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진수 변호사 Jul 16. 2022

변호사용품#04 락포트

구두인 듯 구두 아닌 구두같은 너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맹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자왈오사이비자(孔子曰惡似而非者);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군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다른 자들을 미워한다." 유래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이비'는 대개 부정적으로 많이 쓰인다.


변호사 업계에도 '사이비'가 많다. 어떤 의뢰인이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에 전화하면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약속을 잡고 상담을 한다. 정상적인 법률사무소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변호사는 상담 때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건 진행 내내 전화 한번 받아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겉으로는 변호사인 것같은데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누군가가 사건을 진행한다. 전형적인 '사이비'의 모습이다.




인간의 경우 '사이비'는 나쁜 것들 뿐인데, 구두의 경우 좋은 '사이비'가 있다구두인 듯 구두 아닌 구두 같은 신발이다. 구두는 아닌데 겉모습은 영락없는 구두라서, 이걸 운동화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마음에 드는 모델만 알게 된다면 남은 인생 다른 구두는 절대 신지 못한다는 [락포트] 얘기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락포트는 1930년 새뮤얼 캐츠가 허버드 구두회사(Hubbard Shoe Company)로 뉴햄프셔주에서 시작했다. 1970년 카터정부가 신발수입에 제한을 걸자 이미 해외로 생산을 옮긴 허버드 사는 도산하였다. 1972년 아들인 솔 L. 캐츠가 손주인 브루스 캐츠와 함께 락포트 컴퍼니(Rockport Company)로 메사추세츠에서 재설립하였다. 1973년부터 운동화처럼 편안하지만 다소 격식있는 다목적 The Comfort Shoe (컴포트화)로 마케팅하여 성공하였다.'고 한다. 1986년 리복에 인수되었다가 나중에 리복을 인수한 아디다스에게 넘겨졌다. 2015년 뉴발란스가 2.8억달러에 인수하였다.




변호사 신발은 가방처럼 '통상적인 룰'이 있다. 구체적인 브랜드가 있는데, 바로 '살바토레 페라가모'다. 페라가모는 남자 변호사 구두의 대명사다. 옥스퍼드 토 구두에 앞부분은 반짝반짝 광을 낸 검정 페가라모 구두. 여담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있던 삼풍백화점은 페라가모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고 한다. 페라가모와 인연이 깊은 장명숙을 수소문 끝에 영입해 직수입 판매를 했고, 1994년부터는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은 페라가모가 하이앤드 브랜드가 되어서, 70~80만 원이면 한 켤레를 구입할 수 있는데, 옛날에는 세계 3대 명품 중 하나일만큼 위상이 대단했고 훨씬 고가였다고 들었다. 아마 선배 변호사님들은 호시절에 비싼 구두를 애용하셨을테고, 그게 구전처럼 내려와서 지금의 '통상적인 룰'로 자리잡지 않았나 싶다. 과거 음식점이나 술집은 다다미 형식으로 신발을 벗고 출입했으니, 구두 브랜드가 중요했을 것같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 입식 생활이 만연해졌다. 집 아니면 사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잘 없다. 클래식한 정장 바지는 구두의 절반을 가린다. 요즘 가죽제품은 질이 너무 좋기 때문에 중저나 브랜드나 고가 브랜드나 외관상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된 다음 부모님께 페라가모 구두를 한켤레 선물받았고, 장모님께도 페라가모 구두 한켤레를 선물받았다.


몇년 간 페라가모 두 켤레, 탠디 몇 켤레를 신고 다녔다. 페라가모는 기본적으로 아시안 핏이 아니다. 발볼이 넓은 나는 특히 페라가모 구두가 불편했는데, 구두가 늘어나 발에 맞을 때까지 고통을 겪었다. 변호사 업무상 걸어다녀야 할 일이 많은데 엄청난 고역이였다. 쇼생크탈출에서 앤디가 교도소장의 구두를 바꿔신고 복귀할 때 아무도 못 알아차렸던 것처럼, 누구도 내 신발에 신경을 안 쓸 것같았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락포트]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 나이대 변호사님들이 애용하시고 계셨다. 언뜻봐선 실제로 편한지 알 수 없었고, 구두같긴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디자인에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락포트] 매장에 들렀다. 토탈모션 라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뭐에 홀린 것처럼 집어들었다. 가벼웠다. 구두 굽이라기 보다는 운동화 에어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착 한 번 해보고 바로 구매했다.


락포트 토탈모션(CI4230 모델)


보통 페라가모 구두를 사면 전문 구두방에 들러 밑창을 댄다. 최대한 뒷굽이 닳지 않게 신으려는 것이다. 페라가모 구두는 한 켤레에 7~80만 원 정도하는데도 뒷굽갈이를 안 해준다. 구두야 맨날 신는 건데 뒷굽이 닳아 1년도 못 신을 수는 없다. 심지어 구두 밑창도 브랜드가 있다. 그 브랜드 밑창이 있는 구두방을 찾아가야 한다. 새로 산 신발을 바로 신어보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구두방에 줄서서 맡기는건 서글픈일이다.


[락포트]는 특성상 운동화처럼 뒷굽이 빨리 닳을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인터넷에서 12만 원 정도이고, 매장에서 사면 20만 원 전후다. 페라가모 구두 한켤레 살 돈으로 네 켤레에서 여섯 켤레를 살 수 있다. 굳이 락포트에 밑창을 대거나 슈구를 바를 이유가 없다. 신고 닳으면 또 사서 신으면 된다. 그래도 페라가모보다 유지비가 덜 든다. 가격은 4~6배가 저렴한데, 착용감, 편안함은 50배가 넘게 좋다. 




사이비인건 사이비인데, [락포트]는 좋은 사이비다. 특히 구두를 맨날 신고 다녀야 하고, 많이 걸어야 하는 변호사업에는 안성맞춤인 신발이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독자님이 변호사업을 하고 계신다면, 하루 빨리 [락포트] 매장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시라 권하고 싶다. 


내가 정리한 [락포트]의 장점과 단점은 다음과 같다.


장점

0. 모든게 장점이다.


단점

0. 단점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호사용품#03 태블릿 PC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