스틱이라면 혹은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은 없앴지만 컵을 씻는 과정에서 세제와 물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면 뭐가 환경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일까?  


빅테크 쪽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메타버스를 해야 한다. 메타버스가 건축폐기물을 줄이고 ESG에 도움이 된다. AI를 해야 한다. AI를 통해 생산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절감시킬 수 있다. 당위에 입각한 훌륭한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메타버스와 AI 자체는 대단히 많은 전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보여주기식, 당위에 입각하여 결과를 예상하지 않고 그냥 메타버스 공간을 만들기만 한다면, 에너지는 많이 투입됐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메타버스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우리도 빅테크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빅테크 워싱이 되는 것이다.

빅테크나 그린이나 모두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정말로 고객의 소중한 시간을 줄여주고, 우리 공동체의 환경에 기여하는 제품/서비스인지 아니면 생색내기만 하는 것인지는 이용하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진심을 갖고 비즈니스와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하는 빅테크의 진화방향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관 옆 메타버스 도슨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