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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 ATHANASIUS YI OSB Feb 23. 2024

사순 제2주일 입당송 Tibi dixit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곡 입당송

아인지델른 사본(Einsiedeln, Stiftbibliothek 121), f.122–출처: https://www.e-codices.unifr.ch/fr/sbe/0121/122 

악보   

그라두알레 노붐 제1권(Graduale Novum I), 69-70쪽

참조. 그라두알레 트리플렉스(Graduale Triplex), 88쪽

* 악보가 궁금하신 분은 http://gregorianik.uni-regensburg.de/gr/#id/154이나 https://gregobase.selapa.net/chant.php?id=16151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후렴 – 시편 27(26),8.9ab


시편 구절 – 시편 27(26),1a


사용되는 전례 시기   

현재: 사순 제2주일, 수도자 공통,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월 22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10월 16일)

Antiphonale Missarum Sextuplex에 나온 9세기 경의 옛 전례주년 구분에 따르면, “사순 제2주간 화요일”(Feira III Hebdomada II Qadragesima)에 불렀던 입당송이다. 

과거 6세기부터 사순 제1주간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봄을 맞이하면서 사계 대재의 날 주간(Ieiunia quattuor temporum – 축약형으로 콰템베르Quatember라고도 한다)을 거행했다. 당시 신자들은 기도와 단식으로 이 시기를 보내다가 토요일 밤에 봄의 콰템베르 주간을 마무리하는 미사를 거행했는데, 자정을 넘겨 날짜상으로 주일에 미사를 마무리했다. 그래서 사순 제2주일 미사는 따로 거행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기록되던 9-10세기의 많은 사본들에도 사순 제2주일은 “주일미사를 거행하지 않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도미니카 바캇”(Dominica vacat)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속 전례개혁으로 콰템베르는 폐지되었고, 사순 제2주일 독서를 새롭게 배열하면서 가해, 나해, 다해 복음 모두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다루게 되었고, 이 내용에 맞추어 입당송은 기존의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입당송이던 “Tibi dixit”을, 영성체송은 본래 미사곡이 아니라 시간전례 후렴곡이던 “Visionem quam vidistis”를 가져왔다.

그밖에 입당송 선택사항으로 “Tibi dixit”이 아니라 콰템베르 첫 날인 수요일에 부르던 “Reminiscere”를 부를 수도 있다. 이 전통에 따라 루터교에서는 사순 제2주일을 “Reminiscere 주일”이라고 부른다.


선법: 제3선법


아인지델른 사본 기호 분석

- Tibi

악센트 음절 ‘Ti-’: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 음절에서 페스가 올 때, 두 번째 음이 낭송음[Tenor]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두 음이 모두 빠르지 않기는 하지만, 페스의 목적은 두 번째 음이 된다. 이 곡은 제3선법인데, 제3선법은 과거에 마침음[finalis]에서 5도 위의 음인 ‘시’가 테너였다. ‘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곧 ‘도’가 테너음이 되기는 했지만, 예를들어 시간전례에서 제3선법의 시편 낭송을 하는 경우 여전히 옛 선법에 따라 ‘시’를 테너음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여기 첫 단어의 첫 음절 페스 콰드라투스의 목적음 ‘시’는 테너음 ‘도’를 목적음으로 삼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음 단어에서 올라가는 테너음과의 미묘한 반음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솔렘수도원에서 복원한 그라두알레는 이 목적음을 아예 처음부터 ‘도’로 악보를 만들었지만, 그라두알레 노붐은 옛 사본들을 분석하면서 본래 의도에 맞게 ‘시’로 복원을 했다. / 첫 음 앞에는 음을 조금 낮추라는 문자기호 ‘m’과 ‘i’, 즉 ‘인페리우스 메디오크리테르’(inferius mediocriter)가, 두 번째 음에는 음을 높이라는 문자기호 ‘s’, 즉 ‘수르숨’(sursum)이 나온다.

‘-bi’: 비르가(virga)

- dixit 

악센트 음절 ‘di-’: 비르가(virga) - 다음 음절에 음이 7개나 오기 때문에 자칫 악센트 음절의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오히려 악센트 음절에 한 개의 네우마가 오고 그 앞 뒤 음절을 멜리스마로 꾸며주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 경우 오히려 멜리스마 앞 뒤에 오는 단 한 개의 네우마가 악센트를 더 돋보이게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악센트의 힘이 다음 음절에서 가볍게 이어지게 악센트를 강조해 부른다.

‘-xit’: 트리스트로파(tristropha) + 에피세마가 붙은 비르가(virga) + 트리스트로파(tristropha) - 나의 마음이 주님의 얼굴을 찾아다니는 긴 여정을 네우마 기호로 잘 표현한 부분이다. 음으로도 반음 높이면서 하느님 얼굴이 저 높은 곳에 있지 않을까 하며 그분 얼굴[vultum tuum]을 찾아다닌다. 다음 프레이즈의 “vultum tuum”(당신 얼굴)이라는 단어가 바로 내 마음이 하느님께 말씀을 올리면서 그분 얼굴을 찾아나서는 여정의 높이(“dixit”) ‘도’와 같은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 각각의 네우마들을 따로 놓고 봤을 때 두 차례의 트리스트로파는 모두 마지막 음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Endartikulation], 하나의 멜리스마 덩어리로 놓고 보면 가운데 비르가에서 한 차례 멈추어주는 느낌으로 노래를 부른다[Binnenartikulation]. 마침 론 사본을 보면 트리스트로파 목표음인 세 번째 음들에 모두 음을 길게 붙잡으라는 문자기호 ‘t’, 즉 ‘테네레’(tenere)가 함께 나온다. 따라서 각 트리스트로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들은 가볍고 빠르며, 세 번째 음은 아주 약간 더 머무른다. 비르가는 그보다 더 강조되고, 약간 무겁게 그 자리에서 머무른다. 이때 과거 솔렘 수도원의 그레고리오 성가 복원처럼 한 음을 8분음표로 해석해서 8분음표를 7차례 길게 이어 부르는 근대식 해석 방식으로 부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음악에서처럼 각각의 음을 모두 반향[Reperkussion]해서 부른다. / 사본 기호를 보면 첫 번째 트리스트로파와 비르가 높이가 다르게 기보되어 있지만, 비르가에 같은 음으로 부르라는 문자기호 ‘e’, 즉 ‘에콸리테르’(equaliter)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일곱 음 모두 같은 음으로 부른다. 

- cor: 에피포누스(epiphonus) - 축소형 페스 리퀘셴스(liquescens)로, 두 번째 음은 마지막 “r” 발음만을 붙이는 느낌으로 짧게 불러준다. 사본에 따라서는 확장형 비르가 리퀘셴스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축소형으로 해석할 때 악센트 음절(단음절 단어)의 발음이 더 강조되며, 이 문장의 주어(내 “마음”)가 돋보이게 된다. / 첫 음을 낮게 부르라는 문자기호 ‘i’, 즉 ‘인페리우스’(inferius) 혹은 ‘유숨’(iusum)이 함께 나온다.

- meum

악센트 음절 ‘me-’: 클리마쿠스(climacus) - 첫 번째 음에 에피세마가 붙어있다. 첫 번째 음에서 조금 머무르고 두 번째 음은 빠르게 넘어가며, 세 번째 음은 다음 음절로 넘어가기 위한 네우마의 마침 음이므로 기호상으로는 빠르게 표기되나 실제로는 발음의 변화로 인해 조금 머무르게 된다.

‘-um’: 비르가(virga) - “-우” 발음을 확실히 해 주고, “m”이 조금 울리게 해 준다.

- quæsívi

‘quæ-’: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 앞 페스 콰드라투스로 악센트를 준비해 준다. 두 음 모두 빠르지 않다. 음을 조금 낮추라는 문자기호 ‘mi’가 함께 나온다.

악센트 음절 ‘-sí-’: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에서의 콰드라투스. 모두 빠르지 않다. 음을 조금 높이라는 문자기호 ‘ms’가 함께 나온다.

‘-vi’: 비르가(virga)

- vultum

악센트 음절 ‘vul-’: 비르가(virga) + 트리곤(trigon) + 트리스트로파(tristropha) - 비르가에는 앞 음과 같은 음으로 시작하라는 문자기호 ‘e’가 함께 나온다. 이 비르가는 자체로도 네우마 분절로 인해 길어지지만 에피세마가 붙어 그 사실이 확실해진다. 이어지는 트리곤의 세 번째 음은 그 자체로도 풍툼(punctum)이 아니라 트락툴루스(tractulus)가 오는 데다가 네우마 분절로 인해, 그리고 앞뒤로 같은 음이 연속되는데 중간에 잠시 아래로 내려왔다 올라가는 사실로 인해[Drehpunkt] 조금 길어진다. 이 트리곤 마지막 음에 붙은 문자기호 ‘m’은 ‘조금, 약간’이라는 뜻인데 음을 적당히 내리라는 뜻인지 아니면 너무 떨어지지 않게 조금 올려 부르라는 의미인지, 그것도 아니면 속도나 박자를 적당히 부르라는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다. 트리스트로파 마지막 음은 확장형 리퀘셴스이다. 따라서 마지막 음에서 “l”이 울리게 해 주며, 이때 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음을 높이라는 문자기호 ‘s’가 함께 나온다. 

‘-tum’: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를 준비해 주는 페스 콰드라투스. 빠르지 않다. 앞 악센트 음절에서의 힘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이어지는 토르쿨루스가 빠르게 위로 치솟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준다.

- tuum

악센트 음절 ‘tu-’: 토르쿨루스(torculus) - 빠르다. 토르쿨루스 첫 음에 앞 음과 같은 음으로 시작하라는 문자기호 ‘e’가 나온다. 두 번째 음에는 음을 높여 부르라는 문자기호 ‘s’가 나온다.

‘-um’: 토르쿨루스(torculus) + 디스트로파(distropha) - 프레이즈의 마침으로 앞 악센트 음절에서의 토르쿨루스가 “vultum”에서의 힘을 그대로 이어 힘있고 재빠르게 위로 치솟는 운동을 했다면, 여기에서의 토르쿨루스는 힘을 빼면서 조금 여리게 부른다. 이어지는 디스트로파는 토르쿨루스의 마지막 음을 반향해주면서 한 프레이즈가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 vultum

악센트 음절 ‘vul-’: 에피포누스(epiphonus) - 축소형 페스 리퀘셴스(liquescens). 두 번째 음은 “l” 발음만 붙이는 것처럼 부른다. 첫 음을 낮추라는 문자기호 ‘i’가 함께 나온다. 앞의 “cor”에서와 마찬가지로 발음 때문에 리퀘셴스로 부르는 것도 있지만, 리퀘셴스의 사용은 이 단어(당신 “얼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tum’: 트락툴루스(tractulus)

- tuum

악센트 음절 ‘tu-’: 클리마쿠스(climacus) - 앞의 “meum”과 똑같이 첫 번째 음에 에피세마가 붙어있다. 첫 번째 음에서 조금 머무르고 두 번째 음은 빠르게 넘어가며, 세 번째 음은 다음 음절로 넘어가기 위한 네우마의 마침 음이므로 기호상으로는 빠르게 표기되나 실제로는 발음의 변화로 인해 조금 머무르게 된다.

‘-um’: 트락툴루스(tractulus)

- Dómine

악센트 음절 ‘Dó-’: 비르가(virga) - 음을 떨어뜨리지 말고 높이라는 문자기호 ‘l’이 함께 나온다. “-um” 발음 자체가 어둡기 때문에 “-um”에서 한 차례,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한 차례 음이 자연스럽게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앞 음절에서는 약간의 피치가, 이 음절에서는 반음 가까지 떨어졌을 것 같은데, 아인지델른 사본은 바로 그 점을 주의하라고 하는 것 같다.

‘-mi-’: 트락툴루스(tractulus)

‘-ne’: 비르가(virga)

- requíram

‘re-’: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 앞 페스 콰드라투스. 악센트를 준비해 준다. 두 음 모두 빠르지 않다.

악센트 음절 ‘-quí-’: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악센트에 오는 페스 콰드라투스. 모두 빠르지 않다.

‘-ram’: 스칸디쿠스 플렉수스 레수피누스(scandicus flexus resupinus) - 두 차례의 페스 콰드라투스를 통해 축적된 힘을 빠르게 해소한다. 하지만 한 프레이즈의 마침이기 때문에 마지막 음에서 조금 머무르면서 “m” 발음을 울리게 해 준다.

- ne: 트락툴루스(tractulus) - 기호상으로 딱히 특이한 점은 없지만, 이 문장 전체를 부정하는 중요한 단어이다(당신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 따라서 다른 단어에 비해 자연스럽게 더 강조된다. 게다가 이 단어부터 “tuam”까지는 음절마다 한 음 혹은 두 음으로 작곡된 실라빅(silabic) 부분이다. 심지어 두 음으로 된 음절도 발음과 관련해서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낭독하듯이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

- avértas

‘a-’: 비르가(virga) - 음을 높이라는 문자기호 ‘s’가 함께 나온다.

악센트 음절 ‘-vér-’: 에피포누스(epiphonus) - 축소형 페스 리퀘셴스(liquescens). 두 번째 음은 “r” 발음만 붙이는 것처럼 부른다. 앞의 “cor”나 “vultum”의 “vul-”에서와 마찬가지로 발음 때문에 리퀘셴스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리퀘셴스의 사용은 단어(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리다”)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tas’: 비르가(virga)

- fáciem

악센트 음절 ‘fá-’: 비르가(virga)

‘-ci-’: 비르가(virga) - 음을 너무 떨어뜨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문자기호 ‘s’를 기록해 놓았다.

‘-em’: 페스 콰드라투스(pes quadratus) - 첫 음을 낮추라는 문자기호 ‘i’가 나온다. 페스 콰드라투스는 악센트 음절 앞에서 빠르지 않게 머무르면서 악센트 음절을 준비해주는 역할을 한다.

- tuam

악센트 음절 ‘tu-’: 비르가(virga)

‘-am’: 비르가(virga)

- a: 네우마 분절로 나누어진 비르가(virga) + 클리마쿠스(climacus) + 클리마쿠스(climacus) - 첫 네 음은 페스 숩비풍티스(pes subbipunctis)가 네우마 분절로 나누어진 것으로, 네우마 분절 바로 앞 네우마인 비르가는 빠르지 않다. 바로 이어지는 클리마쿠스는 빠른데, 두 개의 클리마쿠스가 역시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첫 번째 클리마쿠스 마지막 음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지점[Drehpunkt]이 되기 때문에 이 첫 번째 클리마쿠스의 세 번째 음에서 잠시 머무른다. 다음 클리마쿠스의 첫 번째 음에는 에피세마가 붙어있다. 따라서 이 클리마쿠스의 첫 번째 음에서 잠시 머무르고 나머지 두 음은 그보다는 빠르지만, 곡이 마치는 분위기이므로 점차 느려지게 부른다. 이 멜리스마의 첫 음부터 다시 정리를 해 본다면: 빠르지 않다-빠르다-빠르다-빠르지 않다-빠르지 않다-앞 음보다는 빠르다-그보다 더 느리다.

- me: 트락툴루스(tractulus)


음악적인 특징

이 곡은 시작하면서부터 “dixit”에서 같은 음을 일곱 차례 반복하면서, 또 미묘하게 일곱 음을 부르는 리듬에 차이를 둔다. 이런 방식은 주님 공현 대축일 봉헌송 “Reges Tharsis”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대개 “초월적인 차원의 실재”(überdimensionale Wirklichkeit)를 노래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요한네스 베르히만스 괴슐은 이 입당송에 사용된 이 방식을 두고 “하느님 얼굴을 바라보는 데 신비롭게 푹 빠져드는 것과 그에 대한 사랑의 헌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참조. Johannes Berchmans Göschl, 『Das Kirchenjahr im Gregorianischen Choral』, St. Ottilien: EOS-Verlag, 2021, 93쪽).

한편으로 이 곡은 우리가 하느님께 푹 잠겨들기까지 하느님의 얼굴을 찾아다니는 우리의 여정을 보여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곡의 마지막 음인 ‘미’에 “나”에 해당하는 “me”(나를)가 있고, 나는 그분의 얼굴을 가장 높은 ‘도’에서부터 찾아다닌다. 하지만 이 여정은 나만의 여정이 아니다. “얼굴”을 뜻하는 라틴어 “vultus”와 “fácies”가 있는 위치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도’를 중심으로 한 가장 높은 위치에서 다음에는 ‘솔’과 ‘라’를 중심으로 한 중간 위치까지 내려오고, 마지막에는 내가 있는 위치인 ‘미’까지 내려온다. 하느님의 얼굴을 저 위에서도 찾아보고(“Tibi dixit”), 중간에서 갈팡질팡도 해 보고(“quæsívi”와 “requíram”) 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분은 우리 곁에 와 계신다. 이렇게 그분 얼굴을 찾아다니는 사이에 우리에게 먼저 당신 얼굴을 우리 곁에서 보여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침 사순 제2주일의 복음이 가해, 나해, 다해 모두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내용을 선포한다. 하느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분 얼굴을 우리게게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이 노래를 불러야하지 않을까 한다.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나자렛 예수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예수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셨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하느님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모셔왔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모세와 예언자들을 거쳐 지혜문학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그 얼굴을 보여주신 하느님, 이스라엘에게만 얼굴을 보여주신 하느님, 그 외 민족들 가운데서는 비록 흐려진 모습일망정 공경을 받은 하느님, 바로 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참되신 하느님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모셔왔다.”(요제프 라칭거, 『나자렛 예수 1』, 서울: 바오로딸, 2012,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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